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제    목  류충렬선생 송덕비문 류영렬 찬

                                   
                                           아 슬프다.
                       본회 명예회장이신 추포 류충렬회장이
               향년96세로 2011.3.1일 11시20분 별세하시었다
                         고인의 송덕비문을 다시 읽으며
                              고인의 덕업을 되새기고
                                  추모의 정을 삭인다.

                        문화류씨 서울권종침회장 류영렬
          .......................................................................................

                  추포 류충렬선생 송덕비문

호남의 벽성(碧城)고을은 고래로 명유석학이 많이 배출되었는데 근세에 이르러 이 고장 출신으로 입지출관(立志出關)하여 국사에 참여 충성하고 물러나서는 사회에 봉사하며 윤리도덕선양과 정신문화 진작에 힘쓰고 교육입국(敎育立國)에 큰 뜻을 세워 1966년학교법인충렬학원(忠烈學園)을 설립 인재육성(人材育成)과 흥국부민(興國富民)의 백년대계를 다지시는 큰 교육자가 있으니 곧 벽성대학(碧城大學) 명예학장 류충렬(柳忠烈)선생이다.

선생의 아호는 추포(秋圃)요 본관은 문화(文化)로 고려개국 시 태조왕건의 군량보급(軍糧補給)을 도운 공으로 삼한익찬벽상공신에 서훈되고 대승의 관작에 오르신 휘 차달(諱 車達)이 시조가 된다. 가풍이 엄한 유학자 선고 인생(寅生)과 어머니 전주이 현덕(李賢德)여사 사이에 육남매 중 외아들로 1915년(을묘) 정월四일 전북김제시공덕면황산리에서 출생하였다.

선생은 어릴 때 준수한 용모와 총명한 예지는 가히 비범한 재목으로 향리의 주목을 받았다. 배우기를 즐기어 일찍이 한문교육과 사서삼경에 입문하였으나 시대변천에 대응하고 조국독립을 위한 자아의 역할을 위하여는 신학문을 배워야 한다고 판단 청운의 꿈을 품고 상경 고학으로 경성고등공민학교(현숭문)와 명지대학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후일 인하대학교교육대학원에서 교육학석사학위를 받았다.

세계이차대전은 연합군의 승리로 일본은 패망하고 우리나라는 해방을 맞이하게 되었다. 조국광복과 함께 정부수립당시 국가의 치안유지와 사회질서확립은 무엇보다 급선무였다. 공은 치안유지에 뜻을 두고 경찰직에 투신했다. 1950년 六.二五전쟁시는 전투경찰제九대대장으로 경찰병력을 이끌고 참전 조국수호에 큰 공을 세웠다.

인천지역경찰서장으로 부임 시는 전쟁고아와 불우청소년들이 헐벗고 굶주리며 사회범죄에 빠져 들고 있어 인천 소년수양원을 개설하고 무료급식을 제공하며 직접강단에 서서 배움의 길을 열어주며 꿈을 심어주니『낮에는 친절한 경찰아저씨요 밤에는 따뜻하고 엄한 학원선생님』이었다. 인천을 떠날 때는 수백제자들이 연도에 나와 길을 막으며 『선생님이 가시면 우리는 어떻게
하느냐 』며 옷깃을 잡고 울부짖을 때는 선생도 울고 제자도 울었다. 제주,
충남, 경남, 서울특별시 경찰국장등 치안총수의 요직을 봉직 국가치안에
큰 공을 세웠다.

국가에서 금성화랑무공훈장과 녹조근정훈장을 포상했다.
선생은 퇴임 즉시 인천으로 내려가 고등공민학교를 세우고 불우한 청소년을 다시 모아 평생 꿈이던 교육사업을 시작, 행정가에서 교육가로변신 교육입국(敎育立國) 의 꿈을 펴기 시작했다. 학교법인 충렬학원을 설립 광성(光星)중고등학교를 개교하여 교장에 취임 수 만 명의 제자를 배출 인천지역 우수명문
중고등학교로 키워냈다.

이어 선생은 고향인 전북김제시공덕면에 많은 재산을 기우려 벽성대학을
세우고 학장에 취임, 교육구국운동(敎育救國運動)의 실천을 통해 二十一세기조국발전에 이바지하고 앞으로 도래할 서해안시대의 주도적 역할에 대비하고 저 인재육성(人材育成)흥국부민(興國富民)의 건학이념(建學理念)을 펼치고 계신망백(望百)의 교육자이다

벽성대학은 일취월장 전국우수대학으로 평가 받아 교육부지정 중소기업기술지원 대학으로서 산학연대로 실학교육을 실천하고 있으며 미국 미주리 주
주립대학교와 자매결연을 맺어 고급지식과 첨단정보의 교류를 통해 교육문화의 국제화를 도모하여 뉴밀에니엄 시대의 산학캠퍼스로 우뚝한 위치를
 확립하였다.

선생은 국가와 사회에 헌신하고 교육발전에 기여한 공으로 대통령표창과
교육부장관상 및 김제시민장과 국민훈장목련장을 수상했으며一九九九년 우석대학과 노스웨스트 미주리주 주립대학교로부터 명예 교육학박사학위를 영득했다.

선생은 일찍이 종친운동에 참여 차류(車柳)대종회중앙총본부회장을 비롯하여 모성회회장과 문화류씨대종회 회장등을 역임 숭조목종(崇祖睦宗)과 모선육영(慕先育英)정신을 일깨웠으며 대승장학회를 설립 문중인재양성에 힘써 충효정신함양을 통한 전통문화창달에 심혈을 기우렸다.

선생은 국제라이온스협회354-F지구(인천지구)초대총재,
인천지역 호남향우회 회장, 대한민국참전경찰유공자회 고문, 대한경우회회장, 서울특별시행정자문위원회 부회장, 대통령국정자문위원회위원등 요직을 두루 역임하면서 국가와 사회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선생의 위대한
발자취와 업적이 어찌 이것뿐 이리요. 그 대강(大綱)을 기록한다.

선생은 슬하 오남이녀의 자녀를 두어 자손이 크게 번연하고 영달하였다.

사람의 수복은 인력으로 구함이 아니요
하늘이 스스로 줌이라 했거늘 추옹에게는 수복 외에 구국의 대임(大任)을
하나 더 주었으니 나라가 위급할 때 살신성인으로 구국했고
사회가 어지러울 때 치안확립에 유공했다.
수양원 차리시고 전쟁고아 거두시어
주경야사(晝警夜師) 일인이역 꿈나무를 기르셨다.
인천과 김제 벌에 충렬학원 크게 열어
교육입국 흥국부민 건학이념 펼치시니 홍익인간(弘益人間) 국조(國祖)
큰 뜻 공께서 이어 폈네.
숭조목종 모선육영 종친운동 선도하니
구월산 맑은 청풍 팔황(八荒)에 향그럽고
벽성산 밝은 일월 높은 빗돌 비추네.

                                           2008년 11월 0일

글 시인 도산 류영렬 짓고

경재 정명영 쓰다

추포류충렬선생송덕비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 도시학박사 장명수 세우다

                     ...................................................................

  주;        송덕비는 전북김제시 공덕면공덕리에 세웠다.    편집실

* 편집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3-26 21:55) * 편집인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11-03-26 22:41)

 
       

Next   추포 류충렬성생 輓詩 편집인
Prev   능암 류재풍 善書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