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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KBS.1 학자의 고향(반계 류형원)방영

KBS.1 TV 학자의 고향에 실학자 반계 류형원(하정공파) 선조편이 방영될

예정입니다.

우리 류문의 유지종친님들이 많은 시청이 있기를 바랍니다.

일시는 오는 2011년 7월 31일(일요일)과 8월7일(일요일) 양일에 걸쳐

1부와 2부로 나뉘어 방영됩니다.

 

유형원(柳馨遠)에 대하여 


자 덕부(德夫)

호 반계(磻溪)

생졸년 1622 (광해군 14) - 1673 (현종 14) 

시대 조선 중기

본관 문화(文化) 

활동분야 학자 > 실학자


[관련정보]

[생원진사시] 효종(孝宗) 5년(1654) 갑오(甲午) 식년시(式年試) 진사 2등(二等) 3위


[상세내용]

유형원(柳馨遠)에 대하여

1622년(광해군 14)∼1673년(현종 14). 조선 후기의 실학자. 본관은 문화(文化). 자는 덕부(德夫), 호는 반계(磻溪).

1. 가계

세종 때 우의정을 지낸 관(寬)의 9세손으로, 현령 위(湋)의 증손자이고, 정랑 성민(成民)의 손자이며, 예문관검열 흠(������)의 아들로, 어머니는 참찬 이지완(李志完)의 딸이다. 서울 출신.

18세에 혼인하였는데, 처는 심수경(沈守慶)의 증손녀이며, 부사 심은(沈誾)의 딸이다.

임진왜란 뒤 사회가 극도로 어지럽고 양반사회의 모순이 노정되어가던 17세기초에 한성 외가에서 출생하였다. 전형적인 사대부집안에서 태어나 글공부도 제대로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으나, 불행히도 2세 때에 아버지를 잃게 되었다. 당시 아버지 흠은 유몽인(柳夢寅)의 옥에 연좌되어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옥사하였다.

형원은 5세 때부터 취학하여 글을 배우기 시작하였는데, 그의 스승은 외삼촌 이원진(李元鎭)과 고모부 김세렴(金世濂)이었다. 이원진은 이익(李瀷)의 당숙으로 하멜표류사건 당시 제주목사로 있었던 사람이다. 김세렴은 함경도와 평안도의 감사를 역임하였고, 대사헌까지 지낸 당대의 이름 높은 외교관이기도 하다.

2. 성장

형원이 15세가 되던 해인 1636년(인조 14)에는 병자호란이 일어나서 가족들과 함께 강원도 원주로 피란을 갔었고, 다음해에는 지금의 양평땅인 지평 화곡리(砥平花谷里)로 이사하였다가 그 다음해에 다시 여주 백양동으로 자리를 옮기기도 하였다.

1644년 23세 때에는 할머니의 상, 1648년 27세 되던 해에는 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으며, 탈상되면서 두 차례에 걸쳐 과거에 응시하였으나 모두 낙방하였다.

그뒤 1651년(효종 2) 30세 때에는 할아버지의 상을 당하였다.

2년 뒤 복상(服喪)을 마치게 되자, 그해에 32세의 젊은 나이로 멀리 전라도 부안군 보안면 우반동에 은거하기 시작하여 20년간 이곳에서 여생을 보내다가 1남6녀를 남기고 1673년에 죽었다. 반계라는 호를 가지게 된 것도 이곳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우반동에 은거하면서 오랜 세월을 걸려서 쓴 《반계수록(磻溪隨錄)》 26권은 이곳에서 이루어졌다.

3. 반계수록

《반계수록》은 그의 주저(主著)로서, 그동안 그가 겪은 농촌생활에서의 체험과 농촌경제의 안정책 등을 제시한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책으로서 그의 정책론(政策論)이라 하겠다. 이 책의 성립연대는 정확하게 밝혀져 있지 않으나 그의 연보 등을 통하여 추정하면, 그가 우반동으로 와서 은거생활을 시작한 지 6년 후에서 11년 사이로, 그의 나이 38세부터 43세 사이가 될 것 같다.

《반계수록》의 주된 내용은 ① 전제(田制: 토지제도), ② 전제후록(田制後錄: 재정·상공업 관계), ③ 교선지제(敎選之制: 향약·교육·고시 관계), ④ 임관지제(任官之制: 관료제도의 운용 관계), ⑤ 직관지제(職官之制: 정부기구 관계), ⑥ 녹제(祿制: 관리들의 보수 관계), ⑦ 병제(兵制: 군사제도의 운용 관계), ⑧ 병제후록(兵制後錄: 축성·병기·교통·통신 관계), ⑨ 속편의 의례·언어·기타, ⑩ 보유편(補遺篇)의 군현제(郡縣制: 지방제도 관계) 등으로서 국가체제의 전반적인 개혁방안을 제시하였다.

4. 기타저술

《반계수록》 이외에도 정치·경제·역사·지리·군사·언어·문학 등 다방면에 관심을 가지고 수십권의 저서를 남겼다고 전하나 불행하게도 《반계수록》 이외에는 서목(書目)만이 전하여지고 있다.

