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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성영(柳成永)



류성영 柳 成 永

<류성영 : 一名 : 成勳 1929.9.6. 社會奉仕, 檢漢城公派. 大丞公 30世>

영광군수(靈光郡守) 효장(孝章)의 15대손이요, 성균(聖均)의 손자요, 흥서(興瑞)의 5남3녀 중 4남으로 춘천시 소양로에서 태어났다. 모친은 전주이씨(全州李氏)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순실(純實)하고 효우(孝友)가 근천(根天)하더니 일찌기 춘천고등학교를 졸업하고 6.25사변당시 군 복무를 마친 다음 철도공무원 ․ 법률신문사기자를 거처 1955년 경찰직에 투신 30여년간에 걸쳐 공직자로서 맡은바 직책에 충실하였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 발전 및 사회봉사에 탁이한 공적을 남기고 편모를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하여 비록 직위는 낮았으나 그 행적은 모든 국민들의 귀감(龜鑑)이 되었다.

30년이나 된 춘천시 소양로 1가 도선장(渡船場)은 1일 평균 1친5백명에 달하는 도선객이 있지마는 이곳에 대기실 하나 없어 도선객의 불편이 말 할 수 없는 실정을 보고 박봉을 활애하여 5년 동안 모은 사재 20만원으로 아담한 대기실과 화장실 ․ 벤치 ․ 전화 ․ 우체통 등을 갖추고 온 가족이 정성을 쏟아 난로 피우기, 청소, 변소 수거등 봉사활동을 해 왔다.

이런 사실이 각 신문과 TV로 보도되자 내무부장관 문교부장 ․ 춘천시장으로부터 표창장과 각계로부터 많은 감사장을 받았다.

또 1978년 홍수피해로 농토를 잃은 주민 이찬근에게 사비 10만원을 지원하여 논 2천평을 개간토록하고 객토 480차와 생계비까지 지원하였고, 도선장대기실에 불구 청소년 기술양성소를 개설하여 이청송씨와 함께 시계수리 ․ 전자기술 ․ 도금기술 인장조각등을 가르쳐 여러명을 자립케 하였으며, 10평짜리 충효 경로회당을 지어 TV. 기타 오락기구등을 갖추어 놓았으며, 경노잔치를 베풀고 별세하신 부친을 대신하여 노모를 즐겁게 하고, 지체봉양(志體奉養)과 혼정신성(昏定晨省)에 정성을 다하는 한편 쓸쓸히 살아가는 이웃 노인들을 부모처럼 공경히 모시는데 정성을 다했다. 1982년 1월, 삼성미술문화재단에서는 그 효성을 높이 평가하고 제7회 효행상 수상자로 선정하여 부상과 함께 시상하였으며, 그밖에 대한노인회 중앙회장 및 춘천 문화류씨종친회장의 효행상, 춘천시민문화상등을 수상하였다.

씨는 평소 청백리로 칭송이자자하였던바 어느날 재미교포가 미화 9천달라를 잃어 버렸다가 이를 찾아준 사례로 1백만원을 씨에게 주었으나 끝내 이를 거절했는데 교포는 고국의 청렴한 경관에 감명한 나머지 치안본부 류내형부장에게 편지로 이 사실을 알리고 『고국의 경찰관을 위해 써달라.』는 내용과 함께 그 1백만원을 기탁한바 있었더니 특히 본부장은 씨에게 모범공무원상을 수여하였다.

씨는 유도 3난, 태권도 2단에 의근성적도 항상 1위를 차지한 모범 경찰관으로 경찰국장 ․ 도지사 ․ 치안본부장 ․ 철도청장등으로부터 많은 표창을 받았으며, 1984년12월25일 정년퇴임과 함께 대통령으로 부터 녹조근정훈장을 수여받았다.

노인들의 지팡이가 되어 묵묵히 돌봐주는 씨의 따뜻한 보살핌에 감복하여 소양로 2가 5십여명의 노인들은 사재를 털어 경로회관앞에 『柳成永先生忠孝頌德碑』를 세워 그 뜻을 칭송하고 있다.

비에 새긴 혜풍(惠風) 류성윤(柳聖允)이 지은 예찬시에 “아~ 이 사람을 보라 ! 춘천 호반에 어리어 핀 살아 있는 무궁화지팡이를, 내고장 어버이를 섬김이 친 어버이 섬김을 넘어 섰구나

소양동 노인의 보금자리 서면 뱃터의 보금자리 불우 소년들의 생명의 샘 용산리 농부의 생명의 샘, 아 그님 정(情)의 자국 마다엔 수많은 꽃이 피는가 사랑의 눈발 같이 정념(情念)의 문은 언제나 영원하므로 열려 있어라”하였다.

현재는 강원도청 위민실 봉사위원으로 활약중이다.

부인은 이천서씨(利川徐氏) 병칠(炳七)의 따님 양숙이요. 슬하에 2남 3녀를 두니 아들 근성(根盛)은 주미 뉴욕영사요, 근준(根準)은 대학생이며, 딸은 정수용(鄭洙鎔), 이강복(李康福)에게 각각 출가하고 미경(美京)은 미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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