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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철주(柳鐵柱)
 

류 철 주 柳  鐵  柱

 

<류철주 : 1534~1591 : 明宗朝 武臣. 大丞公 17世 : 掌令公派>

 

자 완국(完國) : 호 영집(嶺亭).

회덕현감 맹지(懷德縣監 孟智)의 증손이요, 사옹원봉사 의(司甕院奉事 依)의 2자로 중종(中宗) 29년 甲午생이다. 어려서부터 체격이 남다르더니 장성함에 신장(身長)이 9척이나 되었다.

일찌기 무예(武藝)를 익히어 18세에 무과(武料)에 급제, 선전관(宣傅官). 주부(主簿)를 거쳐 동관첨사(潼關僉使)로 나가 예의로써 교화하고 무예를 권장하니 백성들이 감복하여 마지 않았고, 한편 궁시(弓矢)와 개갑(鎧甲) 등을 정밀하게 수선(修繕)하니 병사(兵使)가 조정에 장계(狀啓)를 올려 드디어 마필(馬匹) 하사의 은전을 입었다.

장흥부사(長興府使) ․ 벽동군수(碧潼郡守) ․ 함경도우후(咸鏡道虞候) ․ 종성부사(鐘城府使)를 역임 하면서 선정(善政)을 베풀어 암행어사(暗行御史)의 포계(褒啓)로 의복과 전마(戰馬). 갑주(甲冑). 궁전(弓箭)등을 하사받았다.

당시 북방(北方)의 야인(野人)들이 변경을 자주 노략질하므로 나라에서 공을 관북방어사(關北防禦使)로 제수하고 나가 방비토록 하였다. 공께서 부임 즉시 전구(戰具)를 갖추고 은혜와 위엄으로 그들을 대처하니 야인들이 감히 넘보지 못하였다. 그 후 전라병사(全羅兵使)로 나가 만기 후 1년을 더하고 퇴임하니 백성들이 유애비(遺愛碑)를 세워 칭송하여 마지 않았다.

선조(宣祖) 24년 辛卯에 졸하니 향년 58세로 초계 성산 지내동 임좌(草溪 城山 池內洞 壬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파평윤씨(坡平尹氏)는 진사 상미(尙美)의 따님으로 1남 2녀를 두었으니, 아들은 통덕랑 태정(通德郎 台鼎)이요, 사위는 단양우세걸(丹陽禹世傑)과, 현감 진양정희선(孫監 晋陽鄭熙善)이다. 공의 행장(行狀)은 족후손 승기(昇基)가 짓고, 묘갈명(墓碣銘)은 이조판서 연안이약우(吏曹判書 延安李若愚)가 지었다.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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