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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하정공류관(柳寬)의무악정도길흉상소문

 

 

하정공 柳寬 논모악정도길흉소 (論母岳定都吉凶疏 )  

 신(臣) 등은 말씀을 드리나이다. 지리(地理)의 법(法)은 신(臣) 등이 배운바가 아니라 그 역순(逆順)과 길흉(吉凶)의 이치(理致)는 망녕되이 논의(論議)할 수 없아오나 다만 도읍(都邑)을 정하는 법(法)으로 말하오면 옛부터 제왕(帝王)이 도읍(都邑)을 정하는 바가 형세(形勢)가 평탄하고 넓어야 가히 백성이 잘 살 수 있으며, 뱃길이 통하여야 가히 곡식을 운반할 수 있으며, 도리(道里)가 서로 골라야 가히 사방(四方)을 통행(通行)할 수 있으며, 토지(土地)가 고상(高爽)하여야 가히 수재(水災)를 피할 수 있으니 이 네 가지를 갖추지 못 하오면 좋다 할 수 없습니다. 삼대(三代) 이상(以上)은 상고(詳考)할 수 없아오나 주(周)나라의 도읍(都邑)을 정한 것은 가히 말할 수 있아오니 상(商)나라의 역년(歷年)이 육백년(六百年)이온데 무왕(武王)이 주(紂)를 토벌(討伐)하고 천하(天下)를 통일(統一)하여 호경(鎬京)에다 도읍(都邑)하고, 성왕(成王)이 무왕(武王)의 뜻을 이어 낙양(洛陽)에다 도읍(都邑)을 옮기여 팔백년(八百年)의 사직(社稷)을 열었읍니다. 대저 낙양(洛陽)은 형세(形勢)가 진실로 평탄하고 넓어서 뱃길이 통하고 그 땅이 또한 고상(高爽)하며 도리(道里)가 서로 고르니 이 네가지 좋은 것이 있다고 할수 있나이다. 신(臣) 등은 간절히 아뢰나니 송도(松都)는 곧 주(周)나라의 호경(鎬京)이요, 한양(漢陽)은 곧 주(周)나라의 한양(漢陽)이라 할 수 있나이다. 대저 천하(天下)가 지극히 넓다 하되 고금(古今)의 도읍(都邑)한 곳이 관중(關中) 낙양(洛陽) 금릉(金陵) 등 두어 곳에 불과(不過)하거늘 하물며 우리나라는 사방(四方)이 만리(萬里)도 못되어 도읍(都邑)을 할 수 있는 땅이 어데간들 많이 있으리까? 생각컨데 송도(松都)와 한양(漢陽)은 좋은 가운데에서도 더욱 좋은 곳으로 생각하나이다. 신(臣) 등이 또 풍문에 들으니 민심(民心)이 있는 곳에 곧 천명(天命)이 있다 하나이다. 거년(去年)에 계룡산(鷄龍山)에 도읍(都邑)을 정하려 할 적에 백성들이 다 근심 하였나이다. 무슨 연고(緣故)인가 하오면 그 형세(形勢)가 좁고 땅이 얕으며 도로(道路)의 멀고 가까움이 고르지 못하고, 물길이 먼 때문이었나이다. 이제 한양(漢陽)에 도읍(都邑)을 옮기려 하심에 백성들이 기뻐하며 말하기를 「한양(漢陽)의 지세(地勢)와 거리와 수로(水路)가 송도(松都)와 서로 같으니 기왕 옮기시려면 한양(漢陽)보다 더 좋은 곳이 없나이다 하였습니다. 신(臣) 등이 민심(民心)을 잘 살펴 보옵건데 한양(漢陽)은 진실로 하늘이 전하(殿下)께 주신 도읍(都邑)이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데 전하(殿下)께서는 민심(民心)을 굽어 살피시여 이에 도읍(都邑)을 정하시고 주(周)나라의 인후(仁厚)한 정사(政事)를 행하시면 역년(歷年)의 많음이 진실로 주(周)나라보다 오래 갈 것이온데 어찌 술수(術數)에 구애되어 다시 점처서 구하오리까? 이제 술가(術家)들의 말을 살펴보니 모악산(母岳山)의 남(南)쪽에 배가 통행할 수 있고 도로(道路)의 원근(遠近)이 균등(均等)하기는 하나 그 형세(形勢)가 아주 좁아서 조정(朝廷)과 불장(巿場)을 개설(開設)하는데 적당치 못하고 땅이 얕어서 뒤에 수침(水浸)의 환란이 있을까 두려우니 실로 성대(聖代)의 도읍(都邑)에 합당치 아니하옵고 또 술수(術數)로 말씀하오면 안함로(安咸老)와 동원중(董原中)의 글이 부질없는 말로 그 술수(術數)를 높이고 처음에는 그 믿음을 보였으나 그 곳은 분명히 알 수 없으며 그 말을 가히 다 이해(理解)할 수 없는데 한강의 심복(心腹) 위에 삼봉(三峰)이 있다는 말을 보오면 한양부내(漢陽府內)가 그가 말한 땅이 아닌가 생각되나이다. 신(臣) 등의 좁은 소견(所見)은 이에 그치오니 오직 성상(聖上)게서 잘 살피시어 도읍지(都邑地)를 선택하소서」 하니 주상(主上)께서 도읍(都邑)을 한양(漢陽)으로 옮길 것을 윤허(允許)하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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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論母岳定都吉凶疏

臣等言地理之法臣等素所不學其逆順吉凶之理不敢妄議姑以立都之法言之自古帝王所都形勢寬廣可以奠民居舟楫通達可以運租粟道里相均可以御四方土地高爽可以避水災四者不備不可謂之善也三代以上莫之詳考獨惟周室定都可得而言者商之歷年六百祀矣武王伐紂而有天下都于鎬京成王承武王之志遷都洛陽以開八百年之社稷夫洛陽形勢實寬廣而通舟楫其土地亦高爽而均道里固有四者之善也臣等竊謂松都卽周之鎬京漢陽卽周之洛陽也夫天下至廣也而古今所都不越乎關中洛陽金陵數處而已况我國家四境之內不過萬里可都之地豈能多有惟松都與漢陽善之善者也臣等又聞民心所存卽天命所在去年春定都于鷄龍民咸憂之何者以其形勢狹隘而土地汚下道里不均而水道迂遠也今之遷漢陽也民咸喜之曰漢陽之形勢土地道里水路與松都相若遷之則無右於漢陽臣等以民心觀之則漢陽誠殿下天命之都也伏惟殿下俯順民心定鼎于玆行周家仁厚之政歷年之多固遠過於成周矣何必拘於術數更枚卜乎今觀母岳之南舟楫之通道里之均固有之其形勢狹隘將不容朝巿之設土地汚下恐有墊溺之患誠不合於聖代之所都也且以術數言之安咸老董原中之書詭言以高其術開端以示其信不可的知其處又不可盡解其語觀其漢江心腹上有三峰等論意其漢陽府內是其所指之地也臣等管見止此惟 聖鑑裁擇焉上依允定都于漢陽     
                                           太祖三年甲戌十一月 日                                      

                                            司憲中丞 柳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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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조선왕조실록.문화류씨대보 / 원문 역문정리 류영렬201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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