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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차지극씨의 차류관계에 대한글에 답함 <류주환>
게시판 253, 254번글에 대한 답글

- 류주환, 2009. 10. 19.   


차치극씨에게,
 
연안차씨 홈페이지에서 몇 개의 글을 보게 되어 그에 관한 답글을 썼습니다. 문화류씨 홈페이지의 사랑방에 올렸으니 한번 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글은 바로 이곳에도 올리겠습니다. 상세한 답글이니 여기 올린 두 개의 글에 대해서 따로 답글을 달지 않아도 되지만 이 게시판만 보는 사람들도 많을 듯하여 여기서 언급한 내용들에 대해서는 답을 하겠습니다.
 
우선 252번글. 반역죄에 대한 부분은 "차원부설원기"가 비록 여러 제명으로 간행되었지만 내가 아는 한 제목에 직접 "왕명"을 단 적은 없습니다. "일성록"에서 정조가 그 내용을 부인했지만 사회에서는 예를 들어 설원기를 간행할 때 여러 학자와 벼슬아치들도 동원되어 추기, 추술(追述) 등의 글을 쓴 것으로 나옵니다. 꾸며대는 일을 많이 봐와서 과연 그 저자로 나온 사람들이 진짜 해당 글들을 쓴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설원기에 대한 당시의 관념을 보면 대개 있을 수 있는 일들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설원기 내용 자체가 어떤 왕이 쓰라고 했다는 식으로 나오며 붙여 놓은 응제시도 응제시 자체가 왕명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적으로 왕명을 참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무슨 반역죄로까지 될 리가 없는 분위기였습니다.
 
이수건 교수의 논문들을 보면 재야사림의 맹목적인 충절관도 그 오랜 세월동안 설원기의 진실을 깨닫지 못하게 만든 주범 중 하나이지만, 그보다는 조선 사회 전반을 풍미한 왜곡된 가문의식과 신분의식, 그리고 그릇된 모화사상 곧 사대사상이 더 큰 역할을 했고 여기에 옛글이면 무조건 신봉하는 비평의식이 결여된 고루한 태도 등도 역할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의 글들을 개인의 생각과 추측으로 매도하려 하지 말고 경우에 따라서는 나보다 더 단호하고 확실한 표현을 하는 역사학자들의 연구 결과들도 살펴보고, 또 나의 글에 대해 한국학중앙연구원 같은 관련 기관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사실도 감안하기 바랍니다. 한편 '100%'를 언급하는 것은 어떤 일에도 불확정성이 있을 수 있기에 논의를 호도하는 일입니다. 어떤 사안에 대해 가능성이 높은, 말하자면 90% 혹은 99% 확실한 증거들이 다수 나오면 그때는 단정적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 글에서 거듭 밝혀왔지만 내가 비판하는 대상은 차씨들 개개인이 절대 아닙니다. 그릇된 것을 알고도, 역사학자와 다른 여러 사람들의 지적을 받고도, 고의로 악의적인 왜곡을 계속하고 있는 특정 주체입니다. 더구나 종사에 관심 없는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포함할 리도 없는 것은 그들이 이런 글을 쳐다보지도 않을 것이기에 자명합니다. 그래서 간혹 차씨 여러분들을 향해 스스로 진실을 판단해보고 만일 그 주체들의 행위가 잘못된 것이라 생각되면 그들을 향해 권고하라고 당부하곤 합니다. 종사에 관심이 있어도 이런 얘기를 들어본 적도 없는 사람들도 아직은 많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53번 글의 전반은 나의 글의 인용이군요. 앞으로 인용할 때는 출처와 저자를 꼭 밝혀주길 바랍니다. 어디가 자신의 글인지 남의 글인지 알 수 없게 만들면 안 됩니다. 우선 '유교적 사고'라는 말로 매도하는 것은 라벨 붙이기의 한 예입니다. 예를 들어 진보적이거나 통일지향적인 발언을 하면 무조건 좌파, 빨갱이, 요즘에는 좌빨 등의 용어들로 붙이는 것은 무조건적이며 악의적인 공격일 따름이며 사회 발전에는 해악이 될 따름입니다. '유교적 사고'가 무엇을 말하는지 잘 알 수 없을뿐더러 그 안에 분명히 존재하는 큰 가치들조차 부정하는 어법입니다. 논어나 맹자 같은 것들이 왕도정치의 배경을 갖고 있지만 온고이지신의 정신으로 바라보면 현재에도 감탄할 내용들이 많은 것을 이해나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세상이 많이 변했지만 우리의 역사나 정신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으며 그것이 사라지는 날은 민족의 멸망일 것입니다.
 
