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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용갑(柳龍甲)


류용갑 柳 龍 甲

<류용갑 : 譜名 甲烈, 1925.11.4 事業家, 日本柳光비니루工業 (株), 九州비니루工業 (株), 世界新비니루工業(株), 昌寧푸라스틱工業(株)代表理孝, 페리觀光호텔會長, 車柳大宗會 慶南, 釜山支部會長, 在日同胞居留民圑東大坂支部圑長, 車柳公報名譽會長, 在釜柳氏大宗會顧問, 忠景公派 大丞公 32세>

반곡공 적(盤谷公 績)의 후예로 동선공 성근(洞仙公 成根)의 12대손이요, 익환(益煥)의 손자요, 부친 기종(基種)과 모친 김녕김씨 영준 녀(金寧金氏 英俊 女)와의 사이에 3남2녀 중 3남으로 경남 의창군 대산면 갈전리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성근하여 일찌기 일제강제징용(日帝强制徵用)으로 일본으로 노력동원 되었다가 해방을 맞아 회사원으로 재직하고 47년 비로소 사업에 착수하여 가내공업을 경영 하였다.

48년 부인 김해김씨 목수(金海 金氏 木守)의 따님과 결혼하여 착실히 경제적 자립기반을 구축하고 65년 대판(大坂)에다 류광비니루공업 (주)을 창설하고 또 66년 좌가현(座加縣)에 구주(九州)비니루공업(주)을 병설(並設)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으며 70년 웅본현(熊本縣)에 세계신(世界新)비니루공업 (주)을 창설한데 이어 고국(故國)을 위하여 사업을 부산(釜山)에 개설코자 부산 창녕(釜山 昌寧) 프라스틱공업 (주)을 창설하여 경영하여오다가 78년 부산 중앙동에 폐리관광호텔을 신축하여 86년까지 경영하였다.

한편 재일 거류민(在日 居留民)의 단합과 복지향상을 위하여 진력하던 중 72년 민단(民團), 동대판지부(東大坂支部) 및 동분단건설위원장을 역임하면서 사무실단사(事務室團舍) 및 분단사옥 건설(分團含屋 建設)에 유공하여 각계(各界)로부터 5회에 걸쳐 표창을 받은 바 있으며 74년부터 75년까지 재일거류민단 동대판지부 부단장 및 지역구단장을 역임하면서 대한민국을 위해 충성(忠誠)을 다하고 교포사회(僑胞社會)의 지위 향상에 크게 공헌 하였다.

그외에도 종친계(宗親界)에도 성력(誠力)을 베풀어 위선에 봉공(奉公)하여 오던 중 84년 차류대종회 경남 ․ 부산지부회장에 추대(推戴)되어 진력하며 위선돈종(爲先敦宗)을 계도(啓導)하니 종당(宗黨)이 그 현지(賢志)를 추앙(推仰)하고 있다. 86년 차릉(車陵)이 지방문화재(地方文化財)로 지정(指定)된데에도 기여한 공헌이 컸다.

또 85년에 차류공보사 명예회장(車柳公報社 名譽會長), 86년 재부류씨대종회 고문(在釜柳氏大宗會 顧問)에 추대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슬하에 3남2녀를 두니 아들 재춘(在春)과 창화(昌和), 양화(良和)는 재일 기업가(在日 企業家)요, 딸 영자(營子)는 능성 구호진(綾城 具虎振)에게 청자(淸子)는 광산 김신도(光山 金信道)에게 각각 출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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