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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의병장백천류함선생창의비 비문(義兵將百泉柳涵先生倡義碑文)


 

                 의병장백천류함창의비명병서

                       <義兵將百泉柳涵先生倡義碑銘倂序>

 

의향(義鄕)호남(湖南)은 자고로 충신열사와 명공석학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화순(和順)에는 병자호란(丙子胡亂)시 사직의 보전이 어려울적에 붓을 던지고 초야에서 분연히 일어나 의여(義旅)를 모아 남한산성까지 진군했던 의병장이 있으니 백천류함선생(百泉 柳涵先生)이다.

공의 휘는 항(涵)이니 자는 자정(子淨)으로 호는 백천(百泉)이다 성은 류씨로 관은 문화이니 시조는 고려개국공신 대승공(大丞公) 휘 차달(車達)이시며 파조(派祖) 검한성공(檢漢城公) 휘 원현(元顯)의 후손이다.

고는 덕용(德容)이니 호는 열역재(悦易齋)인데 효로 정려를 받은 분이요 비는 안동금씨로 현감 이(洢)의 따님이다,

공은 一五七六년선조(宣祖) 丙子 正月三日 출생하니 천성이 엄중하고 동정은 절도있으며 희노(喜怒)를 나타내지 않았다. 부모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평소 임란시 백형류홍(柳泓)이 순절함을 슬퍼하고 형의 충절을 흠모 공의 長劍을 어루만지며 무예를 닦았다. 과거공부를 힘쓰지 않고 성리학에 전심하여 이지봉수광(李芝峯晬光)과 정우복경세(鄭愚伏經世)와 허하곡봉(許荷谷葑)으로 더불어 도의로 교우하여 이기문답과 사서설(四書說)이 전한다.

병자호란 (一六三六年 十二月 ~一六三七年 一月)은, 청나라오랑캐군사가 영역을 침범 일으킨 전쟁이다. 전쟁이 발발한지 수일에 한성이 함락되고 천보(天步)가 어려울새 지유(地維)도 쇠하였다. 국방이 혼란하고 국정이 혼미한 상황 속에 어가는 남한산성으로 몽진했고 사직의 안위가 경각지간일 때 공께서는 충분의격(忠憤義激)하여 족종손 자의 즙(諮議 楫)과 참봉 조수성(曺守誠)과 감역 조황(曺熀)과 처사 최봉해(崔鳴海) 등 본 고을의 제현들과 더불어 창의를 도모하여 의병청을 설립하고 여러 고을에 격문을 돌리니 일순간에 의병이 수천인이요, 량곡이 수백석에 이르렀다. 급모한 의려들로 대오 편성한 의병은 의병도대장에 조수성을 추대하고 백천 류함등 십여명을 부장(副將)에 임명. 진용을 편성하고 축단지월(築壇持鉞)의 예를 갖추어 북향사배하고⌜황천이 위에 있어 일월이 밝게 비추고, 신명이 조감하도다. 무릇 우리 동맹 근왕군(勤王軍)은 사력을 다해 싸우되 부탕도화(赴湯蹈火)할지라도 유공무퇴(唯攻無退)라, 만일 월맹(越盟)하는 자가 있으면 하늘이 벌 할 것이요 백성이 참할 것이다⌟ 회맹록에 혈서할새 산천이 숙연하고 군위가 충천이요.출정에 정기폐공(旌旗蔽空)에 고각동지(鼓角動地)로다.

전세가 급박함에 대오를 이끌고 급히 오백리길 청주에 다다르니 의병장 이흥발(李興浡)이 적정을 탐지하다가 포위되어 위경에 처했을 때 공이 병사들과 분력하여 적괴구급(賊魁九級)을 목 베고 병기를 뺏으니 적이 퇴각하였다. 제장졸이 기뻐 서로 축하하니 공왈 출사(出師) 二十여일에 적수구획이 국익에 무슨 도움이되리요 하고 재차 병졸을 독려 진군중 남한산성 오십 리쯤 이르렀을 때 강화(媾和)의 소식을 접했다.

아! 슬프다. 북로마제(北虜馬蹄)가 해동에 준동하고 十萬 호기(胡旗)가 한양의 천일(天日)을 가리도다. 임란종료 사십년에 병자호란 웬 말인가. 조청강화조약은 굴욕적 항복문서이다. 애석하도다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례여! 청사에 얼룩진 오욕의 흔적 삼정도한비(三田渡汗碑)를 어떻게 설한(雪恨)하리요

무력으로서 북쪽오랑캐를 몰아내고 사직을 보위하려 창의했는데 아! 애달프다. 때를 얻지 못했도다. 군사를 해체하고 귀향할 제 장졸도 통곡하고 산천도 함께 슬퍼했다. 이때 장부의 심회가 어떠했을까 울다 지쳐 신명(身命)도 쇠했다네.이때 실정이 호남 창의록과 예조기문에 기록되어 있다.

