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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문화류씨 가정보서 ....(1562>


                        가정보서
(嘉靖譜序)

정부자(程夫子)가 말씀하기를 「천하의 인심을 포섭하여 종족을 수합하고 풍속을 순후하게 하려면 반드시 보계를 밝혀야 된다」하시었다. 그러니 보계를 밝히는 것이 어찌 조상을 존경하고,근본을 소중히 하는 의리와 관계가 되지 않겠는가?    같은 근원(根源)에서 여러 갈래로 나뉘어져 사람도 바뀌고 세대도 멀어짐은 도연명(陶淵明)의 시에서 읊은바 있고,정(情)이 친(親)에서 나타나고 친(親)이 복(服)에서 나타남도 노천(老泉) 소(蘇) 순(洵)의 글에서 발표되었다. 내가 이에 느낀바 있어 一五四二년임인(壬寅) 겨울에 비로소 수보를 하고자 널리 묻고 찾아 모으며 년대를 밝혔으나 빠진 것이 많았었다. 곧바로 어사로 옮겼다가 이어 의흥현감(義興縣監)으로 임명되었으나 복잡한 업무에 시달려 일을 끝내지 못하였다. 一五四五년을사(乙巳)가을에 사화(士禍)에 연좌되어 문소(聞韶;의성)로 유배된바 귀양살이가 쓸쓸하여 할 일이 없거늘 날마다 보도(譜圖)를 대하여 정정(訂正)에 뜻을 다하였다. 한 곳에 갇히어 있으니 상의할 사람이 없었는데 때때로 왕래하는 손님과 이임하는 수령이 간혹 지나가면 반드시 족보 이야기를 꺼내서 말하고 그가 누구의 후손임을 알아서 계파(系派)를 올바르게 기록하였다. 이렇듯 십팔년의 오랜 세월동안 하나를 물어 둘을 증명하고 다섯을 들치어 열을 알아서 빠진 것을 많이 보충하여 이에 족보를 완성하였다.    우리나라 거가대족(巨家大族)의 내외 계렬이 모두 다 대승공(大丞公)의 원파(遠派)로서 자자손손이 조정에 드러난 인물이 많으니 대승공께서 물려주신 음덕(蔭德)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족보를 닦아 계통을 밝히는 것이 어찌 꼭 우리 문중(門中)의 다행이라고만 할 것인가? 실로 국가의 인심을 포섭하는 대본이라 할 것이다.    류승지(柳承旨) 혼(渾)과 류참의(柳叅議) 잠(潛)이 이 족보를 편찬한다는 말을 듣고 간행하여 오래도록 유전하고자 하던 차에 류상(柳相) 지선(智善)이 마침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있는지라. 상의하여 정감사(鄭監司) 언각(彦慤)에게 말하여 서로 나누어 발간하기로 의논이 되었더니 一五五四년갑인(甲寅)에 흉년이 들어 끝내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나의 十년 뜻이 마침내 폐기되어 끝내 전하지 못할까 두려워 친히 이본(二本)을 등사(謄寫)하여 일본(一本)은 류참의(柳叅議)에게 보내어 후일에 발간할 자료를 삼고, 한 본(一本)은 나의 집에 소장하여 자손들에게 전하게 하였다. 정상(鄭相) 종영(宗榮)은 나의 종매서(從妹婿)인데 경상도관찰사로 와서 지필을 보내어 한 본을 요구하므로 내가 등사하는 수고를 꺼리지 않고 붓 잡기를 더욱 부지런히 하였는데 이는 널리 전하여 없어지지 않도록 하고자 함이었다.    아아! 소로천(蘇老泉)이 말하기를 우리 족보를 보는 이는 효제의 마음이 저절로 생길 것이라 하였으니 내가 알지 못하겠으나 이 족보를 보는 이는 스스로 이러한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嘉靖四十一年壬戌_{ 我明宗十七年-1562 }_十二月下浣    
                   적인 희잠은 문소우사에서씀 謫人希潛書于聞韶寓舍_

{謹按公卽左議政灌之猶子議政公被乙巳禍故公亦坐謫于義城著此譜十卷}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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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嘉 靖 譜 序

程夫子曰管攝天下人心收宗族厚風俗須是明譜系然則譜系之明豈不關於尊祖重本之義耶盖同源分流人易世疎詠於陶詩情見於親親見於服發於蘇引余於是有感焉歲壬寅冬始修世譜廣採博訪以著年代而尙多闕漏尋遷驄馬繼授義興困於叢簿亦未卒事乙巳之秋坐門禍配於聞韶_{義城縣名}_謫居蕭索伴愁無物日對譜圖專意証正而羈縶一隅無從質問間有往來使賓沿牒守宰或相過焉語必及於譜知其爲某之後某之孫也則因以求正其系派至於十八年之久問一證二擧五知十補漏者多而譜已成矣噫吾東方巨家大族內外門系無非大丞之遠派則子子孫孫顯揚於朝列者亦莫非大丞之餘蔭也修是譜而明是系豈特吾門之幸實朝廷管攝人心之一大本也柳承旨渾柳叅議潛聞是譜之撰欲鋟梓印播以壽其傳而柳相智善適尹東都_{慶州}_相囑互議謀諸鄭方伯彦慤將欲分刊而遭甲寅之荒亦未遑也余懼夫十年之志終爲覆瓿之具而卒未得傳也手自楷書已成二本一送柳叅議以爲他日繡梓之地一藏弊笥以爲我子孫之傳也鄭相宗榮是我從妹婿也觀風南道亦以紙筆求一本余不憚謄寫之勞而操筆益勤者期於廣傳而不至泯沒也嗚呼蘇老泉云觀吾譜者孝悌之心可以油然而生愚不知看此譜者獨無是心之發也耶               
                  嘉靖四十一年壬戌_{我明宗十七年}_十二月下浣
                                    謫人希潛書于聞韶寓舍_

      {謹按公卽左議政灌之猶子議政公被乙巳禍故公亦坐謫于義城著此譜十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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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문화류씨 2번째 족보서문임 * [출처: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정리.편집 류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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