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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복야공 류택(柳澤 )묘소 심봉사실


 

                               복야공 류택 묘소심봉사실  

 

                                                                         僕射公柳澤墓所尋封事實

 

병준(秉濬) 기영(基榮) 등이 복야공(僕射公)의 산소(山所)를 종개천(鍾開川) 위에서 다시 득전(得傳)하다.

도본(圖本)을 참고(叅考)하니 문정공(文正公)의 산소로부터 조금 남쪽이요,동쪽 가까이에 또 일중수구(一重水口)가 있고 겨우 수구(水口)에 들어가는 시내 동쪽 언덕위에 재실(齋室)이 있고 재실 동남에 복야공(僕射公)의 산소(山所)가 있는데, 이는 대개 전해 듣지 못한 것이요, 또한 생각지도 못한 것인데 가서 살펴본즉 재궁(齋宮)(당시 손가(孫哥)의 묘막(墓幕)이 되었다)이 높이 산기슭에 있어 복사공의 산소를 장차 가히 볼 것 같으나 그 국내에 옛 무덤의 형지(形址)가 없고 한 큰 무덤이 한 가운데에 있어 상석 앞에 평해손모(平海孫某)의 묘라고 새기었으니 이는 개성사람 손영조(孫榮祚)의 조부라. 기영(基榮) 등이 심히 의심하여 그 산소에 가서 그 산도(山圖)를 펴고, 그 지형(地形)을 가만히 살펴보니 산소의 침향(枕向)과 득파(得破)며 좌우의 사록(砂麓)이 맞지 않은 것이 없고 또 한 가지 분명한 증거로 바꿀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대개 그 외안(外案)이 곧 송악(松岳)의 삼봉(三峰)이라 사역(莎域) 뒤에선 십사봉(十四峰)이 다같이 비치고 계하(階下)엔 십사봉(十四峰)이 다같이 숨어 좌와 우가 곳에 따라 변하고 오직 상석 앞에 있어서 삼봉이 입조(入照)함이 산도와 같으니 이로써 복사공의 산소가 이 봉내(封內)에 있음을 더욱 믿어 단연히 의심할 게 없었다.

이때에 손영조(孫榮祚)가 문정공 산소를 개봉(改封)함을 듣고 이 산소의 형적(形跡)이 들어날까 두려워하여 그 아우 희조(熙祚)로 더불어 그 묘막(墓幕)에 와 머물며 동정(動靜)을 살피고자 하거늘, 병준(秉濬)과 기영(基榮)이 사람을 시키어 부르니 희조(熙祚)가 와서 말하되 무슨 까닭으로 여기에 와서 지점(指點)하는고 하였다. 기영(基榮)이 말하되 「우리집 의 선대산소를 잃은지 오래되어 이제야 산도로 이곳을 살펴보니 하나 하나가 부되어 조금도 어긋나지 않은 바, 이제 보건대 선조의 산소가 이 산소 봉내(封內)에 마땅히 있을 듯한 때문에 이같이 방황하는데 그대의 뜻은 어떠한고?」 하니 희조(熙祚)가 머리를 숙이고 기운이 없이 얼마 있다가 말하되 「이것은 양가에 불행한 일이라」 하거늘 기영(基榮)이 말하되 「우리 집의 잃었던 산소를 이제 찾은즉 이는 그대 집에 불행이요, 우리집엔 대행(大幸)이어늘 어찌 양가의 불행이라 하는고. 이제에 사역(莎域)을 파서 실적(實迹)을 구하려 하노니 어찌 능히 금하리요」 손(孫)이 말하되 「주인이 있는 산소를 어찌 가히 함부로 발굴하리요.」 기영이 말하되 「그러면 송사하리라」 하고 그 날로 장단부(長湍府)에 단자(單子)를 냈는데, 본쉬(本倅) 어재연(魚在淵)이 크게 위협(威脅)을 하면서 전연 들어주지 않았다. (손한배(孫漢輩)가 먼저 부탁한 때문이었다.) 또한 말하되 「너희가 남의 산소를 함부로 파려고 하니 이는 곧 어지러운 무리라. 마땅히 형벌(刑罰)하여 귀양 보내리라.」 하거늘, 병준(秉濬)이 말하되 「난굴(亂掘)이라는 말을 어디로부터 들었는고?」 어재연(魚在淵)이 말하되 「이제 손씨의 소에 이 말이 있다」 하거늘 물러나와 영조(榮祚)더러 말하되 「굴험(掘驗)한다는 말은 이제야 입 밖에 냈거늘 어찌 능히 나타내지 않은 남의 뜻을 알지도 못하고 소장(訴狀)에 기록하였는고. 이는 속인 일이라.

