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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柳車達과*車達 두 위패가 모셔있는 통일대전의 괴이한 일 -류주환-

고려통일대전에서 일어나고 있는 괴이한 일

- 류주환, 2011. 2. 14.   


일정한 역사적인 시기의 인물들을 배향해 놓는 곳이 있다. 그런데 여기에 한 인물이 두 개의 위패로 모셔져 있다. 이런 해괴한 일이 가능할까.
 
그런데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고려통일대전"이라는 곳에서이다. 고려선양회(http://www.koryo.or.kr/)에서 관리하는 이곳은 고려의 왕들과 충신, 공신들의 위패를 모셔 기리고자 건축된 곳이다. 현재 129개의 회원 문중에서 1명에서 12명까지의 선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그런데 위패를 봉안하는 과정에 실존인물인지 여부도 파악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해당 사이트의 게시판에는 '분명히 역적으로 명기된 자도 모셔져 있다'는 코멘트마저 있는 형편이다. 자칫하면 조상과 족보 위조를 통한 가문 부풀리기의 장(場)으로 악용될 소지가 크다. 이런 일이 중앙정부와 지자체의 지원 하에 건축된 곳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은 심각성을 더해준다. 위패 봉안은 원하는 문중에서 일정 금액의 봉안비를 내고 신청하여 이루어지는데, 여러 문중에서 거액의 봉안비를 마련하느라 종원들에게 호소하는 경우가 종종 보인다. 고려의 공신이나 충신이 무수히 많은 것도 아니니 숫자를 제한할 필요도 없이, 일정한 기준을 세워놓고 역사적인 자료들을 검토하여 그 기준에 합당한 인물들의 위패를 모셔 기리면 될 일을, 위패를 모시는 데 무슨 큰 비용이 들어간다고 위패 장사(?)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고려통일대전에는 심지어 한 인물이 두 개의 위패로 모셔져 있다. 귀신이 있다면 향불을 흠향하러 오다가 정신이 헛갈려 다시 명부로 돌아갈 일이다. (사족: 난 조상의 기림에는 십분 찬동하지만 귀신을 믿지는 않는다.)
 
그 인물은 바로 문화류씨의 시조이신 류차달(柳車達, 이하 대승공)이시다. 대승공께서는 고려 개국시 왕건을 도와 공신이 되었다는 사실이 고려시대의 금석문(비석), 고려사, 그리고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되어 전해오고 있다. 문화류씨 인물로는 대승공을 외에 柳公權, 柳澤, 柳彦沉, 柳璥의 4위가 더 배향되어 있다. 모두 고려사에 행적이 뚜렷이 나와 있는 인물들이다.
 
그런데 대승공께서 연안차씨의 인물로 또 위패가 모셔져 있다. 놀랍게도 여기서는 柳車達의 이름(성명)이 車達로 바뀌어 버린다. 곧 성(姓)이 '차'이고 명(名)이 '달'로 둔갑한 것이다.
 

문화류씨 위패
연안차씨 위패.
문도라는 시호도 후대에 만들어진 것이다
고려통일대전의 사이버 분향관의 대승공 위패

이런 일제시대의 창씨개명의 만행보다 훨씬 심각한 일이 어떻게 해서 벌어진 것일까. "고려통일대전지(誌)"라는 문헌을 보면 연안차씨의 車達의 항목에 주석을 달기를 "차달(車達)은 문화류씨(文化柳氏)에서 류차달(柳車達)로 하여 시조라 하는 대승공(大丞公)과 동인(同人)이다. 문화류씨 원파보(文化柳氏 原派譜)와 고려사(高麗史)에 대한 여러 고서문헌(古書文獻)의 고증(考證)에 의거 작성 함"이라 되어 있다. (필자 주: 여기서 原派譜는 源派錄의 오기임.)
 
시퍼런 사실을 가리고 진실을 왜곡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구절마다 묻어난다. 그러나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문화류씨의 원파록은 공식적으로 폐기되었으며(2008년), '고려사에 대한 여러 고서문헌'이라는 것은 실상을 알고 보면 "차원부설원기"라는 문헌이 전부인데, 이 문헌은 이미 역사학계에서 여러 차례의 연구논문을 통해 위서(僞書)로 판명이 난 것이다. 심지어 이 "차원부설원기"에서조차 한 번도 대승공을 차씨로 표현한 적이 없고 '류차달'이라 명기하고 있다. 따라서 대승공을 '차씨'라고 하여 위패를 봉안한 연안차씨의 행태는 만인의 공분을 살 일이다. 또한 각각 위서와 폐기된 사료인 차원부설원기와 원파록에 근거하여 묘사한 연안차씨의 내력의 묘사는 역시 모두 믿을 수 없다.
 
한편 연안차씨는 고려통일대전에 문중 가운데 단양우씨 12위, 평산신씨 11위, 담양국씨 11위에 이어서 4번째로 많은 10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대승공 이외에 車孝全, 車若松, 車倜, 車松祐, 車蒲溫, 車原頫, 車仁頫, 車安卿, 車尙道가 그들이다. 이들 이름과 "고려사"의 색인을 비교하여 보면, 이중 車若松, 車倜, 車松祐, 車蒲溫의 4명은 "고려사"에 나오며, 車孝全, 車原頫, 車仁頫, 車安卿, 車尙道의 5명은 그 자취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고려사"가 고려의 역사를 완벽하게 표현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표적인 사서이다. 그곳에 이름도 언급되지 않은 사람들이 지금 와서 고려의 충신이나 공신으로 위패가 봉안되었으니, 고려통일대전의 권위는 의심받아 마땅하다.
 
