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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차관계에 대해 차문이 소송을 골어와도 환영합니다. <류주환글>



차문이 소송을 걸어와도 환영합니다.

- 류주환, 2009. 10. 19.   


우연히 차문의 홈페이지( http://www.cha.or.kr/ )를 방문했더니 '질문과답변' 게시판에 류차문제에 관한 글이 69번에서 76번까지 8개가 올라와 있었습니다. 모두 chacha5155라는 아이디를 가진 한 사람에 의한 글입니다. 8월에는 구체적으로 차문의 반응을 요구하는 글이 올라왔었는데 삭제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디였습니다.)
 
차문 홈페이지는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개편되기 이전에도 류차문제에 관한 글이나 '류주환이란 자가 누구냐'하는 내용의 질문 등이 올라왔지만 대개 삭제되었고, 지금은 개편되어 모두 사라졌으며, 현재의 형태가 된 후에도 유사한 글들이 올라왔었으나 대개 삭제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분위기에서는 위의 글들도 조만간 삭제될 가능성이 높지만 더 이상 차문에서 문제 회피를 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chacha5155의 글들은 류차문제 제기를 저의 개인적인 수준으로 잘못 파악하고 있습니다. "차원부설원기"는 류차문제의 중심에 서 있고 엄밀한 역사적, 문헌적 비평의 대상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집중적으로 고찰하는 대상이 됩니다. 그것의 진실 여부에 대한 대답이 곧 류차관계의 유무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과 대략 동일합니다. 그런데 이 문헌은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위서(僞書)임이 밝혀졌고, 자연스레 그 위작의 배경으로서 가문을 꾸며 높이기 위한 의식(意識)이 제기되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갖고 있는 논문을 보면 1990년대 후반부터 일어난 일입니다(조선시대에도 간혹 위서라는 언급이 있었습니다만, 여기서는 최근의 명확한 일만을 논의의 대상으로 하겠습니다). 그리고 차문에 의한 대대적인 문화류씨 시조 모독을 계기로 문화류씨 대종회를 중심으로 해서 다각적인 검토가 이루어졌고 오랫동안 갈등과 토론을 거쳐 류씨와 차씨는 선계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대동보와 문화류씨 유래비 등을 통해 대종회 곧 문화류씨의 입장으로서 세상에 천명되었습니다. (문화류씨 대동보에서 차문의 행위에 대해 어떻게 표현했는지 보면 그 분위기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http://moonhwaryu.kr/ 뿌리탐구 > 역사 > 6번 글). 이런 상황인데 제 개인의 '차문 공격'이라고 말하는 것은 전후를 잘못 파악한 소치입니다.
 
또한 명확히 할 것은 저는 언제나 차씨들을 싸잡아 비난한다는 잘못된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 왔습니다. 비난 대상은 (위작(僞作임)이 사실상 증명되고 사학계에서조차 인정되는) "차원부설원기", (아직은 확실치 않으나 문제가 제기되고 있는) 차문의 족보 서문, (언제 조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조작임이 확실한) 교지(敎旨), (심지어 설원기에 명백히 묘사되어 있는 구절들조차 무시한) 문화류씨 시조의 모독 등의 사실 조작과 그 전파를 자행해온 주체들입니다. 개중에는 이전의 문화류씨들조차 거의 그랬듯이 전해오는 이야기를 사실로 신봉하고 충심으로 행동한 결과도 많았겠지만, 위에 언급한 것들은 모두 누군가 자의적으로 사실을 왜곡하고 조작한 것들입니다. 비난 받을 주체가 없을 수 없습니다.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어떤 집안 혹은 문중이 어떤 일을 했다'는 말이 있을 때 그것을 확대해서 그 문중의 '모든 구성원이 그런 일을 했다'고 말했다고 해석한다면 어리석은 일입니다.
 
chacha5155는 그 중차대한 시조 모독 문제를 간과하거나 아예 무시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것에 생각이 미치지 않고 쓴 글들이라면 이것의 심각성을 제고해야 합니다. chacha5155는 74번 글에 이렇게 썼습니다. (남 글을 인용할 때 명확히 출처와 인용임을 밝혀주어야 합니다. chacha5155의 글은 저의 글을 여럿 인용하고 있는데 인용인지 자신의 글인지 모르게 되어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시정되어야 합니다.)
 
