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제    목  류태영 박사 특강 (청소년미래재단이사장)

북마크 이메일 본 글에 관한 개인적 게시나 링크가 가능하며 독자의 의견은 아래의 댓글란을 이용하세요.

운좋은 예감!! 검색단어 제안 클/ 릭/ ↓

[포토 갤러리]

유태인 교육 전문가 류태영 박사

 

“30년 후를 꿈꾸게 하라, 그러면 지금이 보인다”

                                                                                         류태영박사 소개

칠순을 훌쩍 넘긴 류태영 박사의 목소리는 아직도 청년 못지 않게 힘이 있다. 류박사는 지난 4월 5일 아보츠포드의 유학사관학교 개원기념 특별강연의 연사로 밴쿠버를 방문했다. 30여명의 소규모 강연이었지만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때론 웃음이 터져 나오면서 류박사 특유의 익살 넘치는 명강의는 이어졌다.

  아는 사람은 알 테지만 류태영 박사는 박정희 대통령 시대의 새마을 운동 주도했던 인물이다. 한국 근대화의 초석이 되었던 새마을 운동을 기초한 류태영 박사. 그는 지금도 유태인 교육 전문가로, 18권에 이르는 책의 저술가로, 사람을 휘어 잡는 명강사로 세계 곳곳을 누비고 다닌다.

  이번에 밴쿠버를 방문하게 된 것은 유학사관학교가 한국의 최선 어학원과 함께 아보츠포드 분원을 오픈하면서 최선 어학원의 고문인 류박사를 특별 초빙하게 된 것이다.

  2시간여 이어진 아보츠포드에서의 특강은 토요일 오전 모처럼 시간을 낸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꽤 귀중한 시간이 되었다. 학생은 물론 부모 역시 살아가는 데 있어 꿈과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삶의 자세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미래를 꿈꾸고 이를 향해 차근차근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류박사는 강연 내내 강조했다.

  류태영 박사의 인생 이야기를 듣노라면 우리가 가진 여건이란 것이 더없이 유복한 것을 깨달을 수 있다. 물론 몇 세대를 건너뛴 차이는 있지만 삶의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류박사는 강원도 깡촌, 당시 말로는 ‘토끼와 발 맞추어 산다’는 산골 동네에서 태어났다. 너무 가난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도 진학을 못했다. 학교 대신에 머슴살이를 하면서도 공부하고 싶다는 열망에 책을 놓지 않았다.

  지게를 지고서도 책을 항상 읽는 어린 태영을 본 동네 유지인 장로는 그에게 가정교사를 시켰고 덕분에 중학교를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에 가고 싶지만 가까운 곳엔 고등학교가 없었다. 태영은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 서울역에서 구두닦이, 신문배달을 하여 번 돈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마치고 결국 야간대학에까지 입학했다.

  그의 꿈은 외국으로의 유학이었다. 구두닦이 주제에 허황된 꿈을 꾼다고 주위 사람들은 태영을 놀렸다. 하지만 그때마다 마음 속으로 유학을 떠나는 자신의 모습을 끊임없이 그려 보았다.

  돈이 없는 그는 국비장학생으로 유학을 가야 하지만 그런 실력은 되지 못했다. 궁리 끝에 유학지로 결정한 곳은 복지국가로 잘 알려진 덴마크. 최고의 복지 국가 덴마크는 가진 것 없는 그에게 뭔가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무작정 덴마크 국왕 앞으로 장문의 어설픈 영문 편지를 보냈고 정말 하늘이 도운 것처럼 덴마크 왕실로부터 답장이 왔다.

  왕실 사무국에서 보내온 편지에는 “당신의 뜻을 받아들여 유학을 위해 사안을 행정부로 이첩한다”는 단 세 줄의 내용이었다.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발생한 것이다. 그는 정말로 덴마크 정부의 국비 장학생으로 생전 처음 비행기를 타고 낯선 덴마크 땅에 발을 딛는다.

  흰 얼굴에 파란 눈 괴상한 언어를 쏟아내는 덴마크인들을 바라보며 내가 과연 이곳에 적응할 수 있을까 자신이 없었지만 어렵게 여기까지 온 태영은 물러설 수 없었다. 생활에 꼭 필요한 일상의 문장 300개를 만들고 하루 10문장씩 외었다.

