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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편집인
  제    목  뮨화류씨기사보서..... ..<1689>

 

                          기사보서己巳譜序  )    

보계(譜系)를 편수함은 종법(宗法)을 존중하고 소목(昭穆)을 질서있게 하며 지서(支庶)를 분별함이니 친친(親親)하는 정과 목인(睦婣)하는 의리가 이로 인하여 생기게 되는 것이다. 소명윤(蘇明允)(노천(老泉) 소(蘇) 순(洵))이 이른바 나의 보첩을 보면 효제의 마음이 저절로 생긴다 하였으니 어찌 미덥지 않은가?    우리 문화류씨(文化柳氏)가 기가한지 팔백년이 지났는데 그 사이에 수보한 것이 다만 두어번 뿐이니 하나는 영락년간(永樂)에 팔좌공(八座公) 영(穎)께서 자성보(子姓譜) 일편을 편찬하신 것이요,하나는 가정년간(嘉靖)에 첨정공희잠(僉正公希潛)께서 대보 십편을 편찬하신 것이니 대개 영락으로부터 가정에 이르기까지 一百四○년이요, 가정으로 부터 지금까지 一百二十八년이라,그동안 여러번 병란을 겪어 족보가 거의 없어져 전한 것이 없다. 이로써 사람들이 선계의 소자출(所自出)과 분파의 소유분(所由分)을 알지 못하므로써 친진복진(親盡服盡)이 안되었더라도 행인(行人)과 같이 여기게 되었다.    못난 내가 이를 개연하여 족보의 중간에 뜻을 두었으나 세대(世代)는 멀고 사람은 한미하며, 견문이 고루하여 망녕되이 시험치 못한 것이,달이 지나고 해가 지났는데 마침 나의 종인 대사도(大司徒) 상운씨(尙運氏)가 존조경종(尊祖敬宗)의 뜻에 깊이 염려하고 겸하여 보족수목(保族修睦)의 도리를 추진하고자 불녕으로 하여금 찬수하게 하니 그 뜻이 심히 훌륭한지라. 불녕(不佞)이 늙었다고 감히 사양하지 못하고 즉시 집에 전하는 성보에 의거하고 곁으로 제가의 보첩을 구하여 참고하고 증거하며 그 잘못된 것을 교정(校正)하여 편집한지 칠년만에 이제 다행히 대강 완성하였다. 시조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세대의 고하와 파계의 원근을 막론하고 각각 항렬 차례로 일부(一部)에 모아 기록하니 종지(宗支)와 소목(昭穆)이 뚜렷하여 문란하지 않으므로 부자와 형제가 한 집에 동거함과 같아 융화하고 돈목 할진대 이 보첩의 편수함이 어찌 다만 후손에게만 도움이 될 뿐이겠는가? 그러나 수집하는데 어려워 용의근로(用意勤勞)하였으나 잔손말예(孱孫末裔)로서 위미(萎靡)하여 윤락(淪落)한 자가 혹 탈루(脫漏)됨이 없지 않으며 세계가 희미하여 오류된 것은 그대로 따라 변별(卞别)하지 않을 수 없었으니 후세에 보는 이는 반드시 나의 뜻을 아는 이가 있을 것이다.    아아! 뿌리를 북돋우면 가지가 무성하고 근원을 깊이 파면 흐름이 길고 아득함은 이치의 정상(正常)이라. 대승공(大丞公)께서 초매(草昧)에서 제우(際遇)하시어 비로소 기반을 닦으셨고,문간공(文簡公)께서 보상의 경륜으로 후세에 아름다움을 이으셨으며,간흉을 제거하여 왕실에 복정(復政)하신 문정공(文正公)이 계시고,청백(清白)을 자려(自勵)하시고 정치를 찬양(贊揚)하신 하정공(夏亭公)이 계시고,문장과 정사로 왕을 보필하시고 효제와 충신으로 세세상의 도를 잘 다스려 가승과 국사에 대서특필할 분이 전후로 연이으니 후예의 번창함과 여경(餘慶)의 융성함이 무엇이나 조선의 적덕에 미친 바가 아님이 없는 것이다. 시전에 이르기를 「너의 조상을 생각지 않는가? 오직 그 덕을 닦으라」하였으니 무릇 우리 제종은 어찌 힘쓰지 아니하리요? 아! 세덕(世德)을 준수하고 가풍을 계술(繼述)함은 고인이 일찌기 힘쓰던 바이니 불녕이 가보서문에 또한 이르노라.

                  황명 가정(皇明嘉靖)임술후 128년(1698)기사(己巳)정월   日 

                           대승이십일대손 처후(處厚) 절하며 삼가 서 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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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己 巳 譜 序
譜系之修端爲尊宗法序昭穆別支庶而親親之情睦婣之義因此而生焉則蘇明允所謂觀吾之譜孝悌之心油然而生者豈不信然矣乎惟我文化柳氏起家八百年有奇其間修譜者只有數家一則永樂年間八座公穎著子姓譜一編一則嘉靖年間僉正公希潛著大譜十編盖自永樂至嘉靖一百四十年自嘉靖至今一百有二十八年屢經兵燹存者無幾幾於泯沒無傳而人莫知先系之所自出後派之所由分則不待親盡服盡而爲路人矣不佞竊嘗慨然於斯有意重修而世遠人微見聞孤陋不敢妄試者月有年矣適吾宗人大司徒尙運氏深惟尊祖敬宗之義兼推保族修睦之道俾不佞撰修意甚盛也不佞不敢以老耄辭卽據家傳姓譜旁求諸家譜牒叅考證証正其訛誤編摩七載今幸粗完而自始祖以迄于今毋論世代高下派系遠近各以行序彙錄於一部書宗支昭穆井井不紊父子也兄弟也有若居同一室瀜藹沕穆則此譜之修奚但有補於後昆而止哉然其裒聚旣難用意勤勞而孱孫末裔萎靡淪落者或不無脫漏焉世系未瀅襲謬仍循則不得不卞别焉後之觀者必有知我者矣嗚呼培根則枝茂濬源則流長理之常也大丞草昧際遇創基於初文簡輔相經綸趾美於後而誅除奸兇復政王室則有文正公清白自勵贊揚致治則有夏亭公至於文章政事黼黻王猷孝悌忠信經紀世道大書特書於家乘國史者前後相望則後裔之衍昌餘慶之隆溢何莫非祖先積德之所及也詩云無念爾祖聿修厥德凡我諸宗盍各勉旃噫陳世德述家風古人之所嘗惓惓者不佞於家譜序亦云爾        
                皇明嘉靖壬戌後一百二十八年己巳正月   日            大丞二十一代孫處厚拜手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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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보는 영락보,가정보에 이어 우리가문의 세 번째 족보이다. 전질5권이다
                                    [출처: 문화류씨세보 ). 편집.정리        류영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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