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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삼한익찬공신대승류공묘갈제사

 

                 삼한익찬공신대승류공묘갈에 쓴 글
                                  三韓翊贊功臣大丞柳公墓碣題辭  
공의 휘(諱)는 차달(車達)이요,성은 류씨(柳氏)인데 유주(儒州)에 살면서 가세가 매우 부유하더니 고려(髙麗) 태조(太祖)가 남방을 정벌할 때에 수레를 많이 내어 군사의 위엄을 떨침으로써 이 공으로 대승(大丞) 벼슬에 제수되고 삼한공신(三韓功臣)의 호(號)를 내렸다. 돌아가신 후에 문화(文化) 구월산(九月山)에 장례를 모셨다.   대승공의 아들 효금(孝金)은 벼슬이 좌윤(左尹)에 이르고 좌윤의 아들 금환(金奐)은 벼슬이 대장군(大將軍)에 이르렀으며, 그 후로 명공과 대신이 대대로 그치지 않더니 대승의 十八대손 관(灌)이 지금 의정부좌찬성(議政府左贊成)이 되었다.   춘경(春卿)이 황해도관찰사(黃海道觀察使)로 나갈 적에 찬성(贊成)을 찾아뵈었더니 찬성이 이르되 「고려(髙麗) 대승(大丞) 류모(柳某)는 관(灌)의 시조(始祖)로서 묘소가 문화현(文化縣)에 계시는데, 대수가 오래되어 무덤이 무너지고 비석이 쓰러진지라, 계미년간에 그 지방 사람이 대승공의 자손이 번성함은 묘소가 길지인 연유라 생각하여 자기 부모를 도장하였다오, 갑신년(甲申年)에 관(灌)이 본도(本道;황해도)에 관찰사로 가서 묘역 침범한 것을 발견하고 곧 옮기게 하고 미처 묘소에 비석은 세우지 못하고 돌아와서 항상 생각하기를 후일에 대승공의 자손으로써 서도(潟;황해도)에 관찰사로 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마땅히 내가 하지 못한 일을 부탁하고자 하였더니, 이제 공이 대승공의 二十이십대 외손으로서 마침 이 도(道)의 관찰사로 나가게 되었으니 백년 동안 쓰러졌던 비석을 다시 세우는 것은 공에게 달려 있는바 공은 그곳에 가거든 곧 비석을 세우시요」하였다.   아아! 옛 묘역이 매몰된지 몇 해가 지났으나 대승공의 후손으로서 한분도 묵은 풀을 헤치고 그 산소를 알아보는 이를 듣지 못하였는데 찬성께서 오·육백세 후에 출생하여 멀리 선조를 추모하는 효성으로 그 산소를 수축하고 나에게 부탁하여 비석을 세워 세상 사람으로 하여금 대승공의 묘소가 이곳에 있음을 다시 알도록 하였으니, 없어지고 새로 세움이 때가 있으며 또한 반드시 기다림이 있음인저!

                                 1543(가정二十二)년癸卯)九月 日

                    二十대외손통정대부황해도관찰사홍춘경(洪春卿)짓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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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三韓翊贊功臣大丞柳公墓碣題辭

公諱車達姓柳氏居儒州家甚富高麗太祖南征時多出車乘以張軍威錄功拜大丞賜號三韓功臣卒葬文化九月山大丞生孝金官至左尹左尹生金奐官至大將軍自此後名公大臣代出不絶大丞之後十八代有孫曰灌今爲議政府左贊成春卿之出按黃海也謁行於贊成贊成曰高麗大丞柳某乃灌始祖墓在文化縣代數久遠墳夷碑拔癸未年間土人以大丞子孫繁盛由葬兆得吉盜葬其親甲申年灌觀察本道知其犯域卽令易葬仍墓之不暇竪石而還常念後有大丞子孫出按潟者當寄吾所闕今公乃大丞二十代外孫而適按此道百年墜石復竪在公公其往卽竪嗚呼舊域埋沒經幾歲月未聞有一大丞後披宿草以識其墓而贊成出五六百歲之後追孝祖先修其墓而封之敎予立石使一世人復知有大丞廢立有時其必有待也哉         嘉靖二十二年癸卯九月 日 二十代外孫通政大夫黃海道觀察使洪春卿誌而書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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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문화류씨세보 *정리 편집 도산 류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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