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파 일 1  js0200_1.JPG (70.3 KB) Download : 10
  제    목  대승공 류차달 신도비명

 

                              대승류공차달신도비명
                                                (大丞柳公車達神道碑銘) 

 공의 성은 류(柳)요, 휘(諱)는 차달(車達)이니 문화인(文化人)이다. 초휘는 해(海)요, 자(字)는 응통(應通)이며 아사(鵝沙)는 그 호(號)이다.   고려 태조가 남쪽으로 신라와 백제를 정벌할 때에 수레를 많이 내어 군사의 위엄을 떨쳐 통일을 도와 성공하니 벽상이등공신(壁上二等功臣)에 책록 함과 아울러 대승(大丞)에 제수하고 개국공(開國公)을 봉(封)하였다. 공이 졸하심에 문화(文化) 구월산(九月山)에 장사하였다.   류씨로서 문화(文化)를 본관으로 하는 이는 대승공이 그 시조이다.   삼가 가승을 상고해 보니 멀리 황제 헌원씨(軒轅氏) 때로부터 우리 동국에 이르기까지 여러번 고쳐 사성하여 뒤에 차씨가 되었다가 또 류씨로 다시 고쳤던 바, 휘(諱) 색(穡)이 신라(新羅)에 벼슬하여 벼슬이 좌상(左相)에 이르고, 五세를 내려와 대승공이 나시었다. 대승공의 고(考)는 휘 보림(普林)이니 월흑산장(月黑山長)이요, 조는 휘 무선(茂先)이니 해평산장(海平山長)이요, 증조는 휘 진부(振阜)이니 다 은덕하여 드러나지 않았고, 고조는 휘 숙(叔)이니 벼슬이 사공(司空)이요, 사공(司空)의 고(考)는 곧 좌상공(左相公)이니 세상에서 예양(豫讓)과 같은 국사(國士)의 기풍(氣風)이 있다고 일컬었다. 당 헌종 시대에 유주(儒州)에 살았으므로 본관(本貫)을 유주(儒州)로 삼은 것이다.   대승공이 신라(新羅) 태보(太輔) 알지(閼智)의 후손인 균(稛)의 따님과 결혼하여 아들 효금(孝金)은 벼슬이 좌윤(左尹)이었다. 六세를 내려와 휘 공권(公權)은 금자광록대부(金紫光祿大夫) 정당문학(政堂文學) 집현전태학사(集賢殿太學士)로 글과 글씨가 함께 해동준선(海東雋選)에 오르고 시호는 문간(文簡)이며, 제일자 휘 언침(彦沉)은 벼슬이 상장군(上將軍)이요, 상장군의 아들 순(淳)은 벼슬이 밀직사(密直使)요, 밀직사의 아들 성비(成庇)는 문산군(文山君)에 봉하고 시호는 충성(忠成)이다. 제이자 휘 택(澤)은 벼슬이 상서우복야(尙書右僕射)요, 우복야의 아들 경(璥)은 첨의중찬(僉議中贊) 세자사(世子師)로 시호는 문정(文正)이니 세 번 예위(禮闈)를 관장하여 얻은 인물이 모두 당대의 명인이었다. 문정공의 아들 승(陞)은 충효로 세상에 이름나 벼슬이 참리(叅理)에 이르고 시호는 정신(貞愼)이요, 정신공의 아들 돈(墩)은 찬성(贊成)으로 벼슬을 그만 두었고 시호는 장경(章敬)이다. 