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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대승공 류차달 묘갈개수문

 


                대승공묘갈개수문
( 墓碣改竪文 ) 

 고려(高麗) 태조(太祖)가 남쪽으로 백제(百濟)를 정벌할 적에 공께서 수레를 내어 통일의 공(功)을 능히 세우시니 공을 벽상공신(壁上功臣)에 책록하여 대승(大丞) 벼슬을 내리셨다. 돌아가신 후에 문화(文化) 구월산(九月山)에 장사지냈다.   공(公)의 성은 류씨(柳氏)요, 휘(諱)는 차달(車達)이니 공훈과 업적이 혁혁하고 남은 경사가 면면히 이어져, 고려때로 부터 우리 조선조(朝鮮朝)에 이르도록 대대로 명공을 지낸 내외손을 다 기록하기 어렵다.   산소에 옛적에 비석이 있었는데 세대가 오래되어 민몰하고 전함이 없으므로 그 지방사람이 도장을 하였거늘, 十八대손 관찰사 관(灌)이 그 무덤을 파내고, 그 후에 홍감사(洪監司) 춘경(春卿)에게 부탁하여 1543년(가정(嘉靖) 二十二년;중종(中宗) 三十八년)) 계묘(癸卯)에 비석을 세워 후면에 기록하였다. 그로부터 四十三년 후 (一五八五 (만력 을유(乙酉) ; 선조(宣祖) 十八년)에 十七代손 희림(希霖)이 황해감사(黃海監司)로 가서 성묘하고 종인으로서 도내 수령으로 있는 이와 더불어 다른 돌로 바꾸어 세우고 아울러 예전의 글을 다시 새기었다. 이제 지난 을유년(乙酉)이 九十七년이 되어 비석이 또 헐은 지라, 종인 중에 가서 성묘하는 이들이 다 슬퍼하고 탄식하였다.   상운(尙運)이 평안도(平安道) 관찰사로 나가 관직에 얽매여 비록 성묘는 하지 못하였으나 비석을 바꿔 세워 민멸되지 않도록 함은 곧 상운(尙運)의 책임이라 생각하고 이에 석공을 모아 돌을 다듬고 전말를 대략 기록하여 후일에 계승하는 이로 하여금 전에 세운 연월을 알도록 하고 그 지문(誌文)은 다시 아울러 새기지 아니한다.   아아! 공의 높은 공훈과 아름다운 업적은 사람의 이목에 빛나서 천지와 같이 무궁할 터이니 한조각 돌이 어찌 족히 경중이 있으리요? 그러나 다니는 사람이 공경하고 지나는 사람이 인사하며 훌륭한 분의 묘소인 줄 알고 공경하며 사모하는 뜻을 부칠진대 비석이 또한 도움이 될 터이니 무릇 공의 후손된 자는 마땅히 힘쓸지어다.    

     一六八一 년(萬曆乙酉後九十七年신유(辛酉))八월十五일 세우다
   二十一代손손가선대부평안도관찰사 겸 양서관향사 상운(尙運)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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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大丞公墓碣改竪文

麗祖之南征百濟也公出車乘克成統一之功策公壁上勳位大丞卒葬文化九月山公姓柳氏諱車達勳業爀爀餘慶綿綿迄麗代至我  朝代有名公內外裔殆難勝記墓道舊有碑世代寖遠泯沒無傳土人有竊葬者十八代孫觀察使灌掘其瘞後乃囑付洪按使春卿以嘉靖二十二年癸卯竪石識其陰後四十三年萬曆乙酉十七代孫希霖按道省墓與宗人同宦者易以他石並刻前誌今去乙酉九十有七年石又壞宗人之往省者咸來咨嗟尙運忝按關西官守有制雖不克展掃謀易貞珉無俾湮滅卽尙運責也茲乃鳩工伐石略記顚末俾後之繼者知前之樹立年月而若其誌文不復並刻噫公之崇勳盛美照人耳目與天地同其無窮一片石奚足以輕重哉然其行者式之過者拜之知碩人之藏而寓景慕焉則碑亦不爲無助凡爲公後者尙宜勉之哉        
               萬曆乙酉後九十七年辛酉八月十五日立       
       二十一代孫嘉善大夫平安道觀察使兼兩西管餉使尙運 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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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문화류씨세보 * 정리.편집 류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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