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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지화(柳志和)

류지화(柳志和)
1599년(선조 32)∼1680년(숙종 6).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진주(晋州). 자는 후성(後聖), 호는 반구당(伴鷗堂).첨지중추부사 희춘(喜春)의 손자이고, 사복시주부 광복(光復)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승지 남치상(南致祥)의 딸이다.

12세에 어머니를 여의었으나 계모를 지성으로 섬겨 이웃의 칭찬을 받았다.
1633년(인조 11) 효행으로 천거되어 창릉참봉(昌陵參奉)에 제수되었으며, 선공감봉사(繕工監奉事)·상의원주부(尙衣院主簿) 등을 역임하였다.

1636년 근친하는 일로 귀향하였다가, 병자호란을 당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산성에 호종하고 척화론을 주장하였다.
이어 통진·회덕 현감 등에 제수되었는데, 가는 곳마다 선정을 베풀어 송덕비가 세워졌다.

그뒤 계모가 세상을 떠나자 고향으로 돌아와 다시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문에 ‘반구당’이라는 편액을 걸고 당대의 명류들과 경전을 토론하며 만년을 지냈다.

1680년(숙종 6) 호종공신(扈從功臣)에 추록되고 통정대부에 승서(陞敍)되었으나 조정의 명이 하달되기 전에 죽었다.
효자의 정문이 세워졌다. 김제 남산서원(南山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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