"시조는 필요없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올라가고 올라가면 인류의 조상에 귀착할것입니다. 그건 영원한 수수께끼기 아님니까? 류주환씨만 하더라도 자연과학 아마도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분인것 같은데 유교의 구습에 사로잡혀 조상의 역사가 곧 자기의 역사라고 맹신하고 있습니다."(chacha5155, 74번 글)
 
이런 말은 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현재 우리의 조상의 개념은 남성 위주이기 때문에 비판의 여지가 크며 분명 개선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알 수 있는 조상들을 인식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그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부모와 조부모의 의미를 그 위로 계속 확장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조는 우리가 그 내력을 파악할 수 있는 가장 위의 분이라서 의미가 있습니다. 그 위의 알 수 없는 분들을 무시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가 보니 "무명용사의 묘"에는 무명용사들을 기려, 대통령들 무덤에도 없는, 1년 365일 지키는 군인이 있더군요. 그런 식입니다.) 세상에 허다한 사람들이 있어도 자신의 부모는 남과 구별되듯이 그런 식으로 조상을 구별하는 것일 따름입니다. 윗글에서와 같은 인식은 이런 인지상정을 그릇되게 하는 위험한 요소가 들어 있다고 느껴집니다. 그런 친애(親愛)의 인정이 과연 '유교의 구습'으로 매도될 수 있는 것인지 되묻고 싶습니다.
 
시조 문제로 돌아가서, 문화류씨 시조 모독은 차문에서 일으킨 범죄행위입니다. (설명: 차문=차씨 집안 중에 책자, 홈페이지, 족보, 유래비, 위패 봉안 등등의 수단을 통해 실상을 알고도 왜곡을 시작하고 계속하고 있는 대표자들; 혹시나 이 글을 보실 연안차씨 귀하를 지칭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글에서 모두 동일함.) 류차관계의 해소에까지 이어진 일련의 상황은 바로 그것에 의해 촉진되었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차문에서는 자신의 가문과 조상을 높이려다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난국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시조 모독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가시화되었고, 문화류씨뿐만 아니라 전후를 분간할 수 있는 누가 봐도 공분할 내용이라서, 대체 어떤 심리(心理)로 그러는 것인지 도무지 파악할 수조차 없습니다. 시조 모독의 사실이 널리 알려진 것이 2004년 즈음인데, 당시 연안차씨 문중에 대고 소송을 해야 한다는 주장들도 난무했습니다.
 
그러나 아쉽게도 족보는 대개 법적인 판단의 대상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족보의 조작 행위를 통해서 토지 수용에서 이득을 보려는 행위 같은 것은 명백히 범죄를 구성합니다. 민사소송의 경우에도 개인적인 피해가 가시적으로 명확하지 않으면 소송이 이루어지기 어렵습니다. 당시에도 아마 그런저런 이유 때문에 소송으로까지 진행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만일 연안차씨 문중이나 어떤 개인이 제게 류차문제와 관련하여 소송을 걸어온다면 적극 환영입니다. 저의 법률 지식에 따라 이런 가능성이 적다고 판단해왔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왜 민사소송뿐이겠습니까. 단체와 구성원들의 명예훼손을 들어 형사고발까지 해야지요. 아마 문화류씨대종회와 제가 소송의 피고가 되겠지요. 내심 그런 일이 있기를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는 생각마저 갖고 있었습니다. 민사가 되었건 형사가 되었건 법적인 판단을 받는 것은 세상사에 있어서 때로는 바람직한 방법이 되기도 합니다. 저의 주안점은 작금의 문제는 가문과 족보와 시조 등등의 왜곡이라는 집안간의 문제를 넘어서서 신분의 개념과 역사를 혼란시킨 '불의(不義)'와 '거짓'이라는 사회문제라는 것입니다. 집안과 가문도 사회와 인류를 위해 선(善)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면 제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역사에 남아있는 우리조상의 행적을 기록하고 기존의 족보를 참조하여 새로운 기록을 만들자'로 귀결되는 chacha5155의 제언들은 말이 거칠지만 대개 저의 주장과 같은 맥락입니다. 차씨 문중을 이끌어가는 분들께서 잘 귀담아 들어주시길 기대해 봅니다.
 

이하는 chacha5155의 언급에 대한 몇 가지 코멘트입니다.
 

