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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원파록삭제의 변 문화류씨대종회

 

                                     공지사항 

문화류씨대종회는 차류대종회를 해체하고 차류는 同祖異姓이 아니다라고 선언하였다

이사건의  발단(發端)은 지난 一九九七정축에 연안차씨(延安車氏)들이 대전 안영공원(安永公園)의 한 모퉁이에 그들의 유래비(由來碑)를 세운 바, 비석 안에 원파록에 의거하여 우리 류씨(柳氏)를 폄훼한 글이 있는데 우리 류씨를 가성(假姓)이라 이르고, 시조 대승공(大丞公) 류차달(柳車達)을 차해(車海)라 고치고,

二세 좌윤공(佐尹公) 효금(孝金)을 문화류씨시조(文化柳氏始祖)라 하고, 이 밖에 류씨를 헐뜯는 폄훼(貶毀)한 글을 실었다. 더하여 차효전이 가정보에 기록이 없는것을 차문을 경멸하여 문화류씨가 조작하였다고 까지 했다.

 문화류시대종회는 이에 진위를 밝혀 종사를 바로세우기위하여 차원부설원기가 위서라는 증거를 모아 심층토론하고 분석하여 차류는 동조이성이 아니다. 車孝全은 대승공의 장자가 아니다라고 결론을 냈다

 차씨 류씨가 한 할아버지 손이라는 차원부설원기에 근거한 기사보의 원파록도  삭제하였다

그리고 차류대종회중앙총본부를 해체하도록 건의하여 40여년간지속하여오던 차류대종회를 해체하였다

그리고 그 삭제의 변을 2008년 간 무자보에 실었다                <편집자주>

                   원파록삭제변 (源派錄削除辨 ) 