곤산군(崑山君) 휘 익정(益貞)은 벼슬이 삼중대광(三重大匡)이며, 본조에 들어와서 휘 만수(曼殊)는 벼슬이 좌의정이요, 휘 관(寬)은 벼슬이 우의정으로 시호는 문간(文簡)이요, 호는 하정(夏亭)이며, 휘 정현(廷顯)은 벼슬이 영의정으로 시호는 정숙(貞肅)이요 호는 월정(月亭)이며, 휘 양(亮)은 벼슬이 우의정으로 시호는 충경(忠景)이며, 휘 사눌(思訥)은 시호가 문숙(文肅)이요, 휘 계문(季聞)은 벼슬이 형조판서로 시호는 안숙(安肅)이며,휘 성원(誠源)은 벼슬이 사예(司藝)로 시호는 충경(忠景)이며, 휘 자미(自湄)는 호 서산(西山)이요, 휘 순(洵)은 벼슬이 영의정으로 문성부원군(文城府院君)에 봉하고 호 노포당(老圃堂)이며, 휘 희림(希霖)은 문양군(文陽君)을 봉(封)하고, 휘 정수(廷秀)는 호 관재(觀齋)요, 휘 몽정(夢鼎)은 증직(贈職) 좌찬성으로 호는 학암(鶴巖)이며, 휘 몽정(夢井)은 남대집의(南臺執義)로 호는 청계(淸溪)이며, 휘 관(灌)은 벼슬이 좌의정이요 호는 송암(松菴)이며, 휘 위(湋)는 호가 계휴정(繼休亭)이며, 휘전(㙉)은 벼슬이 영의정으로 시녕부원군(始寧府院君)에 봉하고, 휘 성민(成民)은 호 내헌(耐軒)이며, 휘 사원(思瑗)은 문흥군(文興君)에 봉하였고, 휘 공량(公亮)은 벼슬이 판중추부사로 호는 하담(荷潭)이며, 휘 은 호 용문(龍門)이며, 휘 무(懋)는 호 휴계(休溪)이며,휘 형원(馨遠)은 호 반계(磻溪)이며,휘 상운(尙運)은 벼슬이 영의정으로 시호는 충간(忠簡)이며, 휘 문원(文遠)은 호 삼우당(三友堂)이며, 휘 담후(譚厚)는 호 결청재(潔淸齋)이니 이 분들이 그 가장 훌륭한 분이다.   그리고 각파에 헌면관작(軒冕官爵)이 연이어서 본관을 달리한 진주(晋州)·전주(全州)·풍산(豐山)·서산(瑞山)·선산(善山)의 후예가 현달하여 명절과 훈업이 연이음에 중국의 사신가 동국(東國)의 류씨(柳氏)를 진(晋)나라의 왕씨(王氏) 사씨(謝氏)와 당(唐)나라의 최씨(崔氏) 노씨(盧氏)에게 비겼으니 아! 장하도다! 이제 대승공 때까지 팔·구백년이 되는데 내외손이 조야에 두루 퍼졌고 명공과 석사가 연이어 났으니 예천(醴泉)의 근원이 멀어 흐름이 길고 영지(靈芝)의 뿌리가 깊어 가지가 무성하다는 것이 이를 이름인저!   세상에 전하기를 대승공의 아들 좌윤공(左尹公)이 아사달산(阿斯達山;구월산)을 지나다가 호랑이의 목에 걸린 비녀를 빼주니 산신령이 꿈에 나타나 사례하며 이르기를 공의 후세에 마땅히 대대로 경상이 될 것이라 했다는바, 류씨의 성대함이 실로 이에 연유함이라고 하나, 나는 그것을 믿지 않는다. 주역에 이르기를 적선한 가문에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 하였으니, 무릇 적선이란 오래 쌓는 것을 이름이요, 일조일석에 한가지 선행을 하는 것으로 이루어짐이 아님이 분명하다. 내가 생각하기로는 대승공의 선대에서 이미 오래 쌓고 자주 쌓은 공적이 있고, 공에 이르러 또 보이지 않는데 덕을 쌓아 족히 하늘에 이르고 귀신을 감동케 함으로써 이에 산신령이 나타나 시험함이라. 어찌 잠깐에 한 호랑이를 구하였다고 여경이 후세에 나타남이 이와같이 구원하리요?   묘소에 옛부터 비석이 있었으나 세대가 점점 멀어져 매몰되고 전함이 없거늘, 십팔세손(十八世孫) 관(灌)이 황해도에 관찰사로 가서 묘역을 정화하고 미처 입석을 못하였더니 외손 되는 홍감사(洪監司) 춘경(春卿)에게 부탁하여 一五四三년(가정(嘉靖) 계묘(癸卯);중종 三十八年)에 비를 세워 그 뒷면에 기록하였다. 