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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구월산 묵방사 완복문

 


                                묵방사완복문


 



                                                    墨坊寺完復文


 문화현(文化縣)은 옛날에 유주(儒州) 고을로써 유주에 류씨(柳氏)가 있은지 오래 되었다. 세상에서 덕을 숨기고 나타나지 않는 이를 칭송함이 자못 옛적부터 있던 일인가?   흥률사(興栗寺)에 옛적 기문이 있어 들보 위에 숨겨져 발견하지 못한지 이미 二百년이라. 스님이 절을 수리하다가 기문을 발견하였는데 지정년간(至正年間)(고려 공민왕(恭愍王) 때)에 스님이 지은 바, 그중에는 상고하지 못할 것도 있으나 또한 반드시 그렇지 않다고 하지 못할 바도 있다.   신라말(新羅末)을 당하여 후삼국이 서로 웅거하여 자웅을 겨루었는데 이때에 우리 시조께서는 관인(寬仁)하신 고려태조(髙麗太祖)에게 천명(天命)이 있음을 아시고 수레로 군량을 조달하여 떨어치지 않음으로써 마침내 태조가 적을 섬멸하여 삼한을 통합하고 나라를 도탄에서 구하여 백성을 편안케 하신지 이제 五百년이 되었으니 공덕을 당세에 입힘이 실로 뛰어났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성품이 질박하고 간략하여 일을 좋아하지 않음으로써 국사에도 실리지 않고 가계에도 고징할 수 없어 당시의 일을 이미 상고하지 못하겠으니 자손의 애석한 마음이 어떠하겠는가?   그 뿐 아니라 고려와 조선에 걸쳐 수백년동안에 자손의 번성함은 말할 것도 없고, 장상이 되고 경사가 되어 국가와 더불어 휴척(休戚)을 같이한 사람이 육·칠에 그치지 아니하였으니, 근원이 있는 물이나 나무에 가지가 있는 것 같이 지금도 계속 융성하고 있는 바,비록 한(漢)나라의 장씨(張氏) 양씨(楊氏)와 당(唐)나라의 최씨(崔氏) 노씨(盧氏)와 송(宋)나라의 조씨(曺氏) 유씨(劉氏)도 이에 족히 비하지 못할 것이요,가문에 전하는 법도와 자손에 끼친 음덕은 또한 한(漢)·당(唐)·송(宋)의 훌륭한 가문에 비길 바 아닌데 문적으로서 증거할 수 없는 것이 더욱 애석하도다.   시조(始祖)의 묘소가 지금 구월산(九月山) 서쪽 기슭에 있으니 대개 선세에 덕을 감추고 사신 곳이다. 그 위치가 양지편이요, 그 좌(坐)가 남쪽 언덕으로 귀(鬼)와 신(神)이 호위하여 세상에 드러나지 않고 깊이 묻혀 있는데다 연대가 이미 멀고 수호하는 사람이 없어서 초부와 목동이 죄다 밟아도 방치함으로써 지난날의 불행을 초래하였으니 가히 말할수 없도다.   원대손 관(灌)이 방백(方伯)(관찰사이 되어 비로서 성묘하고 산소에 표석을 세운 후 원대 외손인 홍공춘경(洪公春卿)이 그 뒤에 이어 비석을 세워 기록함으로써 비로소 구롱(丘壟)과 같이 버려지지 않으니 초동도 목동수도 들어가지 못하게 되었다.   아아! 자손이 일시에 장상(將相)과 공경(公卿)이 되어 차마(車馬)로 궁실에 출입하며 영화를 누리면서도 구릉의나무들이 베어지고 묘역이 황량하게 방치되었으니 아아! 스스로 살피지 못함이 심하였도다.   묘하에 묵방사(墨坊寺)란 절이 있는데 방이 몇이요, 부엌이 몇이요, 승려가 몇명이 있다. 이미 지난 일은 어쩔 수 없거니와 나를 이어 부임하는 후손은 그 절을 완전히 하고 그 승려를 보호하여 무릇 관가의 부역과 군대의 징집을 일체 면제해 주고 맡은바 일에만 전심토록 하고, 춘추로 청소하는 도구를 마련하여 행함이 마땅할진저, 옛적에 전씨(錢氏)의 묘가 임안(臨安)에 있었는데 조변(趙抃)이 소식(蘇軾)으로 하여금 그 사실을 기록하게 하고 승려들로 하여금 그 묘소를 돌보게 하여 선현의 묘를 공경하도록 한 예가 있었다.   향리를 다스리는 신하(守土之臣)가 곧 지방의 수령으로서도 참으로 좋은 일을 하는 자 있어서 설계(設計)하고 구획(區劃)하여 소홀하지 아니함이 이와 같거늘, 하물며 자손으로서 이 지방(地方)에 부임한 자로서 그 성의가 없을 수 있으랴. 만일 성의가 없어 선영을 범연히 볼진대 다만 우리 문중의 불초손일 뿐만 아니요,또한 조(趙) 소(蘇) 두 현인의 죄인이 될 것이 의심할 바 없겠도다.

                                                             만력乙酉(1585)孟夏   
                                                 황해도관찰사 류희림(柳希霖)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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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墨坊寺完復文

文化縣古儒州也儒州之有柳氏久矣世稱隱德而不耀殆亦古有者歟興栗寺古有記棲之樑木上不發已二百年寺僧治墁得之記盖至正年山人所撰其中有不稽者存而亦不可謂不必然也當羅末三雄割據力侔而爭時則有若吾始祖識天命寬仁之所在出車乘調兵食未嘗乏絶卒使太祖殲賊統三韓拯一方於塗炭之中而措之袵席之上者五百年于茲功德之被乎當世者誠亦卓矣東人樸畧不好事國史不載家系靡考當時之事已不得考則爲子孫之痛惜誠如何也不然出入兩朝數百年子孫之蕃則有不足言而爲將相爲卿士與國家同休戚者不減六七而作如源之有水如木之有枝至于今猶未艾雖漢之張楊唐之崔盧宋之曺劉有不足比而垂家之範裕昆之德又決非漢唐宋門䦨之所可擬則至此而文籍之無憑尤可惜也始祖墓今在九月山西麓盖先世隱德之所也厥位面陽厥坐丙原神護鬼呵地秘天藏而年代旣遠奉衛無人蒭者往牧者至置之相忘之地曩時之不幸有不可言遠代孫有曰灌來爲方伯始省掃而表其道外堂裔洪公春卿繼其後竪羊石以誌之然後始不與丘壠同歸而樵牧爲之有禁嗚呼爲子孫者爲將相公卿於一時出車馬入宮室施施潭潭而便使丘木斬伐霜露荒 凉噫不自省甚矣墓下有寺曰墨坊室若干厨若干僧若干人旣往已矣繼余者完其寺復其僧凡公家之應徭軍國之興役一切不預而得專心於所事以備春秋掃除之具其亦庶乎可也昔錢氏墓在臨安趙抃使蘇軾表其事營觀度僧而有所衛護使先賢之墓有所矜式焉守土之臣苟有好事者爲之區劃而不得恝然者已如此况子孫之來莅是邦者其亦無意乎如或無意而猶視泛泛則不特爲吾門之不肖抑二賢之罪人也無疑     
                                                         萬曆乙酉孟夏       
                                                  黃海道觀察使柳希霖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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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 문화류씨세보*정리.편집 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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