1. "문화류씨들이 차원부설원기가 위작이라면서 차씨문중을 싸잡아 비난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 차원부 설원기가 위작이라는 그들의 주장에 일리 있어보이지만... 위작이 몇백년동안이나 인정되어온 역사 사회적 상황도 고려하기를 바라며...차씨들 전체가 위대한 문화류씨에 빌붙어 이름을 높여보려한다고 착각하지말라."(chacha5155, 75번글)
 
어떤 집안이고 가문이나 조상 같은 것에 전혀 관심이 없거나 심지어 반감을 보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것만을 생각해도 차문의 행위에 대해 문화류씨나 사학계와 보학계 등에서 어떤 언급을 한다 해서 그것이 그 구성원 전체를 '싸잡아 비난'하는 것이 아니며, 그렇게 하려 해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물론 '역사 사회적 상황'은 십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토 대상이 되는 '차문'의 행위에는 과거의 특정한 몇몇 잘못도 포함되지만 현재진행형인 잘못들이 더욱 문제가 됩니다. 시조 모독을 고의로 시작했고, 류문의 거듭된 항의, 나아가서는 엄정한 왜곡 사실의 지적들까지도 무시하고 더욱 심화한 것들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진실이 숨겨져 왔었으나 이제 밝혀졌으니 앞으로 거짓은 버려야 합니다. 차문에서 선뜻 받아드릴 수 없는 일이었기에 지난 몇 년동안 몇몇 분께서 어쩔 수 없이 억지를 부려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 잘 해결되기를 바라마지 않습니다.
 

2. "그렇다면 문화류씨와 연안차씨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던 것일까? // 우리의 성씨는 왜 수레 차가 되었을까? 수레 만드는 특별한 기술을 가졌을까? 그런 특별한 기술을 가지고 북방에서 한반도로 내려와 정착했을까? 아니면 자생적으로 기술을 개발했을까? // 문화류씨들이 시조라고 일컫는 류차달에 하필이면 차자가 들어갔을까? 우연일까? 그도 수레에 대한 특별한 뭔가를 갖고 있었을까? // 그리고 연안과 문화라는 지역이 같은 황해도 지역이다. 그 당시로 보면 그리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한반도 전체로 본다면 비교적 가깝다."(chacha5155, 71번글)
 
흥미롭게도 柳라는 글자에도 '수레'의 뜻이 있습니다. "강희자전"에 보면 柳 항목 중에 "又車也"([柳는] 또 '車'의 뜻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아래 설명에 '廣轍車'와 '大牛車'를 '柳'라고 했다고 되어 있습니다. 곧 柳의 뜻에는 '큰 수레'도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참고로 한 말일 따름이고, 사회문화적 현상으로서 한문식 이름과 성씨가 널리 퍼진 라말려초 (羅末麗初)에 어떤 이유로 한자 성씨들과 이름들이 이름이 선택되었는지는 지금으로서는 추측 이외에는 할 도리가 없습니다. 다만 문화류씨의 시조의 이름에 관해서는 이미 고려시대부터 수레와 연관된 전승이 기록되어 내려오고 있어 그렇게 받아드릴 뿐입니다. 반면 車씨(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수레의 뜻이 더 확실한 한자이지만 그 내력은 기록된 바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중국의 車씨는 수레와 연관되어 지어졌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대개 한국의 한자 성씨들이 중국의 성씨를 모방했다는 것이 인정되고 있는데, 모방할 때 중국의 대성(大姓)을 골랐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 한 글자를 고를 때 아무 이유 없이 무작위로 했다기보다는 어떤 이유가 있어서, 예를 들어 버드나무가 많은 고장에 살아서 柳씨로 했다거나 수레와 연관이 있어서 車씨로 했을 가능성이 높지만 모두 추측에 지나지 않습니다. "차원부설원기"에 제시된 선계(先界)의 조작은 문화류씨 시조의 이름에 車자가 들어가 있다는 사실이 배경 중 하나가 되어 있음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설원기라는 문헌이 믿을 수 없고 그 위작의 이유 중 하나가 선계의 역사를 조작해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현재의 문화류씨와 연안차씨의 연관성은 완전히 배제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좁게는 황해도 지역, 넓게는 韓의 강역(疆域)[만주 등지 포함]의 지리적 근사를 공통분모로 하여 둘 다 같은 큰 갈래에 속한다는 사실은 자명합니다만, 여기는 그런 민족적 개념을 논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3. "그들은 기원에 관한 신화적 측면은 고려하지 않는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조작했다하더라도 문화류씨와 연안차씨가 어떤 관계가 있다고 추측하고 있다. 문화면과 연안군은 인접해 있으며 고려사에 언급되기 시작한 것도 비슷한 시기이다. 우리의 성씨는 수레 차이며 그들의 시조는 류차달인데 차자가 들어가 있다. 그리고 연안군은 문화면보다 개성에 더 가깝다. 어떤 혈연 관계가 있었다면 연안차가가 우위에 있었을 것이다"
"오백년 왕가를 이룬 전주이씨도 오늘날 국밥 만들어 팔며 살고 있는 이시대에 조상이 벼슬을 더 많이 했다고 해서 한 문중을 싸잡아 위서로 자기네한테 빌붙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는 행위는 명망있는 문중에서 할짓이 아니다. 좀더 차분하게 역사적 사실과 신화적 측면을 고려하여 논쟁함이 마땅할것이다."(chacha5155, 72번글)
 
