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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모환(柳模煥)


류모환
柳 模 煥

<류모환 : 字 善益, 號 謙齋, 1907.4.29. 行誼, 忠景公派 : 大丞公 31世, 합천군 대양면 덕정리>

반곡 적(盤谷 績)의 계자(季子)인 사직 정손(司直 正孫)의 후예로 봉사 여주(奉事 汝舟)의 10대 손이요, 석춘(錫春)의 손이요, 사촌 방경(沙村 邦慶)의 3자이며, 남평 문응규(南平 文應奎)의 외손으로 합천군 대양면 덕정리(陜川郡 大陽面 德亭里)에서 태어났다.

공은 온후하고 총명한 자질을 타고나 정훈(庭訓)을 독실히 익히더니 일찌기 주옥 봉기일(周玉 峯基鎰)의 문하에 수업, 고인(古人)의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힘써 배우고 사우(士友)를 널리 사귀어 관선지익(觀善之益)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세태(世態)가 어지러워 교화(敎化)가 땅에 떨어 졌지만 뜻을 굽히지 않고 성명지리(性命之理)를 공구하여 문사(文詞)의 수식(修飾)에는 마음을 쓰지 않고, 오로지 덕의(德義)를 닦아 대역(大易) 겸괘(謙卦)의 자신을 기르는 뜻을 취하여 겸재(謙齋)라 자호(自號)하였다.

한편 내행(內行)이 심히 독실하여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러워 살아 계실 때에 애경(愛敬)을 다하고 돌아가심에 예제(禮制)를 다하였다. 위선(爲先)에도 지성스러워 선영(光塋)에 석의(石儀)를 빠짐없이 갖추고 경인사변(庚寅事變)에 불에 타버린 재실(齋室)을 종족들과 함께 중건하고 그곳에 거처하면서 사우(士友)들을 맞아 경사(經史)를 강론하는 반면 문자질(門子姪)들을 불러 순순히 가르치었다. 이에 종족들은 그 벽을 칭송하고 향당에서는 그 풍도(風度)를 감모하였다.

이곳 태남재(泰南崙) 기(記)를 완산 이우섭(完山 李雨燮)이 지었다.

부인 나주나씨(羅州羅氏)는 홍균(弘均)의 따님으로 1907년 정월 23일생이다. 4남 1녀를 두어 아들은 찬렬(贊烈), 창렬(昌烈), 동렬(東烈), 현렬(賢烈)인데 모두 효행이 지극하며, 따님은 광산 김만수(光山 金萬洙)에게 출가하였다.

※ 泰南齋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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