자신이 종친회에 관심이 없다는 것은 개인적인 태도일 뿐 그게 그런 사람들보다 우위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수 없습니다. 세상에는 허다한 관심사들이 있는데 그것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개 관심 없으면 그냥 마음속으로만 생각하고 구태여 말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종친회의 가장 큰 사업 중 하나가 장학사업인 것은 알고 있는지요. 허다한 종친회들 가운데에는 '조상'이라는 키워드에 머물러 가문을 미화시키는 것에만 정신을 팔고 있는 것들도 없지 않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종친회는 가족의 한 단계 확장으로서, 가족에는 아래쪽으로 자녀가 있고 위쪽으로는 부모가 있듯이, 집안의 자녀들을 온전하게 키우는 일과 아버지의 아버지..., 곧 조상들을 기리는 일을 가장 큰 과제로 여겨 최선으로 역할을 합니다. 장학사업 등의 사업을 위해 기꺼이 자신의 재산을 희사하는 분들 앞에서 유교네 종친회네 하는 용어들에 관념적으로 맹목(盲目)되어 그 진정성(眞正性)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말길 바랍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비난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을 해보았자 스스로의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를 따름이니 조심해 주기 바랍니다. 나의 글이 차씨 전체를 깔보는 듯한 것이라 느꼈다면 그런 의도는 전혀 없다는 것을 다시 확언합니다. 253번 글에 인용된 나의 글은 그대로 사실을 적시한 글입니다. 다만 내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그 후에 금년 8월에 그 '솔직함'을 보이는 글이 연안차씨 홈페이지 게시판에 실렸었으나 곧 삭제되었고, 며칠 전부터, IP가 동일하여 차치극씨의 글이라고 생각되는 몇 개의 글이 실렸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그 홈페이지의 운영 행태를 보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이 글들은 삭제가 되지 않고 관심을 촉구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편 내가 기대한 것은 일차적 사료들을 중심으로 해서 연구논문과 문헌 등을 검토하며 토론하는 일이었습니다. 차문에서 그런 토론을 제안해 오는 분이 있기를 기다렸지만 한 번도 없었고, 연안차씨 홈페이지에서 올라왔던 글들도 나의 글을 꼬투리 잡거나 단지 비난만 하는 내용이 주였습니다. 바라기는 나의 글을 꼬투리 잡는 일은 하지 말고 스스로 일차적 사료를 보고 그에 대한 나의 주장의 어디가 어떻게 잘못되었다는 식의 반응을 보여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사안을 판단할 능력이 없다면 반응을 보여 봤자 이성적인 반응이 되기 어렵습니다. 또한 시간이 없다고 말한다면 논의를 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말이기 때문에 나의 주장을 넘어갈 수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나 역시 없는 시간을 쪼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차치극씨가 간과하는 것은 차문(특정한 몇몇 주체를 의미; 나의 모든 글에서 마찬가지임) 에서 10여년전부터 자행해온 문화류씨 시조의 모독입니다. 아마 몰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지만, 이 시조 모독의 심각성을 잘 이해하기 바랍니다. 다른 글에서 차치극씨가 시조도 별 의미 없다고 하는 취지의 발언을 하였는데 그것은 아버지의 아버지...를 의미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으며 곧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도 의미 없다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으면 그냥 개인적으로 간직하고 이런 논의를 할 때는 꺼내면 안 됩니다. 차문의 문화류씨 시조 모독은 문화류씨 대종회, 곧 문화류씨 전체를 들끓게 만든 심각한 행위이며, 난 범죄행위라고까지 부릅니다. 그런 일을 시작하고 지금도 행하고 있는 연안차씨의 몇몇 주체들은 통렬한 사과를 하고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심각한 일을 당한 것이 다름 아닌 문화류씨 집안임을 이해하고 종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 문화류씨들의 분노를 십분의 일이라도 이해한다면 사실을 적시한 것에 지나지 않는 나의 몇 마디 말에 흥분할 생각은 전혀 들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시를 좋아해서 허난설헌과 허균에 관심을 갖다가 조선 중기의 역사를 익혀서 설원기의 비평도 하게 되었고 큰 거짓과 불의를 발견하여 한 가문의 일원으로서보다는 한 사회의 일원으로서 그 시정에 관심을 쏟아왔습니다. 일과 이외의 아까운 개인적인 시간을 쪼개서 이런 일을 하는 것은 평생을 성씨 연구를 하며 그릇된 신분사(身分史)를 파헤치고 사회의 관념을 성숙시키려 노력한 고(故) 이수건 교수와 같은 맥락입니다. 편견과 왜곡이 없는 세상에서, 구별하되 차별하지 않는 세상에서, 개인의 자유와 행복이 사회의 안녕과 천의무봉의 조화를 이루는 세상에서 우리의 자녀가 살게 하고 싶은 염원입니다. 아직은 그런 세상은 아닙니다. 분명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전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그것에 조금은 귀를 기울여주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2009. 10. 19. 류주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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