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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우잠(柳友潛)


류우잠 (柳友潛)

1575~1635) 류우잠은 1575년(선조 8)에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상지(尙之), 호는 도헌(陶軒)이다.
 조부(祖父)는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된 류성(柳城)으로 영주에서 안동 수곡으그러나 25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하니, 학봉 김성일의 누이이자 류우잠의 조비(祖妣)인 의성김씨는 머리를 자르고 보리죽으로 연명하다가 3년상을 치른 후 상을 마치는 날부터 곡기를 끊고 자진하여 나라에서 열녀로 정려(旌閭)하였다.

로 이거하였다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된 류성의 두 아들은 외가인 천전(川前)에서 양육되었는데, 특히 외삼촌인 김성일이 두 생질을 자기 자식처럼 여기며 돌보고 가르쳤다. 류성의 맏아들인 류복기(柳復起)가 바로 류우잠의 부친이다. 따라서 김성일은 류우잠에게 있어 진외종조부가 되는 셈이다. 류우잠은 어려서부터 특이한 기질을 지녔으며 천성이 강직하고 순결하며 돈독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19세의 나이로 부친을 따라 의병진에서 활약하였으며, 1594년에는 팔공산에서 적을 막았으며, 1597년에는 창녕(昌寧)의 화왕산성(火旺山城)을 수비하였다1636년 인조의 강화도 피신 소식을 전해 듣고 후금의 만행에 대해 비분강개하였으며, 삼전도의 굴욕 이후 과거의 뜻을 포기하고 스스로 독서하며 후진을 양성하였다. 또한 도연명(陶淵明)을 사모하여 호를 ‘도헌(陶軒)’이라 하면서 은일 자적한 생활을 보내다가 1635년(인조 13)에 세상을 떠나니 향년 61세였다에 대하여

생몰년 미상. 고려의 문신.1297년(충렬왕 23) 전법판서(典法判書)를 지내고, 이듬해 충선왕이 잠시 집정하였을 때 병조판서 응양군상장군이 되었다가 곧바로 자정원부사 판내부시사(資政院副使判內府寺事)로 옮겼다.
7개월 만에 충렬왕이 복위하자 다시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에 임명되었다.1299년 밀직사로서 성절사가 되어 원나라에 다녀왔다.1302년 첨의참리(僉議參理)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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