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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중교(柳重敎)

류중교(柳重敎)

1832년(순조 32)∼1893년(고종 30). 조선 말기의 학자. 본관은 고흥(高興). 초명은 맹교(孟敎). 자는 치정(穉程), 호는 성재(省齋).아버지는 진사 조(鼂)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韓山李氏)로 희복(羲復)의 딸이다.

이항로(李恒老)의 문인으로, 이항로의 사후에는 김평묵(金平默)을 스승으로 하였다.

1852년(철종 3) 이항로의 명에 의하여 《송원화동사합편강목 宋元璜史合編綱目》을 편수하였다.그러나 원나라 지원(至元) 25년까지만 편수하고, 그뒤는 그의 선조 청신(淸臣)에게 관계된 기사가 있는 관계로 김평묵이 완성하였다.

1876년(고종 13)과 1882년에는 선공감가감역(繕工監假監役)과 사헌부지평에 각각 제수되었으나, 모두 취임하지 않았다.1881년 김홍집(金弘集)이 일본을 다녀와서 미국과 연합하고 서양의 기술 등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계책을 세우자, 그는 김평묵과 함께 척사위정을 강력히 주장하였다.

1886년 이항로의 심설(心說)에 대하여 김평묵에게 〈논조보화서선생심설 論調補華西先生心說〉을 보냄으로써 사칠논쟁(四七論爭)이나 호락논쟁(湖洛論爭)에 버금가는 대논쟁이 이항로 문하의 안팎에서 일어나게 되었다.

심(心)을 기(氣)로 보는 유중교의 설은, 심을 이(理)로 보는 이항로 및 김평묵의 설과 정면충돌하게 되었다.
여기에 문인들이 두 갈래로 나누어져 논쟁이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전개되었다. 1888년에는 두 설을 절충하여 〈화서선생심설정안 華西先生心說正案〉을 김평묵에게 보냄으로써 잠정적으로 심설논쟁은 중단되게 되었다.

그러나 임종 직전에 문인들에게 〈정안문자 正案文字〉는 다시 생각해보니 사실과 도리에 모두 맞지 않는다 하여 거두어들일 것을 명하였으니, 결국 두 설은 귀일을 보지 못한 셈이다. 척사위정의 일에 대하여서는 이항로와 김평묵의 주장에 동조하기는 하였으나 그들보다는 온건한 경향을 나타내었다.

한편, 그는 음악에도 조예가 깊어서 〈자양금조후사 紫陽琴調候詞〉·〈옥계조 玉溪操〉·〈현가궤범 絃歌軌範〉 등을 저술하였다.그는 특히 공자가 도(道)를 가르치는 데에는 악(樂)을 사용하였는데, 지금은 고악(古樂)은 이미 없어지고 속악(俗樂)은 법(法)이 없어, 도를 배우는 이가 거문고 등에 종사하고자 하여도 시작할 터가 없다고 한탄하였다
.
제학에 추증되었고, 고산(高山)의 삼현서원(三賢書院)에 봉향되었다.서로는 《성재문집》 60권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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