금번 우리 문화류씨(文化柳氏)의 족보를 편수함에 있어 편수위원회의 결의와 대종회의 인준에 의하여 원파록(源派錄)을 삭제하고 오직 그 최초에 실린 기사보(己巳譜)의 원문을 그대로 영인하여 예전 그 자리에 보존하는 바, 이를 삭제함은 그 기록이 경위에 맞지 않은 때문이요, 보존하는 것은 그 기록을 근거로 삼기 위함이다.    이는 조선 말엽부터 세보 문헌편에 실려 있었는데 기록이 허구(虛構)함이 넘치고 말이 번거로움이 심하여 위로부터 아래까지 수천년간 모든 사적을 보기가 어제 일을 보는 것 같고 듣기가 오늘 아침의 사적을 듣는 것 같은 바, 가령 기혈을 받고 태어난 후손들이라도 오히려 그를 위본(僞本)으로 의심이 많겠으니 이 어찌 까닭이 없겠는가?    이를 깊이 연구하게 된 발단(發端)은 지난 一九九七정축에 연안차씨(延安車氏)들이 대전 안영공원(安永公園)의 한 모퉁이에 그들의 유래비(由來碑)를 세운 바, 비석 안에 원파록에 의거하여 우리 류씨(柳氏)를 폄훼한 글이 있는데 우리 류씨를 가성(假姓)이라 이르고, 시조 대승공(大丞公) 류차달(柳車達)을 차해(車海)라 고치고, 二세 좌윤공(佐尹公) 효금(孝金)을 문화류씨시조(文化柳氏始祖)라 하고, 이 밖에 류씨를 헐뜯는 등 여러 말은 숙손무숙(叔孫武叔)이 공자(孔子)를 폄훼(貶毀)한 것과 같았다.    또 二○○四갑신(甲申)에 그들이 족보를 간행하면서 그 유래비문을 중(中) 일(日) 영(英) 독(獨) 불어(佛語) 등 오개국어로 번역 해석하여 그 책머리에 올려, 가까이는 역내에 반포하고 멀리는 해외에 전파하여 온 세상의 이목을 바꾸고자 한 바, 그 심지의 사악함과 모사의 졸렬함은 그 분수를 헤아리지 못한 것으로 가소로울 뿐이다. 그리고 이것으로도 부족하여 우리 영락(永樂) 가정(嘉靖) 양보(兩譜)를 또한 주먹으로 치고 발로 짓밟듯 여지없이 배척한 바, 해동 족보의 효시라 일컫는 것과 비교해 볼진대 어찌 그 하늘과 땅처럼 서로 다른가? 눈으로 가히 볼 수 없고 귀로 가히 들을 수 없는 바, 그 공교로운 말이 앵무새보다 지나치고 사악한 뜻이 도깨비에 가까워 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는 것보다 더 간사하였다.    이에 동년 팔월에 우리 대종회에서 긴급히 대책회의를 열어 저들의 방자(放恣) 흉악함이 날로 심하여 형세상(形勢上) 그대로 둘 수 없다 하고, 난상 토론한 끝에 여러 의론이 하나로 모아져 이르기를 "차문(車門)의 주장이 정녕 사실이라면 마땅히 승복하는 것이 옳거니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철저히 대응하는 것이 옳다." 는 것이었다.    곰곰 생각건대 사람의 자손(子孫) 된 자로서 남이 자기 할아버지를 무망(誣妄)하는 것을 보고도 변명할 줄 모른다면 아들을 두고 손자를 둔들 장차 무엇에 쓰겠는가? 남의 능욕을 중지시키는 데는 증거를 세우는 것이 최선인 바, 공사가문헌(公私家文獻)으로 우리 류씨의 유래와 관련이 있는 것을 널리 수집, 심층 탐구하고 정밀 분석하여 글 한편을 만들어 종보에 등재하였으니 실로 이는 한편으로는 종인들에게 두루 알리는 자료를 삼고, 한편으로는 차문의 소요에 대한 조목조목 분별의 증거를 삼기 위함이라, 그러나 결코 감정에 치우치지 않고 오직 논리를 세워 기술한 것과 증빙문헌(證憑文獻)을 동봉 우송하여 시정을 촉구하였다.    그 후 수차 회의에서 종합 토론한 바, 소위 차모설원기(車某雪寃記)와 강보원파록(江譜源派錄)은 전혀 역사적 증거가 없는 것인데 오히려 우리 선세에 모화사상(慕華思想)에 젖어 들어 그 말을 맹신하고 후인들 또한 선인의 유서라서 맹종함으로 이에 이르러 저들이 그 시기를 틈타서 또 날조하고 또 왜곡하여 일(一)을 십(十)으로 더하고 십(十)을 백(百)으로 불린 것이다. 곰곰 생각건대 이름을 고치고 성(姓)을 바꾸기 수천년 동안, 부인도 없이 독신으로 백대를 전한다는 것이 어찌 있을 만한 일이라 이르겠는가? 지금에 이르도록 세간에서 아는 류씨와 차씨가 동조이성이라는 말은 실로 근거 없는 거짓이요 잘못된 전설이다.    이제 모욕을 막고자 함에 있어 실로 이 기록을 삭제하는 것보다 우선할 것이 없고, 또한 성인(聖人)도 일찌기 의자궐지지훈(疑者闕之之訓)이있다, 곧 의심되는 것은 빼라는 교훈이 있었는데 우리가 오늘날 모욕을 막는 때에 이르러 어찌 성인이 이른바 의심되는 것은 빼라는 말씀을 따르지 않겠는가?    더욱이 분명한 증거가 있는 바, 근래 들으니 영남대학교(嶺南大學校)에 이수건(李樹健) 교수가 있어 사학(史學)으로 일세(一世)의 추중(推重)을 받은 분으로 그 논문에 이른 바 『조선시대(朝鮮時代) 신분사(身分史) 관련 자료조작(資料造作)』이란 글이 출현하였는데 그 가운데 「차모(車某)의 설원기(雪寃記)는 그 후손 이재(頤齋) 삼부자(三父子), 곧 이재(頤齋) 식(軾)과 그 아들 오산(五山) 천로(天輅)와 창주(滄洲) 운로(雲輅)의 공저(共著)라.」 이른 말이 있다. 이로써 볼진대 원파록(源派錄)을 삭제하고 삭제하지 않음은 사리 판단에 밝았던 공자(孔子)의 제자(弟子) 자공(子貢)의 변명을 기다리지 않고도 저절로 결정될 것인 바, 우리 대승공의 후손 된 자 스스로 반성하는 자리에 있어 류(柳)씨와 차(車)씨가 근원이 한가지라는 말은 점점 후인의 입에서 없어질 것이니 성인의 의심되는 것은 빼라는 경계의 의의를 어찌 가볍게 이르겠는가?    저들이나 우리를 논할 것 없이 사실을 왜곡할진대 선조를 욕되게 하고 후손을 속인다는 기롱(譏弄)과 세상을 미혹(迷惑)시키고 사람을 속이는 죄를 면하지 못할 것이니, 더욱 조심하고 더욱 경계해야 할 것이다.    차문에서 소요를 일으킨 지 십년만인 二○○七년정해(丁亥年)에 드디어 양성(兩姓)이 한 자리에서 친목을 다지던 모임이 깨지고 각기 본래의 처지로 돌아간 바, 기분의 상쾌함이 장마에 개인 날을 얻은 것 같고, 마음의 통쾌함이 가뭄에 비를 얻은 것 같다. 이 상쾌하고 유쾌함이 마땅히 길이 전할 일로서 오직 원하는 바, 여러 종친들은 함께 그 뜻을 힘쓰고 함께 그 힘을 다하여 오늘날 이 글을 삭제하는 의의를 계속 지켜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문화류씨대종회세보편수위원회

