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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송암 류관柳灌의 오죽헌 삼인시 감상

송암 류관의 오죽헌 삼인시 감상

송암 柳灌이 강원관찰사로 있을 때 오죽헌에서 명사들과 노닐며 지은 시이다. 오죽헌주인 이사온과 삼척부사 기재 신광한 삼인이 지은 시가 판각되어 전하는데 이시를 후세사람들은 「삼인시 三人詩」 라고 부른다.

高臥江村老此身 고와강촌노차신

강촌에 높이 누운 채 이내 몸 늙어 가는데

一軒風味竹爲隣 일헌풍미위죽인

한 정자 풍광의 멋, 대숲으로 이웃했네.

碁無敵手名乃貴 기무적수명내귀

바둑에 적수 없으니 명성은 그대로 귀하고

甕有香醪醉是珍 옹유햔요취시진

단지에 향 좋은 술이 취하는데 보배일세.

興到涉園添散逸 흥도섬원첨산일

흥에 겨워 정원을 걸으니 세상일 잊게 되고

閒來得句寫淸新 한내득구사청신

한가로이 시를 지으니 청신함이 배었구나.

憑君欲問幽居趣 빙군욕문유한취

그윽한 곳 사는 정취 그대에게 묻노니

愧我紅塵汨沒人 괴아홍진골몰인

부끄럽다 내 홍진에 골몰한 사람임을

                                    강원도관찰사  松庵 柳灌

吾廬雖少亦容身 오려수소역용신

집은 비록 적으나 몸담을 만하고

爲築維垣闢四隣 위축유원벽사린

담장을 둘러쳐서 사린을 경기했네

遠近碧山千古畵 원근벽산천고화

멀고 가까이 앉은 산들 천고의 그림이요

風霜烏竹一軒珍 풍상오죽일헌진

풍상을 이겨낸 오죽은 이 집의 보배일세

黃花自笑年年嫩 황화자소연연눈

황국은 해마다 피어도 저리도 고운데

白髮誰催日日新 백발수최일일신

백발은 누가 재촉하는지 날로 더 시네.

莫惜傾家成醉臥 막석경가성취와

가재 기울도록 취해 누웠다고 비웃지 말게나

人間何處有眞人 인간하처유진인

인간의 어느 곳에 신선이 있다더냐.

                                  오죽헌 주인 李思溫

我與丹靑等幼身 아여단청등유신

나도 단청하면 아름다운 몸이 되려니

何須朱粉笑東隣 하수주분소동인

분 좀 발랐다고 어찌 이웃들이 웃는 거냐.

桑田白日孤輪轂 상전백일고윤곡

상전에는 늘 밝은해가 둥글게 솟지마는

槐國金章一夢珍 괴국금장일몽진

三公들 좋은 문장 한 낫 꿈속 진귀일 뿐.

元亮晩尋黃菊饗 원량만심황국향

도연명은 늦도록 국화 향을 즐기었고

季鷹終好玉蒪新 계응종호옥박신

장한은 말년까지 옥박의 청신을 좋아했지

閒閒窺有燒丹計 한한규유소단계

틈틈이 단약 굽는 법을 몰래 익혀두었다면

莫秘貴囊遠示人 막비귀낭원시인 秘

주머니에 숨겨두지 말고 멀리 남들에 보여주시렴.

                                            오죽헌 주인 李思溫

주)|원량(元亮)=, 365년 ~ 427년)도원량(陶元亮.도연명(陶淵明은 중국 동진의 시인이다. 자는 원량(元亮), 본명을 잠(潛), 자를 연명(淵明)이라고도 한다. 오류(五柳) 선생이라고 불리며, 시호는 정절(靖節)이다.

주)장한(張翰) : 자는 계응(季鷹), 오(吳)나라 사람이다. 글을 잘 지었으며, 성격이 분방하여, 사람들이 강동(江東)의 보병(步兵 : 죽림칠현 중의 한사람.

