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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발영(柳發永)
 

류 발 영 柳  發  永

 

<류발영 : 1840-1915 : 高宗朝 孝行. 大丞公 30世 : 左相公派>

 

자 경춘(景春), 호 성은(性隱).

문성군 수(文城君 洙)의 3자 서흥부사 계손(瑞興府使 季孫)의 14대손이요, 강진현감 몽호(康津縣監 夢虎)의 10대손이요, 흥주(興周)의 장자로 헌종(憲宗) 6년 庚子 7월 13일에 연기(燕岐)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진취(進取)에 뜻을 두어 과거 공부를 하느라 서울에 가 있었는데 하루는 갑자기 마음이 놀랍고 온 몸이 땀이 흐르는지라 괴이하게 여기던 중 얼마 안되어 모친께서 돌아가셨다는 부음(訃音)이 이르자 슬픔이 북바쳐 대성통곡하니 곁에 있는 사람이 눈물을 흘리지 않음이 없었다. 즉시 분상(奔裵), 장례에 당하여 관청에서 공의 효행을 듣고 동민(洞民)으로 하여금 호장(護葬)케 하였고, 하과(下과?시에 산치(山雉)가 때를 알려 우니 듣는이 마다 기이하게 여기었다. 복제(服制)를 미쳐 마치기 전에 또 부친께서 병환으로 누워 약효가 없는지라, 공이 부인과 함께 단(壇)을 설치하고 100일 기도를 드리는데 범이 와서 지키다가 기도를 마치면 가버렀다. 이렇듯 얼마 후에 상을 만나 최질(衰絰)을 벗지 않고, 상후(喪後)로 기일(忌日)에 예절을 극진히 하였으며, 한편 공주 선영(公州 先瑩)에 산송(山訟)이 있었는데 공께서 혈서(血書)로써 이겨 수호(守護)하였다. 乙卯 11월 15일 향년 76세로 졸하니 연기군서면용암리 해좌(燕岐郡西面龍岩里 亥坐)에 안장되었다.

수직(壽職)으로 도정(都正)에 가자(加資)되고, 승지 정인표(承旨 鄭寅杓)가 묘갈명을 지었다.

배위 부안임씨(扶安林氏)는 학규(學圭)의 따님으로 무육하여, 공의 아우 조영(祚永)의 장자 인설(寅卨)을 맞아 계자하였다. 자손이 연기군서면성재리(燕岐郡西面性齋里)에 살고 있다.

※ 追先錄, 墓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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