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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문화류씨포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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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병조참판 이의재 류홍 기적비


선무원종공신 이의재  류홍기적비 건립

參判公履義齋柳泓先生紀績碑建立 문화류씨검한성공파 참판공가평종친회(회장 류재형)에서는 참판공(이의재류홍(履義齋柳泓)선생 기적비를 경기도가평군하면신상리(00번지) 국도변에 2010.8.18일 건립하고 관내유지와 후손들이 참여하여 제막하였다.
 이의재 류선생은  임진왜란시 평양에서 순절하신 선무원종공신二등으로 충남보령의 호국사(護國祠)와 전남 화순의 언동사(彦洞祠)에 배향되었다.
비문은 도산 류영렬이 찬하고 가평종중에서 세웠다. 공이 순국하진지 418년이 지나도록 신도비를 세워 懿蹟을 현양해 드리지 못 하였다

                                                                        자료제공:류재형 병조참판 이의재 류홍 <비문>    

                    贈嘉善大夫兵曹參判宣武原從功臣           
                     履義齋 柳泓先生 紀蹟碑銘倂序

 

유사 이래 수많은 전란 중 임진왜란보다 더 처참한 병화는 없었다. 국운의 쇠미를 틈탄 도이의 침입으로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의 위태로움에 처했을 때『위국사의대장부지사 爲國死義大丈夫之事』라 외치고 창칼을 집고 분연히 일어서 무수한 적을 무찌르고 장열히 순국한 분이 있었으니

공의 휘는 홍(泓)이요 자는 홍도(弘度)이니 호는 이의재(履義齋)로 官은 증가선대부병조참판이다. 본관은 文化로 高麗統合三韓翊贊壁上功臣 大丞公 휘 차달(車達)이 시조가 되고 六世를 전하여文簡公 諱 公權以後 명공거경이 계세연면 하였으니 僕射公諱 澤, 文正公 諱 璥, 貞愼公 諱 陞, 章敬公 諱 墩, 文化君 贈領議政 諱 鎭과 檢校漢城判尹 諱 元顯 ,富平府使 諱 善은 六代 이상이다. 공의 고조는 孝眞이니 병조참의요 증조는 澭이니 仁川府使요 조는 秀漹이니 文科敎理요 고는 德容으로 병조참의이니 至孝로 孝子旌閭를 命하고 비는 安東金氏니 縣監洢의 따님이다 .

공은 嘉靖丁巳(1557년)에 생하고 萬曆甲申(1584)에 武科에 급제하고 여러 관직을 거쳐 淮陽府使를 歷任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공은 忠憤義激하여 宣祖蒙塵에 백의로 扈從하여 平壤에 當到하였다가 전세가 급박함에 巡邊使李鎰의 軍營에 從事官에 除授되고 이어 部將으로 轉任하여 左防禦使鄭希賢과 參戰大小累功을 세웠다 癸巳(1593)正月 二次 平壤大戰時 含毬門밖에 陣을 치고 臨戰할새 중과부적으로 戰勢는 위급했다. 公은 제 將卒에 외치기를『 우리들은 모두 이 나라의 록을 먹은 신하(吾等具以世綠之臣)들이라 나라를 위해 의롭게 죽는 것은 男兒大丈夫의 義로 운일이라 (爲國死義大丈夫之事)죽음을 어찌 두려워하랴』하고 제 장졸과 결사구국을 誓天盟山하고 적진을 돌격 무수한 왜구를 무찌르고 장열히 순절하였다. 후일 李鎰의 장계로 備邊司에서 왕에 아뢰니 대왕은 크게 슬퍼하시고 전지에 사당을 세워 공의 충혼을 위로하라 명하시고 가선대부병조참판을 증직하고 宣武原從功臣二等에 策勳하였다. 또 이르기를 그훈공(勳功)을 후세에 전하여 자손이 영광을 누리도록 세상에 알리라 諭示하였다. 一九九三年 癸酉에 충남보령호국사에 배향되고 二千九年 기축에 和順彦洞祠에 추배하였다.

配는 貞夫人光山金氏이니 刑曹佐郞玧의 女요 子는 應良이니 會寧府使로 宣武原從功臣이요 손은 元이니 通仕郞光陵參奉이요 증손은 天民이니 贈都摠府副摠官으로 三男을 두었다. 男長은 通政大夫 震龍 次는 慈城郡守 化龍 三은 通德郞 文龍으로 후손이 번성하고 현달하여 아름다운 가업을 계승하였다. 공의 長劍은 弟 百泉 公涵에게 전하여 형의 충절을 흠모하며 무예를 닦더니 정병양란丙丁兩亂에 倡義하여 國亂平定에 功이 빛났다. 계매는 崔瑞生의 부인으로 순종하여 烈女旌門을 세우니 忠孝義烈이 一門兩代에 炫燿하였다 공의 묘는 加平郡下面新下里亥座原에 장사지낸 후 四百餘年이 지나도록 신도를 밝히는 빗돌을 세우지 못하여 이를 憫忙히 여기어 왔다. 이제 徽績이 국사와 공신록권에 명료한 기록이 세상에 드러났다. 이에 후손들이 정성을 모아 벌석을 도모할제 有司 在瀅仁鉉이 내게 생석문을 청하거늘 내 菲才淺學으로 감당하기 어려워 辭讓하였으나 권함이 極盡하였다. 또한 나의 先祖일이기에 감히 옷깃을 여미고 忠烈앞에 머리숙여 當時 國難記錄을 살피니

슬프다 국조가 부색일새 왜구가 猖獗이라 임진계사년에 바다건너 연안을 침범하니 침입수일에 서울이 함락이라. 露粱海戰에 바다가 피로 물들었고 幸州大捷은 시체로산을 이루었네. 평양대전에 전운이 성에 가득하니 육해가 침탈이라 나라운명이 頃刻에달렸는데 天步가 열리지 않아 세상형편이 날로 어려워지고 땅의 地紘이 다하여 길이 희미해 향방하기 어려웠다. 七年전쟁에 전화를 어찌 다 헤아리리요.

銘을 붙이니 성왕몽진에 백의로 호종하고 평양대전에 위험을 보고 命을 던졌도다 공이 분투할새 용의 날램이요 범의 포효로다 전공이 혁혁할 새 그 功業은 하늘이 굽어보았고 행장은 땅이 밝게 증명하도다. 성왕이 장계를 보시고 슬퍼하사 전지에 사우를 지어 忠魂을 위로하라 하시고 宣武原從功臣二等에 策勳하라 명하시고 공업을 鼎鐘에 새기었다. 공이 가신지 四百年지나 사적이 세상에 밝게 나와 가평신도에 돌을 다듬어 徽績을 새기니 雲岳山日月이 천추에 밝게 비추도다.

西紀2010年 庚寅 7월 上浣

               後孫壬亂功臣忠義宣揚會會長成均館 典儀 暎烈 謹撰

                           後學 杞溪後人 杲岡 兪炳利 謹書

                               文化柳氏檢漢城公派 參判公加平宗中 謹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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