그로부터 四十三년 후 一五八五년(萬曆 乙酉;선조十八년)에 十七세손 희림(希霖)이 또 본도에 관찰사로 가서 종인 중에 본도에 수령으로 있는 이와 더불어 상의하여 비석을 고쳐 세우고 구지(舊誌)를 그대로 새겼으며, 그로부터 九十七년 후 一六八一년(숙종七년 신유(辛酉)에 二十一세손 상운(尙運)이 관서(關西)에 관찰사로 나가서 다른 돌로 바꾸어 기록하였다. 지금부터 신유년(辛酉年) 사이가 또 一八○년(삼주갑(三周甲)이 된지라, 산소가 무너지고 비석이 이지러져 후손(後孫)으로 와서 성묘하는 사람마다 한탄하여 마지못하더니, 一八六二년(철종 十三년 임술(壬戌))에 二十七대손 무과(武科) 기영(基榮)이 더욱 오래되면 더욱 민멸될 것을 두려워하여 종중에 의논하지 않고, 홀로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사초함과 아울러 상석과 작은 비석을 세우고 이듬해인 一六八三년 계해(癸亥)에 또 신도비를 세워서 영구보존하고자 무릇 공(公)의 유사와 지난 사적을 세보에 상고하고 읍지(邑誌)에 고징하여 나의 집에 와서 보이고 비명을 청함이 매우 간곡하였다.   내가 대승공을 일찌기 사모함이 있었는데 또 그 후손의 보본(報本) 추원(追遠)하는 정성을 가상히 여기고 대략 그 사실을 우에 엮었다. 아! 무릇 사람이 부귀로서 당세에 영화롭고 빛나나 사후에는 일컬음이 없어져 겨우 수대를 지나면 초목과 같이 썪어 없어지는데 오직 대승공은 그렇지 않아 이미 부귀의 복록을 누리고 능히 국가를 돕는 공훈을 세웠으며 다하지 않은 복록을 남기어 그 자손이 번성하고 또한 고관대작으로 크게 현달하였으니 쌓은 음덕의 흐름이 자못 천지(天地)와 같이 무궁하리라. 위로는 공경대부와 선비로부터 아래로는 부녀자나 하인(下人)에 이르기까지 대승공의 산소가 이 산에 있음을 모르는 이가 없으니, 진실로 깊은 인(仁)과 큰 덕(德)이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가히 잊지 못함이라. 그렇지 않고서 능히 이 같을 수 있으리오? 그러니 공의 덕업이 스스로 썩지 않을 것인 바, 한조각 비석이 진실로 가볍고 무거움이 되지 못할 것이다. 몇 해 간격으로 산소의 무너진 곳을 고치고 비석의 쓰러진 것을 세웠으니 그 또한 흥하고 폐함은 운수에 관계된 것인바, 공(公)의 산소가 천년(千年)을 지나도 없어지지 않을 것을 또한 가히 알 수 있다. 어찌 공(公)께서 적선한 보답을 받는 징험이 아니랴. 이 산소를 지나는 이는 오히려 공경하며 또한 착한 사람은 반드시 뒤가 있음을 알 것이다. 명(銘)에 이르노니,        
 울창한 아사달산(阿斯達山) 대인이 묻히셨네.         
유래가 멀고 멀어 황제에 이르도다.         
삼한통합(三韓統合) 대업 도와 수레를 내시니,         
위대한 벽상공신(壁上功臣) 대승(大丞)으로 보답했네.         
숭악(崧岳)의 보후(甫侯)요 하구(瑕丘)의 거백옥(蘧伯玉)마냥,         
빛나는 가문으로 복록을 이었도다.         
쌓은 덕이 없었던들 후손에 끼쳤겠나?         
산수 좋은 저 무덤 만세에 전하리라.

