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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홍구(柳洪龜 )
 

류 홍 구 柳  洪  龜

 

<류홍구 : 1762~1813 . 純祖朝 孝子 大丞公 27世 : 夏亭公派>

 

자 공범(公範)

부제학 희저(副提學 希渚)의 10대손이요, 증호조참의 몽주(贈戶曹參議 夢周)의 8대손이요, 하빈(夏彬)의 장자로 영조(英祖) 38년 壬午 4월 9일 백천 식현(白川 食峴)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효성스럽고 공손하여 어버이 곁에 있으면서 항상 필요한 물건과. 입에 맞는 음식을 손수 갖추어 봉양하되 자신의 노고를 나타내지 않았다. 한편 일용 행사로 부터 자신의 학업에 이르기까지 조금이라도 뜻을 어김이 없었고, 어버이께서 혹 병환이 계시면 근심에 쌓여 주야로 부지(扶持)하기를 시종여일 하였으며, 막상 위독하심에 이르자 손가락을 끊어 피를 흘려드려 3일을 회생시키었다. 여묘(廬墓)로서 슬픔을 다하며 상복을 벗지 않고 곡읍(哭泣)을 그치지 않았으며 복을 마치고도 사시로 성묘(省墓)를 폐하지 않았다 .

그리고 내외 친척간에 화목함은 물론 여가엔 사우(士友)를 증유하여 경전(經傳)을 강론하고 수신 제가(修身 齋業)의 도리를 몸소 실천하여 학행으로도 그 명성이 드러났었다.

순조(純祖) 13년 癸酉 4월 17일 졸하니 향년 52세였다. 백천조종익(白川趙鍾益)이 공의 행장을 지었다.

배위 한양조씨(漢暘趙氏)는 통덕랑 여대(通德郎呂大)의 따님으로 2남 1녀를 두고 졸하니 백천 화산면 상삼곶 촌후 서록 폭두암하 임좌(白川 花山面 上三串 村後 西麓 幅頭巖下 壬坐)에 고위(考位)와 합부(合祔)하였다.

장남은 회유(會愈)요, 차남 회응(會應)은 족숙 진규(族叔 晋逵) 후로 출계하였으며, 1녀는 해주정시만(海州鄧時萬)에게 출가하였다.

후손이 연백군 유곡면 식현리(延白郡 柳谷面 食峴里)에 세거하고 있는데 乙酉(1944) 광복(光復)후 많은 자손이 월남(據南)하여 서울 시내에 살고 있다.

※ 行狀 甲子譜, 世系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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