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제    목  갑자보서 (1864)

올린분

 

甲子譜序 갑자보서 <1864>

 가만히 생각건대 우리 문화류씨(文化柳氏)는 동방의 여러 성씨 가운데 가장 현저하니 그 근원(根源)이 헌원(軒轅) 희씨(姬氏)로부터 나왔다. 헌원씨(軒轅氏)로부터 숭백(崇伯)에 이르기까지 四세에 사씨(姒氏)에 전하고, 사씨(姒氏) 十세에 왕씨(王氏)에 전하고, 왕씨(王氏) 상계(相系) 五十七세에 차씨(車氏)에 전(傳)하고, 차씨(車氏) 상계(相系) 五十二세에 류씨(柳氏)에 전하여 유주(儒州)로 본관(本貫)을 한지 五세만에 대승공(大丞公)이 초매(草昧)에서 제우(際遇)하시어 처음으로 기반을 닦아 문화류씨(文化柳氏)의 비조(鼻祖)가 되시었다.    그 후로 문간공(文簡公)이 보상(輔相)의 경륜(經綸)으로 후세에 아름다움을 이으셨고, 간흉(姦兇)을 제거하여 왕실에 정권을 회복함은 문정공(文正公)이 계시고, 학문을 개척하여 이단을 물리치고 지치(至治)를 이룩함은 하정공(夏亭公)이 계시고, 성정(誠正)과 격치(格致)의 도리로 후학을 가르침은 사교공(四矯公)이 계시고, 왕을 보좌하여 세도(世道)를 다스리심은 충간공(忠簡公)이 계시고, 집에서 효우(孝友)하고 관직에 청렴하심은 관은공(灌隱公)이 계시고, 여러 고을을 다스림에 청백(清白)하고 자혜(慈惠)함은 원주공(原州公)이 계시고, 고명한 학식과   강직한 성품은 청계공(清溪公)이 계시고, 집에서 효도를 베풀고 나라에 충성이 드러남은 학암공(鶴巖公)이 계시고, 깊은 학식과 큰 도량으로 경륜을 세우고 기강을 바로잡기는 하담공(荷潭公)이 계시고, 유교를 상실치 않게 하여 세도를 유지하심은 반계공(磻溪公)이 계시고, 지위가 경상(卿相)에 이르러 정성껏 수직하기는 문평군(文平君)이 계시고, 토지(土地)를 개척(開拓)하여 백세(百世)에 공훈(功勳)을 세움은 곤산군(崑山君)이 계시고, 강의(強毅)를 스스로 견지하고 정직을 스스로 지키심은 장경공(章敬公)이 계시고, 대의가 당당하여 천일(天日)같이 빛난 충성은 사예공(司藝公)이 계시고, 고관대작이 집안에 가득하여 당세에 명성이 빛남은 문령군(文寧君)이 계시고, 압록강(鴨綠江)에서 회군하여 개국의 원훈(元勳)이 됨은 좌상공(左相公)이 계시고, 고마지절(叩馬之節)과 도해지지(蹈海之志)는 서산공(西山公)이 계시고, 재조와 학식이 남보다 뛰어나 풍운(風雲)의 기회를 만나 영상을 지내신 노포당(老圃堂)이 계시고, 왕유(王猷)를 찬조하고 건의하며 간절히 규간(規諫)하고 잠언(箴言)으로 보익(補益)하기는 시령부원군(始寧府院君)이 계시고, 직언으로 극간하여 진수해범(進修楷範)을 지은 성재공(醒齋公)이 계시고, 국가에 공훈을 세우고 선조에 성력을 다함은 문양군(文陽君)이 계시고, 도학을 전수 받아 선정(先正)의 칭허(稱許)를 받으신 미암공(眉巖公)이 계시고, 대려(大慮)와 원모(遠謨)로 강직한 덕업을 성취함은 정숙공(貞肅公)이 계시고, 국사에 충성을 다하고 울면서 원병을 청함은 문흥군(文興君)이 계시고, 덕이 높고 사업이 넓어 임금을 도와 충성을 다하심은 충경공(忠景公)이 계시고, 충절(忠節)이 일월(日月) 같이 빛나고 백세에 풍절(風節)을 세움은 송암공(松菴公)이 계시니 이상은 모두 가장 드러난 어른이다.    그 나머지 각파에 고관대작이 연이어 아조(我朝) 이래로 정승에 오른 분이 九인이요, 원훈(元勳)이 十三인이요, 문과와 음사와 무과로 사적에 오르고 생원 진사를 지낸 이가 三千七百여인이며, 충효(忠孝)와 염백(廉白)과 절의(節義)와 덕행(德行)과 문장(文章)은 백수로는 헤아리기 어려운즉 황명(皇明)의 우학사(于學士)가 이른바 동국의 류씨(柳氏)는 진(晋)나라의 왕씨(王氏) 사씨(謝氏)와 당(唐)나라의 최씨(崔氏) 노씨(盧氏)에 뒤지지 않는다고 한 것이 또한 마땅하지 아니한가? 