 숭록대부행이조판서겸판의금부사 경연춘추관사홍문관대제학 예문관대제학 지성균관사규장각제학 오위도총부도총관      의령 남병철 찬   (宜寧 南秉哲 撰 )           
 가의대부행승정원도승지겸 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 예문관직제학상서원정동지성균관사                                       달성인 서형순서병전 (達城徐衡淳書并篆)


                     ...............................

                      大丞柳公車達神道碑銘

公姓柳諱車達文化人也初諱海字應通鵝沙其號也當麗祖之南征羅濟多出車乘以張軍威贊成統一策壁上勳官大丞封開國公公卒葬文化九月山柳氏之貫文化者大丞其鼻祖也謹按家乘遠自軒皇時曁于我東累改賜姓後爲車氏又改柳氏有諱穡仕新羅官至左相五世而生大丞公公之考諱普林月黑山長祖諱茂先海平山長曾祖諱振阜皆隱德不耀高祖諱叔官司空司空之考卽左相公世稱有豫讓國士之風唐憲宗之時居儒州因爲貫焉大丞娶新羅太輔閼智後孫稛女生孝金官左尹六世有諱公權金紫光祿大夫政堂文學集賢殿太學士詩若筆俱入海東雋選諡文簡第一子諱彥沉官上將軍上將軍生淳官密直使密直使生成庇封文山君諡忠成第二子諱澤官尙書右僕射右僕射生璥僉議中贊世子師諡文正三典禮闈所得皆當世名彥文正生陞忠孝名世官至叅理諡貞愼貞愼生墩以贊成致仕諡章敬有崑山君諱益貞官三重大匡入  本朝有諱曼殊官左議政有諱寬官右議政諡文簡號夏亭有諱廷顯官領議政諡貞肅號月亭有諱亮官右議政諡忠景有諱思訥諡文肅有諱季聞官刑曹判書諡安肅有諱誠源官司藝諡忠景有諱自湄號西山有諱洵官領議政封文城府院君號老圃堂有諱希霖封文陽君有諱廷秀號觀齋有諱夢鼎  贈左贊成號鶴巖有諱夢井南臺執義號淸溪有諱灌官左議政號松菴有諱湋號繼休亭有諱㙉官領議政封始寧府院君有諱成民號耐軒有諱思瑗封文興君有諱公亮官判中樞號荷潭有諱號龍門有諱懋號休溪有諱馨遠號磻溪有諱尙運官領議政諡忠簡有諱文遠號三友堂有諱譚厚號潔淸齋此其最賢而各派軒冕繁衍移貫晋州全州豐山瑞山善山後裔崇顯有名節勳業磊落相望華使印國之柳擬於晋王謝唐崔盧於戱盛哉今去大丞八九百年內外裔遍於朝野名碩往往間世而出醴泉源遠而流長靈芝根深而枝茂者其斯之謂歟世傳大丞之胤左尹公遊阿斯達山爲虎拔嗌中之釵山精謝於夢曰公之後當世爲卿相柳氏之盛實由此吾斯之未信也易曰積善之家必有餘慶夫積者積久積累之謂也非一朝一夕行一善之致也審矣余惟大丞之先旣有積久積累之功而至于公又毓德於潛光有足以格天而感神於是乎山精出而試之耳豈霎時救一虎而餘慶之發於後世也若是其久遠歟墓道舊有碑世代寖遠泯没無傳十八世孫灌按海藩也浄其兆域而未及竪石囑外裔洪按使春卿以嘉靖癸卯立石而識其陰後四十三年萬曆乙酉十七世孫希霖又按本道與宗人同宦者協謀改石仍刻舊誌後九十有七年辛酉二十一世孫尙運出按關西易以他石而爲之記今去辛酉又三周甲矣墳夷碣泐後孫之來省者咨嗟而未遑焉歲壬戌二十七世孫武科基榮懼其愈久而愈泯不謀于宗殫誠罄力旣封旣石仍竪小碣翌年癸亥又立碑墓道以圖不朽凡公之遺事往蹟稽之世譜徵諸邑乘踵余門而示之求其銘甚勤余於大丞曾有向慕者又嘉其裔報本追遠之誠略掇其實於右噫凡人之富貴榮耀於當世者殁後無稱纔經數世與草木同腐惟大丞公則不然旣享富貴之祿克樹協贊之勳而留有餘不盡之福俾繁熾於其雲仍復赫舃以簪纓積蔭流芳殆將與天地同其無窮上自縉紳章縫下至婦孺輿儓無不知大丞墓之在茲山苟非深仁碩德之入人心而不可諼者其能若是乎然則公之德業本自不朽一片石固不足爲輕重而間以幾年隧之夷者嶐焉石之仆者立焉其亦興廢之關數而公之墓亘千古不泯亦可知矣豈非公食報之驗乎過是墓者尙克欽之而亦有以知善人之必有後也銘曰 鬱彼阿斯碩人之藏其來悠遠上溯軒皇業贊一統車蒐千乘偉哉壁勳縻以大丞崧岳甫降瑕丘蘧卜赫赫厥世綿綿其祿不有種德曷貽後昆山縈水繚萬世玆原             
崇祿大夫行吏曹判書 兼 判義禁府事 知經筵春秋館事弘文館大提學 藝文館大提學
             知成均館事 奎章閣提學 五衛都摠莩摠管 宜寧 南秉哲 撰             
嘉義大夫行承政院都承旨兼 經筵叅贊官春秋館修撰官
             藝文館直提學尙瑞院正同知成均館事     達城徐衡淳書并篆


                                 ............................................................

                         자료; 문화류씨세보               *정리 . 편집 류영렬 (2010.12.17)


 
       

Next   영락보에 대한 고찰 - 류영렬글- 편집인
Prev   대승공 류차달 묘갈개수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