  源派錄削除辨

今吾文化柳氏之修譜也依其編修委員會之決議若大宗會之認准削除其源派錄惟其初載己巳譜之原文因影印存之於故處盖削因其不經而存因其爲據也是自鮮末載於吾世譜文獻篇而記之濫於虛言之甚於煩自上至下數千年間之事之蹟見之如見昨日事聞之如聞今朝蹟假令氣授血禪之雲裔見之尙多疑其僞本者是豈無以者哉第此窮究之發端者去丁丑延安車氏就大田安永公園之一隅竪其由來碑而碑中有文據源派毀及吾柳者曰柳氏假姓始祖大丞公柳車達改車海二世佐尹公孝金爲柳氏始祖以外詆毀柳氏等諸說有如武叔之毀孔子矣且甲申渠刊其譜就其碑文以中日英獨佛五個國語譯焉釋焉登其篇首近而頒諸域內遠而播諸海外思易一世之耳目其心之邪謀之拙可哂其不知量也然而此猶不足至吾永樂嘉靖兩譜亦拳焉蹠焉斥無餘地比諸東譜嚆矢之稱何其天壤之相懸也目不可見耳不可聞而巧言過於鸚鵡邪意近於魍魎彼指鹿爲馬不足爲奸也於是乎同年八月吾大宗會急開對策會議彼之肆兇日甚一日勢不可仍存而爛商之餘衆論歸一曰車門主張正爲史實則宜當承服可也若不然則徹底對應可也竊念爲人子孫者見人誣祖而不知辨焉則有子有孫將何所用耶止人凌辱立證最善廣蒐公私文獻之有關於吾柳所自出者深層探究精密分析爲文一篇登諸宗報實是一爲遍吿宗人之資一爲條辨車擾之證也然決不偏於感情惟立論理以記述者若證憑文獻同封郵送而促求是正厥後數次會議綜合討論則所謂車某雪寃記江譜源派錄全無史證而無乃我先世浸入慕華思想盲信其說後人亦盲從先緒於是乎渠乘其時且捏且曲以一加十以十增百者也竊念改名變姓數千年無婦獨身傳百世者烏曰可有之事耶至于今世間所知柳車同祖異姓之說實爲虛誕也訛傳也今欲禦侮實莫先於削除此錄且況聖人曾有疑者闕之之訓吾於今日禦侮之時何不從聖人闕疑之言耶尤有明證者近聞嶺南大學校有李樹健敎授以史學見重一世其論文曰朝鮮時代身分史關聯資料造作者出現而其中有車某雪寃記卽其後孫頤齋三父子共著云以此觀之源派錄之除不除不待子貢之辨而自決爲吾大丞後孫者在自省之地柳車同源之語漸絶於後人之口聖人闕疑之戒之義烏可曰輕之哉毋論彼此史實歪曲則不免辱先欺後之譏惑世誣人之罪益愼益戒也已車擾之發十年丁亥遂破兩姓同席講睦之會各歸其本來之所氣之爽兮如霖得晴心之快兮如旱得雨此爽此快事當永傳惟願諸宗共勵其志共殫其力使今日削除此文之義繼守而勿惰焉

                    文化柳氏大宗會世譜編修委員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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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옮김.정리 류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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