대개 손가가 남의 산소를 이미 헐고 그 곳에 산소를 쓴즉 복사공의 산소가 그 봉내에 있음을 남은 알지 못해도 저는 홀로 알기 때문에 미리 한편으로 묘막에 머물러 남의 동정을 살피고 일편으로 부탁하여 단자를 내어 판단할 것을 바라니,그 급하여 허둥거리는 모양을 차마 보지 못할 것이 있도다. 그러나 난굴(亂掘)이라는 말이 이른바 속임이 아니요, 이에 그 참된 뜻이 말에 튀어나와 얻어 숨길 수 없는 것이로다. 어찌 이같이 말하는 고」 하니, 그 아는 것이 오랜지라. 그 염려함이 깊고 염려가 깊은지라 그 말을 하기 쉬운바 곧 실적)이 이와 같음을 밝힌 즉 기밀의 일이 이 같지 않을 수 없다 말 한마디에 저의 정상을 숨길 수 없으니 저가 이른바 춘치가 스스로 우는 격이 아닌가.

이에 돌아와서 장차 때를 기다려 다시 일을 하려하였더니 육월에 이교헌(李敎獻)이 어재연(魚在淵)을 대신하여 부사가 된지라. 수인이 가서 단자를 낸즉 이부사(李府使) 또한 흐지부지하여 들어주지 않았다. 형조판서 이용희(李容熙)가 주계(奏啓)함으로 왕이 윤허를 전하니 임단현감(臨湍縣監) 이기혁(李基赫)이 명을 받들어 손가묘를 파헤쳐 복야공묘(僕射公墓) 광지(壙址)를 얻고 이어 봉축하니 모이어 보는 사람들이 모두 신명(神明)이 도운바라 칭송하였다..

 

                         僕射公{柳澤}墓所尋封事實

 

秉濬基榮等復尋僕射公墓於鍾開川上據圖本則自文正公墓南近東又有一重水口纔入水口澗東岸上有齋宮齋宮東南有僕射公墓此盖傳聞之所不及意慮之所未到也趨而奉審則齋宮_{時爲孫哥墓幕}_巋然崗麓自在僕射公幽宅若將可見然其局內無古墓形址有一大塚當中而崢嶸床石前面刻曰平海孫某之墓乃松京人孫榮祚之祖也基榮等甚惑之卽其墓而展其圖黙察其形址枕向得破左右砂麓莫不符合又有一副當明證移易不得者盖其外案卽松岳之三峰也在莎域後則十四峰俱照在階下則十四峰俱隱在左在右隨地變幻惟在床石前然後三峰入照與圖相似以此益信僕射公之壙在此封內而斷然無疑矣時孫榮祚聞文正公墓之改封也自恐此墓形跡之或露也與其弟熙祚來留其墓幕欲觀動靜秉濬基榮使人召之熙祚至曰何故在此而指點爲也基榮曰吾家先墓失傳久矣今以山圖考證于此則節節符合毫髮不爽目今所見先祖幽壙當在此墓封內故若是彷徨君意以爲何如熙祚垂首爽氣良久曰此乃兩家不幸事也基榮曰吾家失傳之墓得之於此則乃君家之不幸而吾家之大幸也何以謂兩家不幸也今欲開視莎域以求實迹寧能禁之乎孫曰有主之墓何可亂掘乎曰然則訟矣卽日呈單于長湍府本倅魚在淵大加威喝全不聽理_{孫漢軰先事圖囑故也}_且曰汝欲亂掘人墓卽是亂類斷當刑配矣秉濬曰亂掘之說緣何而入聞乎曰昨者孫民之訴有此說矣及其退而謂榮祚曰掘驗之說今纔發口則何以能逆探未形之人意謄諸昨日之訴耶曰此則誣之矣盖孫哥旣毀人墓而葬其地則僕射公幽壙之在其封內者人所不知而渠獨知之故先事周防一邊留連于墓幕察人之動靜一邊圖囑而投單冀有以伸理其蒼黃顚倒之狀有不忍正視者然其亂掘之說非所謂誣也乃其眞情達於言辭而按住不得者也何以言之其知之也雅故其慮之也深其慮之也深故其發之也易卽所以明夫實跡如此則機事之來不得不如此云爾一言之下渠之情狀掩諱不得則彼所謂春雉自鳴者非耶盖歸將俟時而更擧矣逮夫六月李敎獻之代魚也齊進呈單則李亦爲之漫漶而不聽理也刑曹判書李容熙奏啓傳曰允臨湍縣監李基赫奉命掘孫哥塚得壙址而封築會觀者稱神明所佑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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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 (정리.번역 :류영렬,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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