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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탁(柳濯)

류탁(柳濯)

1311년(충선왕 3)∼1371년(공민왕 20). 고려의 무신. 본관은 고흥(高興). 자는 춘경(春卿).고흥부원군(高興府院君) 청신(淸臣)의 손자이며, 판밀직사(判密直事) 유기(攸基)의 아들이다.

문음(門蔭)으로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宿衛)하고 귀국, 감문위대호군(監門衛大護軍)이 된 뒤 고흥군(高興君)에 봉하여졌다.
1344년(충혜왕 복위 5) 원나라에 의해서 합포만호(合浦萬戶)가 되었다.1345년(충목왕 1) 밀직부사가 되었고, 1348년 평리(評理)로서 사신이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1349년(충정왕 1) 도첨의참리(都僉議參理)가 되었고, 이듬해 전라도양광도 도순문사(全羅道楊廣道都巡問使)를 겸하여 왜의 침략에 대비하였다.추성양절익조공신(推誠亮節翊祚功臣)이 되고, 1351년 찬성사가 되었다.
 공민왕초에는 전라도만호로 왜구들이 침입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장생포 長生浦〉 등의 곡(曲)을 지어 악부(樂府)에 올렸다. 찬성사 판삼사사(贊成事判三司事)를 역임하고, 1353년(공민왕 2) 첨의찬성사(僉議贊成事)로서 정조사(正朝使)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좌정승에 올라 고흥부원군에 봉하여졌으며, 장사성(張士誠)의 토벌을 위하여 원나라에서 징병을 하자 염제신(廉悌臣)과 함께 군사 2,000명을 이끌고 참전하여 공을 세웠다.1356년 문하시랑 동중서문하평장사(門下侍郞同中書門下平章事)에 이르렀으나 곧 유배되었다.
 다시 기용되어 1360년 경기병마도통사가 되어 왜구의 침입을 방비하고 고흥후(高興侯)에 봉하여졌다.이듬해 홍건적의 침입으로 왕이 안동으로 남행(南幸)하게 되자 도솔원(兜率院: 坡州)까지 호종하고 경상도도순문사 겸 병마사가 되었다.

1362년 좌정승에 올라 서북면홍적방어제군도통사(西北面紅賊防禦諸軍都統使)가 되었고, 이듬해 흥왕사(興王寺)의 변(變)을 진압하여 1등공신이 되었다.
이해에 다시 좌정승·우정승을 거쳐 1365년에는 도첨의시중(都僉議侍中)을 역임하였다. 노국대장공주(魯國大長公主)가 죽은 뒤 추충병의동덕보리익조공신(推忠秉義同德輔理翊祚功臣)에 올랐다.

1369년 안극인(安克仁)·정사도(鄭思道)와 함께 노국대장공주의 영전을 마암(馬巖)에 크게 신축하는 데 대하여 극력 반대하다가 투옥되고 시중에서 파면되었다.
왕과 신돈(辛旽)이 죽이려 하였으나 이색(李穡)의 간쟁으로 석방되었다.
1371년 신돈이 복주(伏誅)되자 그의 일당으로 노국대장공주의 장사(葬事)에 박례(薄禮)를 주장한 것이 헌사(憲司)에 의하여 탄핵을 받아 청교역(靑郊驛)에서 교수형을 당하였다.

조선 후 보국고흥백(輔國高興伯)에 추증되었다. 시호는 충정(忠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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