우선 72번 글의 말미에 "내가 대통령이 된다면..." 운운은 스스로에 침을 뱉는 성숙하지 못한 말입니다. 문제의 주체인 소수와 그 구성원 개개인 전체를 혼동하는 치기스러움은 극력 지양해야 합니다.
 
신화에 관하여는, 민족과 종교치고 신화를 만들지 않은 것들은 생명력이 길지 못합니다. 과거의 궁극까지 알 수 없는 인간들이 적절히 집단정체성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화를 이용합니다. 그것이 일부 씨족에까지 퍼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유명한 "반지의 제왕"의 저자 톨킨이 신화를 만들어내는 것에 평생을 바친 것처럼 현재에도 신화 만들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화의 효용을 무시하거나 이해하지 못하고 접근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밝힙니다. 류차문제에서는 1580년 즈음에 만들어지고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다고 스스로 밝히고 있고 저자들이 누구누구라고 밝히는 명백한 실체의 문헌이 그 중심에 서 있습니다. 그것이 내용과 저자들이라는 양쪽 모두의 측면에서 거짓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는 것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신화가 언급될 이유는 없습니다.
 
"어떤 혈연 관계가 있었다면 연안차가가 우위에 있었을 것"이라는 따위의 말은 타당한 근거가 없어 하지 않는 것이 좋은 말입니다. 성씨의 생성에는 고려가 아니라 신라시대의 중앙관리의 지방파견과 정치변동에 따른 이주의 가능성도 있고 자생 호족의 가능성도 있으며 경제적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한 해상 또는 육로를 통한 중국 등 타지역에서의 유력 인사의 이동의 가능성도 있습니다. 모호하고 상관관계도 증명할 수 없는 이유들을 들어 '우위' 운운하는 것은 말을 꺼내지 않음만 못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우위'란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누구는 3품인데 누구는 2품이었다는 그런 식인가요? 아니면 그냥 '우위'가 아니라 '혈연관계 우위'라면 먼 아저씨와 조카쯤 되었다는 식의 얘기일까요? 아무런 근거가 없는 언급일 따름입니다.
 
"한 문중을 싸잡아 위서로 자기네한테 빌붙는 파렴치한으로 몰고 있는 행위"는 안타깝지만 어떤 면에서는 내용으로는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절대로 저런 논리도 아니고 문중 전체를 비난하는 것도 전혀 아니며 저렇게 말하지도 않습니다. "누군가 위서를 만들어 문중의 역사를 조작해 내었고 그런 거짓된 역사가 사실인 양 지금까지 내려왔으므로 이제는 그런 거짓을 털어내고 올바른 역사를 세우자"는 것입니다. 다만 중요한 점은 비판을 받을 사람들은 절대로 문중 전체, 그 구성원 개개인이 아니라 그런 일을 직접 행하고 그것을 계속하고 있는 몇몇 대표자들과 개인들입니다. 문화류씨건 연안차씨건 다른 성씨의 그 누구건 역사가 왜곡되어 왔음을 알고 앞으로는 다시는 그런 일들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3. "틈틈이 류주환씨의 글을 읽어보니 차원부 설원기가 과장된 바는 있으나 완전 날조는 아니라고 판단되는군요."(chacha5155, 75번 글)
 
이 75번 글은 제가 쓴 "차원부설원기" 관련 글을 보고 설원기의 내용 중에는 받아들일만한 부분도 있다고 주장하는 글입니다.
 