류씨(柳氏)의 종족(宗族)이 이토록 성하여 울연(菀然)히 의관 거족(衣冠巨族)이 되었으니 그 가히 족보가 없지 못할 것이 확연하다.    영락(永樂)二十一년 계묘 즉 세종(世宗) 五년:(一四二三)에 양도공(良度公)이 비로소 세보를 수찬하셨는데 다만 명휘(名諱)만 기록하여 일권(一卷)을 만들고, 계묘후 一百三十九년 가정(嘉靖) 四十一년 임술(壬戌)(명종 十七年;一五六二年)에 첨정공(僉正公)이 十권의 족보를 수찬하였는데 내외족척(內外族戚)을 일일이 갖추어 기재하였으니 이는 통국(通國)의 정서(正書)가 되었고, 임술후(壬戌後) 一百二十八년 기사(숙종 十五年:一六八九)에 처후씨(處厚氏)가 五권의 족보를 수찬하셨으니 일가의 공필(公筆)이 되었고, 기사후 五十一년 경신(庚申=영조(英祖) 十六年):一七四○年))에 환문씨(煥文氏)가 열권의 족보를 수보하다가 완성치 못했는데 달해씨(達海氏)가 계속하여 十三권을 만들었고, 경신후(庚申後) 五十七년 정사(丁巳=정조二十一年)一七九七年)에 백천공(白川公)이 二十七권 족보를 수찬하셨으니 금년 갑자(甲子;一八六四年))는 정사후(丁巳後) 六十八년이 되었다.    근래에는 편질(篇帙)이 호번(浩繁)함으로 인하여 각각 파보를 수찬하니 정해년에 진사공 굉씨(浤氏)가 비로소 충경공파보(忠景公派譜)를 수찬하고, 경인년에 첨추공(僉樞公) 학면씨(學勉氏)가 좌상공파보(左相公派譜)를 수찬하고, 신묘년에 한영씨(漢永氏)가 검한성공파보(檢漢城公派譜)를 수찬하고, 병오년에 상두씨(相斗氏)가 곤산군파보(崑山君派譜)를 수찬하고 신묘년에 화용씨(和用氏)가 지후사공파보(祗候使公派譜)를 수찬하고, 임술년에 병철씨(秉喆氏)가 좌상공파보(左相公派譜)를 계수(繼修)하였다. 아아! 각파의 소보(小譜)는 비록 능력이 부족한 때문이나, 그러나 한 집안에서 지나치게 분리되어 각각그 조상만 위하고, 각각 그 친척만 친애(親愛)하면 효제의 마음과 돈목의 정의가 동파에만 그칠 것인즉 우리 선조의 균일하게 보시는 의(誼)가 땅에 쓸어버린 듯 할 것이니 어찌 그것이 옳다고 하리요?    내가 이에 재한(齎恨)한지 오래되어 합보(合譜)에 뜻을 두고 옛 보첩을 찾아 모아 그 소목(昭穆)을 분별함으로써 종지(宗支)의 차서(次序)와 거지(居地)와 청탁(清濁)의 분별이 심목(心目)에 요연(瞭然)한 지 여러해 되었다. 이에 임술년 겨울에 승지 흥길씨(興吉氏)·정언 태현씨(泰鉉氏)·방어사 씨(氏)와 더불어 계획(計劃)하고 수의(收議)하여 한편으로 발간하고, 한편으로   침재(鋟梓)하여 이년만에 일을 끝내니 이 역사에 병철씨(秉喆氏)가 필삭(筆削) 교정(校正)하고, 급제(及第) 원기(元基)가 감인(監印)을 하고, 영원(永源)과 병신(秉兟)이 주관하여 증정하고, 찬기(燦基)와 홍기(弘基)와 태혁(泰赫)과 문혁(文赫)이 서로 통고하고, 인식(寅植)과 근일(根逸)이 서사(書寫)하여 감동(監董)하며 그 고금을 증거하여 그 남모(濫冒)된 것을 바로잡되 보례(譜例)는 한결 같이 가정(嘉靖) 기사(己巳) 양보(兩譜)에 준행하였다. 일차 통문으로 팔도에서 향응(響應)하여 단자(單子)가 밀려 천리가 멀지 않았으니 우리 종중의 존조돈친(尊祖敦親)하는 성의를 가히 보겠으며 또한 성세(聖世)의 풍화에도 관계되니 아!장하도다.    우리 성상(聖上)께서 위에 계시어 돈친(敦親)하는 의(誼)로 선원보청(璿源譜廳)을 종친부(宗親府)에 설치하시고 여러번 칙교(勅敎)를 내려 원근을 막론하고 하나도 누보(漏譜)되는 바 없게 하시니 크도다. 성덕(聖德)이여! 이를 미루어 감히 말하노니 우리 류씨(柳氏)를 칭탁(稱托)하고 입보(入譜)하지 않는 자는 다만 종중의 비족(圮族)일 뿐만 아니라, 실로 성세(聖世)의 패류(悖類)가 될 것이니 감히 두렵지 않으며 감히 경계하지 않겠는가? 보책이 이미 완성되었기에 그 전말을 기록하여 권수에 부치노라.

