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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기문(柳 起 門 )
 

류 기 문 柳  起  門

 

<류기문 : 1564~1639 : 光海朝 文臣 大丞公 21世 : 祇候公派>

 

자 광전(光前). 호 오춘(梧村). 쌍청당(雙靑堂).

중랑장 중의(中郞將 仲宜)의 7대손이요, 증호조참판 헌민(贈戶曹參判 獻民)의 2자로 명종(明宗) 19년 甲子에 태어났는데 성품이 총명하고 용모가 단정하였으며 어려서부터 경사(經吏)를 탐구하여 문장은 물론 서예도 능하였다.

선조(宣祖) 22년 己丑(1589)에 생원, 진사, 양시(兩試)에 급제하고 34년 辛丑(1601)에 식년문과(式年文科)에 급제하여 정자(正字) . 박사(博士) . 주부(主簿)를 거쳐 병조좌랑(兵曹佐郎)으로 재직 중 사간원(司諫院)의 탄핵을 받고 파직되었다. 그후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내고 38년 乙巳(1605) 정월 평안도평사(平安道監察)로 나갔다가 동년 4월 예조좌랑(禮曹佐郞)이 되고 이듬해 강원도도사(江原道都事)로 나갔다.

광해군(光海君) 즉위 후 결성(結城) . 증산현감(甑山縣監) . 전주판관(全州判官) . 충청도도사(忠淸道部事) 등을 두루 지내면서 선정(善政)을 베풀고 내직으로 들어와 교리(校理). 전적(典籍)을 거쳐 13년 辛酉(1621) 9월 사헌부장령(司憲府掌令)에 승진하고 이듬해 3월 세자시강원필선(世子侍講院弼善)에 전임하였다.

당시 폐모(廢母)의 의논이 일어나자 그를 거부하다가 권신(權臣)들의 뜻을 거스려 마침내 부안현감(扶安縣監)으로 나갔다가 동년 11월 파직되어 고향 진천 벽오촌(鎭川 碧梧村)으로 돌아왔다.

집 앞에 잦나무 두 그루를 심고, 쌍청당(雙靑堂)이라 당호를 걸고, 자경시(自警詩)를 지어 읊기를,

『양묵을 도망하여 돌아갈줄 알고

  이욕을 버리니 의리가 살찌도다

  천심은 무아인줄 비로소 알겠느데

  뜰앞에 풀들은 봄빛을 얻었도다.』

<逃楊逃墨早知歸利欲全除義勝肥. 始識天心無物我一般庭草得春輝>

인조 반정(仁祖 反正)후에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제수되었으나 끝내 나가지 않고 여년을 즐기다가 향년 76세로 돌아가시니 인조(仁祖) 17년 己卯 12월 22일이었다. 이듬해 2월에 고을 북쪽 부곡(釜谷), 지금 연기군서면 부동촌 동록 유좌(燕岐郡西面 釜洞村  東麓  酉坐)에 안장되었다.

공은 평생에 마음을 조심하여 매양 만족함을 알아야 하는 것으로 경계하였고, 어버이께서 늙으심에 봉양을 위하여 외직을 자청하였으니 관직 30년에 내직에는 10년도 있지 않았고 반정(反正)전 2년 동안은 한양(漢陽)에 발을 들여 놓지 않았다.

친상(親喪)을 당하여 애척(哀戚)한 나머지 몸이 쇠약해지기에 이르고 형제간에 우애가 극진하였으며 자질(子姪)들을 잘 가르쳐 모두 법도(法度)가 있었다.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남곽 박동열(南郭 朴東說). 동고 이유록(東皐 李?祿). 운촌 민여검(雲村 閔汝儉) 등 명사(名士)로 더불어 갑계(甲契)를 함께 하니 모두 사림(士林)의 성사(盛事)라고 일컬었다.

일찍이 중국(中國)에 갔다 오면서 공부자(孔夫子)의 초상(肖像)을 모시고 돌아와 집에 전하고 있으며 유고(遺稿)가 있다. 그리고 공이 스스로 지은 묘지(墓誌) 및 행장(行狀)이 있으며, 공께서 돌아가시자 시암 조상우(時庵 趙相寓)가 만사(輓辭)를 지어 애도하였다.

배위 남양홍씨(南陽洪氏)는 직장 탁(直長 鐸)의 따님으로 1남 2녀를 두어 아들은 선교랑 형국(宣敎朗 亨國)이요, 사위는 부윤 양천허 직(府尹 陽川許 稷)과 생원 거창신 익(生員 居昌愼 益)이다.

공의 사행(事行)이 진천(鎭川), 연기(燕岐)의 군지(郡誌)에 실려 있다.

공의 묘소가 근래 군사(軍事)지역에 편입되어 연기군 남면 고정리 시목성 건좌(燕岐郡 南面 高亭里 柿木城 乾坐)에 이폄, 합부하였다.

※ 朝鮮王朝寶錄. ?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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