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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혁연(柳赫然)

류혁연(柳赫然)

1616년(광해군 8)∼1680년(숙종 6). 조선 후기의 무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회이(晦爾), 호는 야당(野堂). 효걸(孝傑)의 아들이다.대대로 무신집안에서 자랐으며, 1644년(인조 22) 무과에 급제하여 덕산현감·선천부사를 역임하였다.

1653년(효종 4) 6월 황해도병마절도사로 승진되고, 이듬해에 수원부사로 부임하였는데, 이때 군병과 기계를 잘 정비하여 효종으로부터 내구마(內廏馬)를 하사받았다.

당시 효종은 북벌을 염두에 두고 군비확충 및 국방에 진력하던 때여서 이에 적임한 무장을 찾고 있던 중, 그는 여러 문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약 승지로 발탁되었다.

그뒤 이완(李浣)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면서 효종의 북벌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이듬해 5월 충청병사로 부임하였다가 11월에는 삼도수군통제사에 승서되었다.

1656년 10월 공조참판이 되었다가 곧이어 어영대장으로 승서되었다. 당시는 당쟁이 서서히 격화되던 때이기 때문에 남인계열로 지목되어, 북벌에 대한 뜻은 같이하면서도 서인계열인 송시열(宋時烈) 등은 그를 싫어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효종의 신임이 매우 두터워서 형조참판·한성좌윤 등을 역임하면서도 군직을 그대로 맡고 있었다.
김수항(金壽恒) 등의 문신들로부터 국왕에게 아뢰는언사(言辭)가 외잡함과, 대신에 대한 비례(非禮)로 탄핵을 받아 동지중추부사·지중추부사 등의 한직으로 밀려나기는 하였으나 수도방어의 핵심군영으로 발전한 어영청의 대장직에서 물러나지는 않았다.

1669년(현종 10) 3월에는 현종이 온양온천으로 요양차 행행할 때, 그는 어영대장으로서 호위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였다는 문신들의 탄핵에 의하여 도제조(都提調)로 군직 일선에서 물러났다가 다시 우포도대장이 되었다.

현종 때에는 급료병인 5,000여명의 훈련도감병 운영비가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 이에 대한 논의가 많았다.

이에 그는 호(戶)·보(保)로 편제되는 훈련별대(訓鍊別隊)를 창설하여 급료병의 수를 줄여 재정의 곤란을 덜고 군액(軍額)은 그대로 유지할 수 있게 하였다. 이 훈련별대는 뒤에 병조의 정초군(精抄軍)과 합하여 금위영(禁衛營)으로 합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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