주)옥박(玉蒪); 귀한 향초

주)소단(燒丹);참동계의 靈丹을 만드는 도가의 비법* 주역참동계에서 론한 長壽하고 道通하며 永生하는 영약을 굽는 비법을 말함//연단, 도교의 신선사상, //〈참동계〉는 내용이 매우 어렵고 심오하기 때문에 그 해석이 분분하다. 사람은 정·기(精氣)로 만들어져 있는데 이 정과 기는 바로 음·양(陰陽)이다. //연단은 음양을 잘 조제해 정기를 충실하게 유통시킴으로써 사람의 건강과 장수를 돕는 데 그 목적이 있다.

辨得江湖未死身 변득강호미사신

말하노니 강호를 얻어 사는 이 몸

一軒烏竹萬夫隣 일헌오죽만부인

한 정자 오죽과 만인을 이웃으로 삼았네

家徙此物貧爲寶 가사차물빈위보

집에는 한갓 가난을 보배로 여겼는데

識止於君籟是珍 식지어군뢰시진

그대로 부터 竹籟가 보배인 것을 알았네.

碁局隱隨淸影轉 기국은수청영전

바둑판에 그늘지니 맑은 그림자 음직이고

酒樽和道細香新 주준화도세향신

술잔에 화도 감도니 그윽한 향이 새롭구나.

韓公錯有昏冥論 한공착유혼명론

한유는 불가의 혼명론을 잘못 지었고

殊異蘇仙俗了人 수이소선속료인

특이한 소동파는 속세에서 인생을 마쳤다네.

                                    삼척부사 기재신광한(企齋 申光漢)

주)뢰(籟);세구멍퉁소 뢰. 죽뢰-대나무잎이 바람에부디끼며 나는 소리 //

한공=韓愈 (한유;768∼842)는 字(자)가 退之(퇴지)로 중당을 대표하는 문학가이다. 한유는 고문가답게 자신의 시풍을 尙怪(상괴)와 산문화의 방향으로 발전시킴으로써 당시의 새로운 일가를 이루었다. 그래서 송대의 진사도는 그의 {後山居士詩話(후산거사시화)}에서 "퇴지는 문으로써 시를 쓰고, 자첨은 시로써 사를 썼다" 退之以文爲詩(퇴지이문위시), 子瞻以詩爲詞(자첨이시위사)라고 하였다. 그는 중당의 대표적인 排佛論者(배불론자)이다. 그렇지만 그의 排佛(배불)은 개인적인 입장에서 출발했다기보다는 그가 활동했던 중당의 불교환경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소선(蘇仙);蘇東坡=중국 북송시대의 시인·산문작가·예술가·정치가.

본명은 소식(蘇軾), 자는 자첨(子瞻). 동파는 그의 호로 동파거사(東坡居士)에서 따온 별칭이다. 아버지 소순(蘇洵), 동생 소철(蘇轍)과 함께 '3소'(三蘇)라고 일컬어지며, 이들은 모두 당송8대가(唐宋八大家)에 속한다

작가소개

류관 柳灌;, 1484~1545]| 본관 문화(文化). 자 관지(灌之). 호 송암(松庵). 시호충숙(忠肅). 1507년(중종 2)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정언(正言)·지평·장령·부승지·강원도관찰사·대사헌을 거쳐 병조와 형조 및 이조의 판서를 역임하고 좌찬성에 이르렀다. 1543년 국경지대의 정지정책에 따라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남쪽 하삼도(下三道) 백성들을 평안도지방으로 이주시키는 일을 지휘하였다. 1545년(인종 1) 우의정을 거쳐 좌의정이 되고, 인종이 죽고 어린 명종이 즉위하자 원상(院相)이 되어 서정(庶政)을 총관하였으나, 정권을 장악한 소윤(小尹)일당이 일으킨 을사사화로 서천(舒川)으로 유배되어 가던 도중 과천(果川)에서 사사(賜死)되었다. 선조 때 복관되어 중종의 묘정에 배향되었다. 문집에 《송암집》이 있다.

