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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홍(柳洪)

 

류홍(柳洪)

미상∼1091년(선종 8). 고려의 문신. 본관은 정주(貞州). 뛰어난 무략(武略)으로 등용되어 1071년(문종 25) 급사중좌승선(給事中左承宣), 1073년 병부시랑중추원지주사(兵部侍郞中樞院知奏事)가 되었다.

1075년 중추부사가 되고, 이어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로 요나라의 사신과 함께 압록강 이동의 국경선을 획정하였고, 1078년 이부상서를 겸하였으며, 송나라의 사신이 오자 왕의 명으로 향연을 베풀었다.

1080년 호부상서로 예부시랑 박인량(朴寅亮)과 함께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다 저장(浙江)에 이르러 태풍을 만나 송나라에 공상할 방물을 대부분 망실하였는데, 송나라의 황제가 칙명으로 죄를 묻지 말도록 하여 왕이 석방하였다.

1081년 태자빈객(太子賓客)에 이어 중추원사가 되었다.1083년(선종 즉위) 참지정사(參知政事)가 되어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事) 이정공(李靖恭) 등과 시정득실(時政得失)을 고하였다.1086년 중서시랑평장사(中書侍郞平章事), 이듬해 수사공(守司空)이 더하여졌다.1088년 왕명으로 전성(氈城: 延安에 있는 祭天壇)에 초제(醮祭)를 베풀었다.

이듬해 새집을 지어 낙성하니 왕이 대복경(大僕卿) 이자의(李資義)에게 명하여 조서(詔書)를 가지고 가서 은기(銀器)·필단(匹段)·안마(鞍馬)를 하사하였다.
1090년 문하시랑평장사 판병부사(門下侍郞平章事判兵部事), 이듬해 서북면병마사 겸 중군병마사(西北面兵馬使兼中軍兵馬使)를 겸하여 구주지방의 방비를 충실히 하고 11월에 죽었다.

《춘추좌전 春秋左傳》과 병가(兵家)의 비결에 정통하였으며, 나라에 외환이나 묘제가 생길 때마다 고사를 인용한 방책을 세워 거의 해결하였다.
그의 딸은 숙종의 왕비 명의태후(明懿太后)가 되었고, 그 소생이 예종이다. 명의태후는 문종 이후 인종까지 모든 왕비가 인주이씨(仁州李氏)였으나 유일하게 채택된 타성의 왕비이다.선종의 묘정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광사(匡事)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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