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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문화류씨 영락보 서 <1423>

 

  

                        문화류씨영락보서 (文化柳氏永樂譜序)

 어떤 사람들이 말하기를 문화류씨(文化柳氏)의 후손이 번성함은 좌윤공(左尹公)께서 호랑이의 생명을 구하여 준 음덕 때문이라 하는데 나의 생각에는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적선(積善)한 집에 반드시 여경(餘慶)이 있다 하였는바, 그 적선이라 함은 일조일사(一朝一事)를 말함이 아니다. 예로부터 당세에 현달하여 큰 이름을 누린 이는 많지만 그 자손이 대대로 이어 가업을 잃지 않고 수 백 년이나 오래도록 이른 이는 실로 드문데, 우리 류씨는 고려 초에 일어나 우리 왕조(王朝)에 이르도록 재상(宰相)의 가통(家統)을 이어 받아 지금까지 오백년의 오랜 세월을 전해 내려오니 과연 이보다 오랫동안 번영함이 어디 있겠는가?    그 파별로 말하건대 대제학 관(寬)은 도관찰사 사눌(思訥)과 함께 문간공(文簡公)에 근원을 같이 하였고, 정승 양(亮)은 정신공(貞愼公)의 현손이요,총제 은지(殷之)는 장경공(章敬公)의 증손이다. 그 밖에 동원분파(同源分派)된 자손으로 조정에 벼슬한 분을 다 기록할 수 없고 우리 문화군(文化君)은 바로 문간공(文簡公)의 오대손인데 영의정 정현(廷顯)으로 전하여 도관찰사 장(章)에 이르가까지 팔대를 이어 가풍을 더욱 떨쳤으니 가히 여경이 있다 이를 것이다. 이 어찌 일조의 선행(善行)으로 이처럼 되었겠는가? 그 연유를 캐어보면 시초에 대승공(大丞公)이 재산을 기울여 임금을 도우심과 문간공(文簡公)이 재상으로서 청렴하고 근신하심이 그 시작이며, 문정공(文正公)께서 권신(權臣)을 제거하여 국정을 왕실에 회복시키고 간곡한 충간(忠諫)으로 왕비의 화를 모면케 하시며 옥에 갇히면서도 직언을 하시어 중국사신을 부끄럽게 하시고 양민으로서 노례된 자를 알아내어 다시 양민으로 만드시고 금은의 뇌물을 물리쳐 받지 않으셨으니 무릇 선(善)이란 충성(忠誠)과 직언(直言)과 청렴(清廉) 보다 더 큰 것이 없는데 공께서 홀로 이를 겸하시었고 또 정신공(貞愼公)의 어버이 섬김에 극진하신 효성과 장경공(章敬公)의 강의(強毅)하심과 문화군(文化君)의 정직하심 등의 일이 일조의 선행이 아니니 후손들의 경사가 진실로 이 때문인 것이다. 나는 그런 연유로 특별히 좌윤공(左尹公)의 한꿈의 징험만이 아니라고 이르는 바이다.    그 후손된 자는 선대에 쌓은 공덕을 추모하고 생각하여 항상 조심하는 뜻을 가져 선조의 공업을 고찰하여 계술하기를 생각하고 그 절의를 보고 느끼어 또한 끝까지 욕됨이 없이 해야 할 것이다. 이같이 하면 여경이 진실로 이에 그치지 않을 것이니 이것이 바로 내가 금일에 찬술하는 뜻이다. 보는 이는 세계를 과장했다고 나무라지 말지어다.

                      영락이십일년계묘  [세종 5년=1423년]    八月   日       
        대승십사대손통정대부승정원우대언 경연참찬관충춘추관편수관 
                                  겸 판사재감사지례조사 영 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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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永  樂  譜 序
或曰文化柳氏後嗣之蕃左尹公救虎活命陰德使然也愚則以爲易曰積善之家必有餘慶其曰積者非一朝一事之謂也自古顯當世而享大名者非不多然其子孫繼繼綿綿不失家業以至數百年之久者鮮矣盖我柳氏起於高麗之初至于明王朝始爲宰輔相襲箕裘以至于今垂五百年果未有久於此者也若論其派大提學寬與其都觀察使思訥同源於文簡公也政丞亮則貞愼公之玄孫摠制殷之則章敬公之曾孫也其他同源分派從仕于朝者不可勝記我文化君乃文簡公之五代孫也傳于領議政廷顯以至都觀察使章八代相連益振家風可謂有餘慶矣是豈一朝之善乎而致此哉原其所由厥初大丞公之傾財輔主文簡公之爲相廉謹是其權輿也及我文正公誅除權臣復政王室膝行忠諫王妃免禍臨獄直言天官赧然認民爲隸者脫而爲良以銀爲賂者却而不受夫善莫大於忠也直也清也而公獨兼之若貞愼公之事親盡孝與夫章敬公之強毅文化君之正直則非一朝之善也後嗣之慶誠以此也余故曰非特左尹公一夢之驗也爲其後者追思積累之功常存戰兢之志考其功業而思欲繼述觀其節義而亦將無忝如是則餘慶固不止此耳此吾今日撰述之意觀者毋以誇世系爲誚        
                              永樂二十一年癸卯  [我世宗五年]    八月   日      
          大丞十四代孫通政大夫承政院右代言 經筵叅贊官充春秋館編修官 
                                 兼判司宰監事知禮曹事 潁  謹誌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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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서문은 한국족보사에서 제일 오래된 영락보(1423;세종5년) 서문임 * 가정보에 전한다

                                                                           출처: 문화류씨세보      편집.정리 류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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