그 주요한 것으로 ① 성리학 관계의 《주자찬요 朱子纂要》·《이기총론 理氣總論》, ② 지리서로는 1656년, 그의 나이 35세 때 박자진(朴自振)과 함께 《동국지지 東國地志》에 대하여 깊이 토론한 끝에 지리의 식견을 정리한 《여지지 輿地志》를 비롯하여 《지리군서 地理群書》 등이 있으며, ③ 역사서로는 44세 때 편찬한 《동국사강목조례 東國史綱目條例》를 비롯한 《동사괴설변 東史怪說辨》·《동국가고 東國可考》 등이 있다. 그리고 ④ 병법서로 《무경사서초 武經四書抄》·《기효신서절요 紀効新書節要》, ⑤ 음운(音韻)관계의 《정음지남 正音指南》, ⑥ 문학 관계의 《도정절집 陶靖節集》·《동국문초 東國文抄》, ⑦ 기타의 저술로 《기행일록(紀行日錄)》 등을 꼽을 수 있다.

그가 죽은 뒤 그의 명성이 얼마 동안은 세상에 묻혀 있다가 죽은 지 100년 뒤에 와서야 그의 인물됨과 《반계수록》의 내용이 알려지고 높은 평가를 받게 되었다.

당시 국왕(영조)이 관심을 가지고는 그 초고(草稿)를 직접 읽어보고 크게 칭찬함과 동시에 인쇄하여 세상에 널리 반포하도록 명하였다고 한다. 왕명을 받아 《반계수록》의 서문과 함께 세상에 알린 사람이 경상도관찰사 겸 대구도호부사 이미(李瀰)였고, 반포한 때가 1770년(영조 46)으로 그가 죽은 지 꼭 97년 뒤의 일이다.

이 일이 있기 이전 1753년에는 조정에서 그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그에게 통정대부로서 집의 겸 세자시강원진선을 추증하였고, 1768년 10월에는 판중추 홍계희(洪啓禧)가 찬한 묘비가 죽산부사 유언지(兪彦摯)에 의하여 세워졌다. 그리고 1770년에는 다시 통정대부 호조참의 겸 세자시강원찬선에 증직되었다.

5. 사상

《반계수록》에 나타난 그의 사상적 특징은 부민(富民)·부국(富國)을 위하여 제도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즉,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농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토지제도를 개혁하여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농민들에게는 최소한의 경작지를 분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형원의 최대목표는 자영농민(自營農民)을 육성하여 민생의 안정과 국가경제를 바로잡자는 것이었다.

토지는 국가가 공유하고 농민들에게 일정량의 경지만을 나누어주는 균전제를 실시하자는 것이다.

즉, 그는 경자유전(耕者有田)의 원칙과 균전제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밖에도 그는 병농일치의 군사제도, 즉 부병제(府兵制)의 실시를 강조하였다.

원래 그가 주장한 균전제와 부병제는 중국의 수나라와 당나라에서 중시하였던 제도였다.

또한, 국가재정을 확립시키기 위하여 세제와 녹봉제를 정비할 것도 주장하였는데, 세제는 조(租)와 공물(貢物)을 합쳐 경세(經稅)라는 이름으로 불러야 하며, 경세는 수확량의 20분의 1로 하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과거제의 폐지와 공거제(貢擧制)실시, 신분제 및 직업세습제의 개혁, 학제와 관료제의 개선 등 다방면에 걸쳐서 국운을 걸고 과감하게 실천하여야 할 것을 강조하였다.

이와같이, 모든 제도의 개혁이 이루어지면 천덕(天德)과 왕도(王道)가 일치되어 이상국가가 실현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이와같은 주장은 실제로 실행되지는 못하였으나, 그의 개혁의지와 사상은 당시 재야지식인들의 이상론(理想論)이 되었으며, 후학들의 학풍조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특히, 그의 학문은 실학을 학문의 위치로 자리잡게 하였으며, 이익·안정복(安鼎福) 등으로 이어져 뒤에 후기실학자로 불리는 정약용(丁若鏞) 등에게까지 미쳐 실학이 집대성되게 하였던 것이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磻溪隨錄

儒敎淵源

柳馨遠(李勳求, 朝鮮名人傳, 朝光社, 1947)

磻溪柳馨遠硏究 上·下(千寬宇, 歷史學報 2·3, 1952)

磻溪柳馨遠(千寬宇, 韓國史의 再發見, 一潮閣, 1975)

磻溪柳馨遠硏究(千寬宇, 近世朝鮮史硏究, 一潮閣, 1979)

磻溪柳馨遠의 社會改革思想(鄭求福, 歷史學報 45, 1970)

磻溪柳馨遠의 商業振興論(元裕漢, 弘益大學校論文集 15, 1984)

磻溪柳馨遠의 官職論考(李存熙, 邊太燮博士華甲紀念史學論叢, 三英社, 1985)


柳 志 世 정리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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