                         고종원년 갑자(1864) 정월 대보름날 

                
대승공27세손 승기 삼가쓰다 (大丞公二十七世孫昇基 謹記  )   


 甲子譜序 1864

竊念我文城之柳最著於東方受氏之族其源出自軒轅姬氏自軒轅至崇伯四世而傳于姒氏姒氏十世而傳于王氏王氏相系五十七世而傳于車氏車氏相系五十二世而傳于柳氏貫於儒州五世大丞公草昧際遇創基於初爲文柳之鼻祖文簡公輔相經綸趾美於後而誅除姦兇復政王室有文正公開學闢異贊襄致治有夏亭公誠正格致開誨後學有四矯公黼黻王猷經紀世道有忠簡公居家孝友在官廉白有灌隱公十典州郡清白慈惠有原州公高明之學剛直之性有清溪公孝施於家忠著于邦有鶴巖公淵識偉度立經正紀有荷潭公斯文不喪世道有賴有磻溪公位至卿月恪勤守職有文平君開拓土地樹勳百世有崑山君強毅自持正直自守有章敬公大義堂堂捧日之忠有司藝公軒冕盈門烜爀當世有文寧君鴨江回軍開國元勳有左相公叩馬之節蹈海之志有西山公才學出人風雲有會有老圃堂猷爲建白規切箴益有始寧府院君直言極諫進修楷範有醒齋公樹勳於國殫誠於先有文陽君道得其傳見許先正有眉巖公大慮遠謨剛德克就有貞肅公竭忠王事哭請天兵有文興君德崇業廣翊戴忠勳有忠景公忠炳日月百世風節有松菴公此皆最顯其餘各派軒冕相望   我朝以來九登鼎席十三元勳文蔭武登仕籍生進者三千七百餘人忠孝廉白節義德行文章難百數計則   皇明于學士所謂東國之柳不下於晋之王謝唐之崔盧云者不亦宜乎柳氏之族於斯爲盛菀然爲衣冠巨族則其不可無譜審矣永樂二十一年癸卯良度公始修世譜只錄名諱爲一卷癸卯後一百三十九年嘉靖四十一年壬戌僉正公修十卷內外族戚一一備載寔爲通國之正書壬戌後一百二十八年己巳處厚氏修五卷爲一宗之公筆己巳後五十一年庚申煥文氏修譜十卷未了而達海氏續補爲十三卷庚申後五十七年丁巳白川公修二十七卷而今年甲子丁巳後六十八年也近因篇帙之浩繁各修派譜丁亥進士公浤氏始修忠景公派譜庚寅僉樞學勉氏修左相公派譜辛卯漢永氏修檢漢城公派譜丙午相斗氏修崑山君派譜辛卯和用氏修祗候使公派譜壬戌秉喆氏繼修左相公派譜噫各派小譜雖緣事力之不得已然一室之內過於分異各祖其祖各親其親孝悌之心敦睦之誼止於同派則吾 先祖均視之誼掃地盡矣何如其可也余用齎恨者久矣而有意於合譜崧舊牒辨其昭穆宗支之序所居之地清濁之分瞭然於心目者盖有年矣乃於壬戌之冬與承旨興吉氏正言泰鉉氏防禦使氏商確收議一邊發簡一邊鋟梓二周歲而功已吿矣是役也秉喆氏筆削而校讎及第元基監印永源秉兟主管而證正燦基弘基泰赫文赫輪回而通吿寅植根逸書寫而監董證其古今斥其濫冒譜例一依嘉己兩譜因遵一書之通八域響應輻湊并臻不遠千里吾宗中尊祖敦親之誠於斯焉可見而亦關於  聖世之風化矣猗歟盛哉惟我 聖上在上邇親之誼設璿源譜於宗親府累降 勅敎使遠近無所一漏大哉 聖德也推此敢言吾柳之稱托不入者非但宗中之圮族實爲 聖世之悖類敢不懼哉敢不戒哉書旣成記其顚末弁卷之首云

        崇禎二百三十七年聖上卽位元年上元甲子上元日   

                                   大丞公二十七世孫 昇基 謹記  


 

                                 [출처: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정리.편집 류영렬)


 
       

Next   무자보서 (2008) 편집인
Prev   정사보서 (1803)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