"고려사"에 나오는 인물들 중 차척에 대한 표현은 이렇다.
     "승선(承宣) 차척(車倜)은 재능(才能)은 없고 오직 아첨하는 얼굴로 남의 비위를 맞추니 일찍이 최충헌(崔忠獻)에게 붙어 권세를 마음대로 하여 권세가 중외(中外)에 기울이더니 최이(崔怡)가 미워하여 나주(羅州)에 귀양보냈다. 뒤에 최이(崔怡)가 비밀히 글로서 소환(召還)하여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 어사대부(御史大夫)를 제수(除授)하고 먹을 것을 후(厚)히 보냈다. 또 사랑하는 명기(名妓)인 옥기향(玉肌香)을 주어 위자(慰藉)하였다. (고려사 129, 열전 42, 반역 崔怡)"
 
인물의 평가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것이 보통이지만 고려의 충신과 공신으로 위패를 봉안하려면 최소한 일생 고려에 충성을 바친 사람이어야 하지는 않을까.
 
그런데 정말 문제가 되는 것은 "고려사"에 이름조차 나오지 않는 車孝全, 車原頫, 車仁頫, 車安卿, 車尙道의 경우이다. 이들은 대개 "차원부설원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이다. 이 문헌은 차원부를 주인공으로 내세웠지만 실은 여러 사람들의 행적과 가문사(家門史)를 꾸며내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설원기는 이미 위서(僞書)이자 악서(惡書)로 판명되었으며 따라서 그 내용은 전부 믿을 수 없음이 밝혀져 있다. 대개 설원기를 제외하면 그 내력을 알 수 없는 인물들인 것이다.
 
연안차씨에서 발간된 "의덕사사지"에는 차문의 재실(齋室)인 의덕사에 배향되어 있는 선조들의 설명이 있는데, 차인부라는 두 사람의 동명이인이 등장한다. 둘 다 벼슬이 시중(侍中)이었다고 하며, 설원기에 차인부라는 인물이 "남쪽 변방으로 귀양 갔는데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다"고 되어 있는데, 의덕사지에는 두 차인부에 대해 똑같은 기술을 하고 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어쨌거나 귀양 운운은 설원기에서 조선시대의 일이고, 고려 때는 단지 벼슬이 시중이었다는 사실만 기록이 되어 있다. (물론 설원기는 위조이고, 벼슬에 대한 증거도 없다.) 고려통일대전이란 곳이 어떤 곳이기에 공신과 충신으로 이런 자취 없는 인물이 올라갈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하다.
 
더구나 차안경과 차상도는 "의덕사사지"의 항목에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고려통일대전지(誌)"의 차상도의 항목을 보면 군더더기 빼고 (1) 우왕 12년에 성균관 진사가 되었다, (2) 태종이 벼슬을 내렸으나 하륜 일당을 피해 도망하다 죽었다는 두 가지로 그 행적이 요약된다. 그리고 이것이 갑자기 '불사이군'한 것이라고 논리의 비약을 하고 있다. (1)은 역사적 근거가 없고, (2)는 위서 설원기의 조작된 이야기이다. 역시 고려의 공신이나 충신으로까지 부르기에는 미약하다. 물론 고려시대에 살았고 벼슬이나 최소한 진사라도 한 인물들은 모두 대전에 배향할 것이라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때에도 과거급제의 증거도 없다. 차안경은 차상도의 아버지라 하는데, 유사한 상황이다. 더구나 설원기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변형이 덜 된 것으로 평가되는 필사본에는 어찌된 일인지 차안경의 아들은 차상도가 아니라 차보성(車寶成)으로 되어 있다.
 
또한 설원기의 중심에 있는 차원부에 대한 묘사도 위에 언급한 차상도의 경우와 동일한 성격의 패턴을 갖는다. 물론 그 비중은 훨씬 크다. 그리고 차상도와 마찬가지로 과거급제나 관력의 증거가 전무하고 설원기에 묘사된 행적은 믿을 수 있는 것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이미 다른 곳에서 누차 상세히 다루었다. 차효전에 대해서도 이미 다루었기에 여기서 반복하지 않는다.
 
문화류씨 시조 대승공의 성(姓)이 갈리는 모욕에 대해 반응하다 보니 고려통일대전 자체에 대해 의심이 들어, 그 만행의 주체인 차문의 위패가 봉안된 경우들만을 살펴보았지만, 필경 다른 성씨에서도 유사한 경우들이 있으리라 추측하지 않을 수 없다. 고려통일대전이 문중들의 가문과 나라의 역사 왜곡의 본거지라고 인식 받지 않으려면 투명하고 엄정하게 선양 사업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고려의 역사를 선양하자고 시작한 것이 이대로 두면 오히려 혼란만 가중시키고 결국 고려의 역사를 혼탁하고 알 수 없는 것이라 인식하게 만드는 역효과를 낼 것이다. 반드시 신중한 역사의 재평가의 노력 위에서 사업이 진행되어야 하며, 특히 인물 선정은 각 문중에만 맡겨서는 문제가 있어 불가하고, 권위 있는 학술기관이나 위원회의 주관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고려통일대전 곧 고려선양회는 하루 빨리 잘못된 성씨로 왜곡되어 있는 대승공의 위패를 철거하여 올바른 위패만 남기고, 이미 봉안되어 있는 다른 위패들도 모두 엄밀하게 그 가치를 재검토하기를 촉구한다.
 
                                                     2011. 2. 14. 
          
                                                                 翰軠 류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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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류주환 박사의 동의하에 옮김     *          편집실  류도산


* 편집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4-19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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