  잊어 버리면 또 외우고 해서 3개월만에 일상의 문장을 모두 숙지했다. 그러나 이것으론 부족했다. 공부하기 위해선 전문용어를 알아야 했다. 그래서 다시 3개월은 전문용어 공부에 매달렸다. 태영이 6개월만에 대학원에 입학하자 덴마크인들은 혀를 내둘렀다.

  태영은 새마을 운동의 기초가 된 덴마크 농촌의 현대화를 공부했다. 가난을 이겨내고 부자가 된 덴마크 농촌에 대한 현지에서의 공부는 나중에 한국의 새마을 운동으로 70년대를 빛냈던 것이다. 태영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이스라엘 유학을 결행, 집단농장 기브츠와 탈무드를 공부하며 더 공고히 농촌 발전의 지식과 경험을 다져 나갔다.

  태영은 결국 박사 과정까지 마치고 이스라엘 국립대학의 교수까지 되어 유태인들 앞에서 원어로 강의를 했다.

류태영 박사는 강조한다. “의지와 노력이 있는 곳에 길은 열린다.”

 

<안되는 일은 없다, 부정적 사고가 문제다>

  류박사는 자신은 공부도 못했고 머리도 좋은 편이 아니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이런 류태영도 해냈는데 못할 사람이 누가 있겠냐고. 모두가 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다. 자기 자신을 믿고 ‘I Can Do It’ 이라고 되놰라. 안되는 일은 결코 없다.

  류박사는 어려서부터 삶의 계획표를 구체적으로 준비했고 그것을 향해 한걸음씩 옮겨 가며 결코 좌절하지 않고 스스로를 믿었다.

  류태영 박사는 학생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꿈이라고 항상 강조한다.

  “젊은이는 꿈을 가져야 한다. 30년 후 내가 무엇이 되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 이런 목표가 세워지면 20-30단계를 거꾸로 거슬러 내려가라. 그러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명료하게 나온다. 미래의 꿈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지금부터 그 목표를 향해 계단을 밟듯 하나씩 올라가야 한다. 그렇게 쉼 없이 하나하나 성취해 나가면 꿈은 당당한 현실이 된다.”

  자신의 미래를 그려보라. 그 미래의 모습에서 하나하나 내려보며 ‘로드맵’을 그려 보라. 그러면 지금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이 나온다.

  류박사는 자신의 성공비결은 ‘자기통제’였다고 말한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별볼일 없는 자신이 유학 가 박사가 되고 교수까지 된 것은 항상 기도하는 마음으로 위기에 당당히 맞섰고 느슨해지는 자신을 다그쳐 목표를 향해 스스로를 통제해 나갔던 것이다.

  칠순이 훨씬 넘은 고령에도 불구 전세계를 누비고 사는 류태영 박사. 그에게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다. 그는 정신력으로 나이는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멀리 자녀와 함께 유학 와 있는 학부모들은 자녀만 공부하는 게 아니라 부모 스스로도 공부해야 한다. 부모가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주고 사랑으로 자녀를 믿어줄 때 자녀는 반드시 부모에게 보답한다.”

  류박사는 강연의 말미를 ‘부모도 변해야 하며 항상 공부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

[  편집자 주.]

◆류태영 박사님은…

1936년생. 건국대학교 졸업. 한국성서대학교 졸업. 덴마크 외무성 초청으로 노르딕 농과대학에서 연구. 이스라엘 예루살렘 헤브루대학 사회학 석박사.
현 건국대학교 총장역임, 사범대학 명예교수. 농촌 청소년 미래재단 이사장.

 

저서: ‘나는 긍정을 선택한다’ ‘천재를 만드는 유태인 교육’ ‘꿈과 믿음이 미래를 결정한다’ ‘언제까지나 나는 꿈꾸는 청년이고 싶다’ 등 다수.

.......................................................
                                      본자료는 청소년미래재단홈페이지에서 옮김    류영렬 

 


 
       

Next   전 대종회 수석부회정 류종현 모친상 편집인
Prev   신년 하례회 개최 안내(2012. 2. 3. 금요일 11시)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