우선 그 글 앞에 "류주환씨가 들으면 펄쩍 뛰겠지만 류차달의 큰 아들의 모가 돌아가시고 둘째 부인의 난 아들이 류씨 대를 이어갔기에 류씨족보에 큰 아들에 대한 언급이 없는지도 모르겠군요" 같은 얘기는 대체 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차문의 바이블인 설원기가 저자부터 조작되었고 바로 선계의 조작을 포함한 그 내용도 문제로 점철된 것임을 명백하게 논증하는 판에 저런 추측도 될 수 없는 악의적인 말을 해서 무슨 이득을 얻겠다는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아래는 75번 글에 주어진 코멘트들에 대한 지적입니다.
 
- "최소 차원부는 세종과 문종의 교지에서 언급된 인물이다": 저런 '교지'라는 것이 있지도 않았다는 나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가 쓴 한 구절만 의지해서 한 말이다. 지금도 시호가 내렸다는 교지를 조작하여 내거는 것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다.
 
- "세종이 의논할 정도의 인물이었다" : 앞과 같은 맥락이다. 세종이 의논했다는 말 자체가 조작이다.
 
- "믿을만한 문서에 나오는 내용은 확증이 없다며 자신이 임의로 판단하고 있다": 설원기에는 자신들의 증거가 있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몇몇 문헌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그 문헌 이름들 자체가 조작이다. 차식의 신도비나 문화류씨 기사보는 그것을 인용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음을 적시한 것을 임의의 판단이라 할 수 없다.
 
- "대단한 류주환씨가 보기에 분명해 보이니 사실임에 틀림없을것이다. (비꼬는 것입니다)": 류처후의 글은 원파록을 말하는 것이니 차문에서도 갖고 있을 것이다. 스스로 읽어본 후에 비꼬더라도 비꼬기를 바란다. '가능성이 높다', '~보인다' 등의 표현은 조심스런 표현일 따름이다. 그런 거의 99% 가능한 증거들이 계속 나열되면 결론이 자명해지는 것이다.
 
- "빼고 싶었을것이다? 류주환씨 정말 대단한 인물입니다. 감히 빼고 싶었을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설원기에서 그렇게나 조선 전기의 여러 왕들이 큰 관심을 갖고 제사니 벼슬이니 하는 것을 내려주었고 허다한 쟁쟁한 신하들도 그 충절에 감화감복했다는 차원부가 왜 조선왕조실록에 보이지 않느냐는 나의 글에 대한 반응이다. 실록에는 성도 없이 이름만 '원부' 운운하고 있는 구절 하나만 나올 따름이다. 실록은 간혹 상소의 내용을 축약하기도 하고 비교적 상세히 옮겨놓기도 하며, 간단한 관련 설명만 나오는 경우도 많다. 상소문의 원문과 비교하면 실록은 상소의 줄거리만 간추려 놓았기에 직접적인 줄거리가 아닌 것은 모두 축약하려 했을 것임은(곧 빼고 싶었을 것임은) 당연한 추정이다. 그런데 구태여 '원부' 운운하는 구절이 남아 있기에, 직접적인 서술이 아닌 부가 묘사인 그 구절을 남겨놓은 이유를 추정해 본 것일 따름이다. 위와 같은 비난처럼 차원부라는 인물이 왜 그 방대한 실록에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딱하게도 저런 구절 하나만 나오는지 하는 중차대한 문제를 간과하고 말꼬리만 잡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더구나 "일성록"에는 차원부의 이름이 언급되나 그의 행적이 적극적으로 부정되고 있다. 그것도 세 번이나. 이런 것에 주목한다면 근본문제가 어디 있는지 잘 알게 될 것이다.
 
- "당시 류씨도 차씨도 함께 왕에게 요청했다?": 바로 이것이 "일성록"에 대한 나의 묘사에 대한 반응인데, 물론 류씨도 차원부의 시호를 내려달라고 왕과 조정에 간청을 했다. 바로 류씨들도 얼마 전까지 차씨를 같은 집안으로 잘못 알고 살아왔기 때문에 이런 행위는 당연히 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학식과 명망이 뛰어난 어떤 류씨가 나서서 핏줄을 나눈 조상(방계조상 쯤으로 인식했을 것임)을 위해 절실한 마음으로 상언(上言)을 올렸을 것이다. 차씨 중 어느 특정한 인물(들)이 시작한 역사의 조작에 희생되어서.
 