이사온(李思溫)의 시 오죽헌(烏竹軒)

신사임당의 외조부이고 강릉 향현의 한 분인 최응현의 사위로 시와 문장이 뛰어났다. 그의 작품 ‘오죽헌’의 시

에서 뛰어난 시의 향기를 맡아볼 수 있다. 이사온은 한때 오죽헌의 주인이었다.

오죽헌; 烏竹軒은 신사임당이 율곡을 낳은 집이다. 오죽헌을 처음 지은 이는 세종 때 공조참판을 지낸 강릉 최

치운(崔致雲)으로, 최치운은 이집을 차남인 병조참판 최응현(崔應賢)에게 물려주었고, 최응현은 다시 그의 사

위인 용인 이사온(李思溫)에게, 이사온은 무남독녀로 사위인 평산 신명화(申命和, 사임당의 부친)에게,

신명화는 또 그의 넷째 사위인 안동 권화(權和)에게, 권화는 그의 아들 권처균(權處均)에게

물려주어 1975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성역화 사업으로 국가에 헌납할 때까지 안동권씨

강릉파 종손 권용만(權容萬, 전 강릉사범대 교수)의 소유였다.

신사임당[申師任堂, 연산군 10년(1504)~명종 6년(1551)], 아명은 인선(仁善), 당호는

사임당(師任堂), 본관은 평산, 아버지는 기묘명현의 한 분인 신명화(申命和), 어머니는

이사온(李思溫)의 따님 용인이씨(龍仁李氏)로 5녀 중 차녀로 태어났다. 1522년 19세 때

덕수이씨 이원수(李元秀)와 결혼하여 4남3녀를 두었는데, 세째 아들이 율곡 이이(李珥)다.

사임당의 어머니 용인이씨는 무남독녀로 출가한 후에도 친정에 머물러 살았고, 사임당도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들 없는 친정집에서 아들잡이를 하다가 친정아버지 3년상을 마치

고난 다음 1525년 22세 때 서울 시댁에 올라와 구고례(舅姑禮 : 오늘날 폐백)를 드렸다고

한다.

//오죽헌을 처음 지은 이는 세종 때 공조참판을 지낸 강릉 최치운(崔致雲)으로, 최치운은 이

집을 차남인 병조참판 최응현(崔應賢)에게 물려주었고, 최응현은 다시 그의 사위인 용인

이사온(李思溫)에게, 이사온은 무남독녀로 사위인 평산 신명화(申命和, 사임당의 부친)에게,

신명화는 또 그의 넷째 사위인 안동 권화(權和)에게, 권화는 그의 아들 권처균(權處均)에게

물려주어 1975년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성역화 사업으로 국가에 헌납할 때까지 안동권씨

강릉파 종손 권용만(權容萬, 전 강릉사범대 교수)의 소유였다.

신광한申光漢

1484(성종 15)~1555(명종 10).

조선 중기의 문신.

대제학을 지낸 당대의 문장가로 2편의 몽유록과 소설에 근접한 2편의 전(傳)을 남겼다. 본관은 고령(高靈). 자는 한지(漢之)·시회(時晦), 호는 기재(企齋)·낙봉(駱峰)·석선재(石仙齋)·청성동주(靑城洞主). 영의정 숙주(淑舟)의 손자이고 내자시정(內資寺正) 형(泂)의 아들이다.시호는 문간(文簡)이다.

필력이 뛰어나 몇 편의 몽유록과 전을 남겼는데 〈안빙몽유록 安憑夢遊錄〉·〈서재야회록 書齋夜會錄〉은 이른 시기에 이루어진 몽유록이다.

                                                              < 번역 ;도산 류영렬 >

* 문화류씨포럼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0-12-10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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