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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유주류씨세장도득전사실

 

儒州柳氏世葬圖得傳事實 유주류씨세장도득전사실

송경(松京)=개성(開城)) 사는 조윤검(趙允儉)이 산소 자리를 구하러 두루 돌아다니다가 종개천(鍾開川)의 한 쓸쓸한 절 (류씨재궁(柳氏齋宮))에서 점심을 먹을 때, 오래된 휴지(에다 고추를 널어 말리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보니 곧 「유주류씨세장도(儒州柳氏世葬圖)」였다. 그 스님에게 이르기를 「이는 류씨(柳氏) 집안의 큰 문적(文籍)인데 어찌 그렇게 더럽게 쓰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이것은 절에 전해오던 것인데, 좋은 물건은 하나도 없고 다만 이 종이가 항상 목궤(木樻) 속에 있었던 바, 그 쓸데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지금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하였다. 이에 조씨(趙氏)가 가지고 돌아와 류씨(柳氏) 본손(本孫)에게 전하여 주려다가 전하지 못했으니, 이는 유주(儒州)가 문화(文化)의 고호(古號)임을 몰랐던 때문이다.

그 뒤에 윤검의 아들이 그 친척 되는 사람 허일(許佾)에게 보이고 전후 사실을 말한 때문에 허일이 말하되 「내가 마땅히 전하리라.」하고 곧 가지고 돌아왔다고 하였다.

도본(圖本)의 방주(傍註)를 보건대, 지군공(知郡公)(양근군사(楊根郡事) 류(柳) 선(善))의 아들 효순(孝順)과 효진(孝眞)이 손수 삼본(三本)을 그리어 이본(二本)은 자손에게 전했는데 어디에 있는지 모르고, 일본(一本)은 재궁(齋宮)에 두었다 하는 바, 곧 이 종이이다.

삼가 살피건대 이 도본(圖本)은 류씨(柳氏)로서는 보배로운 소장(所藏)이지만 손가(孫哥)로서는 원수로 여기는 바라, 중간에 지난 일이 극히 위험했으나 그러나 만일 당시에 조씨가 가져가지 않고 재궁(齋宮)에 그대로 두었으면 그 없어짐이 또한 이미 오래 되었으리라. 어째서 그렇겠는가? 손가 놈이 이 산에 장사(葬事)를 드리고 또 재궁(齋宮)을 취하여 그 묘막(墓幕)을 삼았을 것이니, 이 도본이 손가의 손아귀에 들어가 찢어 불태워버리는 화(禍)를 면치 못했으리라. 그러니 그 조씨(趙氏) 때문에 화(禍)를 피하여 마침내 류씨에게 돌아온 것은 이는 하늘의 도우심이요, 사람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었다.

허일이 산도를 가지고 기화(奇貨)로 삼거늘, 근철(根喆)·태혁(泰赫)·정두(鼎斗) 등 오육인이 날마다 보여주기를 청해도 능히 얻지 못하던 차, 하루는 산 아래서 동숙하는데 근철의 꿈속에 고소색(高所索)의 난(亂)이 있어 모두 도망할 새 갑자기 산도(山圖)가 땅에 떨어짐을 보았다. 곁에 쓰여진 주(註)는 많이 기억치 못하고 오직 「금후간산(金昫看山)」사자(四字)가 심히 분명하였는데, 도본을 보니 과연 이 사자가 있되 다만 후자(昫字)만 일변(日邊)이 없었다. 손가의 무덤을 파냈는데 당시 병준(秉濬)이 항상 이 도본을 가지고 다니다가 하루는 항(沆)에게 주며 말하기를「나는 일이 많으니 이 도본을 그대가 가지고 있게」하였다. 손가(孫哥)의 관(棺)을 밖으로 들어 낸 뒤 선조(先祖)의 묘소를 봉축하려던 차, 손가 놈이 저지하는지라. 병준(秉濬)이 가히 감당하지 못할 줄 알고 관가의 힘을 빌리려고 항(沆)과 함께 읍내(邑內)에 들어갔는데, 본군 군수 이기혁(李基赫)이 손가의 편을 들어 우리를 돌봐주지 않았다.

병준(秉濬)과 항(沆)이 낭패를 당하고 관문을 나와 장차 파주(坡州)로 향하려 했는데 이는 당시 인환(寅煥)이 파주목사(坡州牧使)로 있었기 때문이다.

손가 놈이 그 도당을 보내어 우리를 모두 잡더니 이윽고 항은 놓치고 유독 병준(秉濬)을 잡거늘,항(沆)이 몸을 빠져 도주함으로써 도본 또한 완연히 보존하게 되었다.

{우(右) 이 두가지 일이 상정(常情)에 미칠 바가 아님으로 이에 모아 기록하였다. }

 

儒州柳氏世葬圖得傳事實

 

松京趙允儉以求山次歷遊鍾開川中火于一蕭寺_{柳氏齋宮}_見以年久休紙藉古椒而曬之者就而視之乃儒州柳氏世葬圖也謂其僧曰此是柳氏家大文籍何其用之褻也對曰此寺中傳來長物無一見存而惟此紙常在木樻中故意其爲無用也今適用之耳趙乃持之歸欲以傳送于柳氏本孫而不可得_{不知儒州之爲文化古號故也}_其後允儉之子見其戚人許佾而語之故許曰我當傳之卽持歸云 _{據圖本傍註知郡公子孝順孝眞手摸爲三本二本傳之子孫云而不知下落一本置之齋宮云而卽此紙也}_ 謹按此圖者柳氏之所寶藏而孫哥之所讐疾也中間閱歷極其危險然苟使當時不爲趙氏所持去而留在齋宮則其爲泯滅也亦已久矣何也孫漢旣入葬于此山又取齋宮爲其墓幕則此圖將在孫漢掌握而毀裂焚棄之禍在所不免然則其所以避禍于趙氏終歸于柳氏者乃天也非人力所及也許佾執山圖爲奇貨根喆泰赫鼎斗等五六人連日求見而不能得一日同宿于山下根喆夢中有高所索之亂擧皆奔竄而忽見山圖墜地傍註多不可記惟金昫看山四字甚分明及見圖本則果有此四字而但昫字少日邊也孫哥塚掘去時秉濬常懷此圖而行一日持與沆曰吾將多事此圖君其帶之及孫柩出去後欲封先墓而爲孫漢所沮戱秉濬知不可抵當欲借官威與沆俱入邑內本倅李基赫右孫而不之顧秉濬沆狼狽出門將向坡州_{時寅煥爲其牧使}_孫漢令其徒並執之旣而捨沆而獨執秉濬沆脫身走免而圖亦完矣_{右二條亦非常情所及故類記之}_

 

 

[출처: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정리:류령렬, 201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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