4. chacha5155의 76번 글은 "일성록"에 언급된 상언(백성이 임금께 올린 글은 상소라고 하지 않음)에 관한 것입니다. 본문 자체는 모두 저의 글입니다. 역시 출처를 명확히 밝혀야 합니다. 그 글을 올린 것은 짐작컨대 제가 수차 주장한 대로 "일성록"이 류차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실증 자료 중 하나가 될 수 있기에 더 구체적인 자료를 보고 싶기 때문일 것입니다.
 
일성록에 언급된 3번의 상언의 원문이 지금도 남아 있다면 저도 보고 싶습니다. 저는 혹시 문화류씨나 연안차씨 집안 어딘가에 그런 글이 전해 내려오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대의명분을 천명하는 상소 같은 글이라면 왕이 받아들이지 않아도 큰 가치가 있으니 대대로 내려올 가능성이 높겠지만 여기 상언들의 경우에는 어떤 요청이 단호하게 거절된 것이며, 그 상언들이 전해내려 왔다면 그 거절 사유와 공문도 함께 내려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최소한 그런 상언들이 올려졌다가 거절되었다는 사실 자체만 널리 퍼졌다고 해도, 그것은 설원기 자체가 공식적으로 부정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후에 시호를 받았다는 조작된 교지도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최근의 설원기의 문제제기 이전에도 그 진위에 대한 논의가 일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상언들을 올렸다는 사실 자체가 은폐되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상언이 짧은 시기에만 집중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후에는 전혀 없었음도 그런 짐작을 도와줍니다. ("일성록" 본문을 전부 검색해 보고 하는 말씀입니다.) 따라서 상언의 원본들 혹은 본문들이 남아 있을 가능성은 적어 보입니다. 하여간 누군가 보신 적이 있다면 꼭 알려주시길 부탁드립니다.
 

chacha5155의 글들에 이렇게 세세하게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전후 사정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면 구체적으로 다루고 반응하는 것도 그 분들에게 도움이 되리라 판단했습니다. 혹시 류차문제의 맥락을 잘 알지 못하는 분들께서는 저의 홈페이지( http://kenji.cnu.ac.kr/ryu/ )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상의 긴 글을 종합하자면, 우선 저는 류씨와 차씨가 선계를 공유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왜곡되어 온 책임을 차씨 여러분 개개인에게 돌리는 것이 절대 아니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그런 일들을 고의로 행했던 특정인들에게 해당되는 사항입니다. 그리고 현재에도 10여년 전부터 악의적으로 더욱 심한 일들을 행하고 있는 주체가 있음을 밝히는 바입니다. 그들이 바로 그 위서(僞書) "차원부설원기"에서조차 "文城人 柳車達"(문성인=문화류씨의 높임말)로서 문화류씨 시조로 밝혀져 있는 분의 성씨를 바꾸어 버리고 위패까지 봉안한 천인공노할 일들을 자행해온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아버지의 성씨를 간다면 가만히 있을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시조는 아버지의 연장일 따름입니다. 또한 저의 이야기는 문화류씨대종회의 공식입장에서 벗어나지 않습니다. 나아가서는 역사학계 연구자들의 결론에서도 벗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역사학계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사실들의 발굴과 평가를 제가 가장 먼저 행한 것들도 다수 있습니다만 그 맥락에서 벗어난 사항은 없습니다.
 
제발 부탁드리건대, 차씨 여러분께서는 대표자 몇 사람이 벌이고 있는 문화류씨 시조 모독을 중지할 것을 촉구해주시기 바라며, 지금까지 차문의 특정인들에서 비롯된 류차관계의 왜곡을 이제는 중지해줄 것을 또한 요청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진실을 바탕으로 류씨와 차씨가 동포로서 사이좋게 지내야만 합니다. 과연 류씨 몇 십만 명과 차씨 몇 십만 명 가운데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나타나서 마음껏 사랑을 나눌 일도 많지 않겠습니까.
 
2009. 10. 18.
彩霞 류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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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kenji.cnu.ac.kr/ryu/
E-mail: juwhan@c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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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주환교수의승하에 옮김.                                               폄집실 류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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