화순동면 서성리 서암산下 늙은 정자 환산정(環山亭)은 선생께서 만년의 우국의 한을 삭히던 고반(古槃)의 정각이다. 때로 소요하고 음영으로 자오하며 풍천(風泉)의 사(思)를 부치니 글에

⌜ 뜰아래 송국(松菊) 가꾸며 도잠(陶潛)의 학행을 배우도다. 초계(初計)를 이루지 못하고 산수 간에 늦은 정을 부쳐 세월은 잊고 살지만 심중일월(心中日月)은 주상(主上)의 곁에 있어 황명(皇明)을 보호하도다. 세한(歲寒)후의 지조를 그 누가 알아주리. 늙은이는 세월과 산천을 더불어 한을 삭힌다.⌟늙은 정각 한 귀퉁이에 공의 원운(原韻) 한수가 전하여 엄상열일(嚴霜烈日)의 대절정신(大節貞心0과 추성장기(推誠壯氣)는 만고에 귀감이요 구구의 회한은 천년의 한으로 오늘도 후학의 심금을 울린다.

정자 남쪽 십리쯤에 언동사(彦洞祠)가 전하니 이는 향유(鄕儒)가 공의 문과 충을 숭앙하여 사당을 세운 갱장(羹墻)의 집이라 조두(俎豆)가 해를 잇고 향화가 대를 이었음인 져 .

그뿐인가 또 아름다운일은 선고 열역재 덕용은 지효로 효자정려(孝子旌閭)를 명받은 분이요 형 이의재 홍(履義齋泓)은 임진왜란 때 평양에서 순절하여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으로 철권(鐵券)에 책록된 분이며 백천공은 병란에 창의하고 계매(季妹)는 해주최서생(海州崔瑞生)의 부인으로 순종하여 열녀정문(烈女旌門)을 받은 분이니 충효의열(忠孝義烈)의 사덕(四德)이 一문에 현요함이라.

一六六一年辛丑正月18일 86세의 하수(遐壽)를 누리고 졸하니 배위는 창령조씨(昌寧曺氏)로 오남삼녀를 양육하였다.

선행을 상줌은 천만인에 권선(勸善)하는 것이요 국가의 혁혁한 공로가 있는 자를 정종(鼎鐘)에 새김은 후세에 귀감을 삼고 저 함이라. 국가안위가 풍전등화일 제 백천공의 창의는 호국진명이어늘 단심정충을 벌석각명하여 영세현창하여야 할 일인데 이제까지 일이 늦었음은 후학의 송구지사라.[의병장백천류함선생창의비] 건립추진을 발기하니 일군 청금(靑衿)이 흔연동참하였다.

오호라! 왜란과 호란의 큰 외침을 거듭 당하니 국운의 불행만을 탓 할 손가.

자강불식과 유비무환이 진정 한 나라의 독립과 평화를 보장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절감하고 위대한 호국정신을 천추에 기리고 자 빗돌을 높이세우고 명을붙인다

명왈

임란칠년 전쟁에 왜적올 섬멸 동해밖으로 물리쳤고/국운이 회태했으나 전화는 평정하지 못했는데

壬亂七年兮 殲倭逐瀛 國運回泰兮 戰禍未平

겨우 사십년을 지나 되놈깃발이 창공을 덮었네 /노제 준동하여 수일에 서울에 닥쳐왔다僅過四十兮 蔽空靑旌 虜蹄蠢動兮 數日逼京

주상은 남한산성에 몽진하고 / 사직의 안위는 풍전등화 같네.

主上蒙塵兮 南漢孤城 社稷安危兮 風前燈明

충분의격하여 붓을 던지니 정충은 열일이었다네 / 슬프다.초지를 어기고 귀원하여 만정을 삭히셨다.

義激投筆兮 烈日忠貞 嗚呼違計兮 歸園晩情

일제히 일어난 창의는 호국의 일성이라 / 의여를 편성하고 단을 쌓고 회맹했다.

齊發倡義兮 扶社一聲 義旅編成兮 築壇會盟

자강을 쉬지 않아야 부국강병 이루나니 / 유비무환만이 기리 국영을 보전한다네.

自强不息兮 富國强兵 有備無患兮 永保國榮

                                        서기 이천십일년 구월

                                   방손 원임 성균관전학 도산 류영렬 경찬

                                                             서예가 00 000 근서

                                     문화류씨검한성공파백천공종친회 후원

                                   백천류함선생창의비건립추진위원회 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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義兵將百泉柳涵先生倡義碑銘倂序원문

 

義鄕 湖南은 자고로 忠臣烈士와 名公碩學이 많이 배출된 곳이다.和順에는 丙子胡亂시 社稷의 保全이 어려울적에 붓을 던지고 초야에서 奮然히 일어나 義旅를 모아 남한산성까지 진군했던 義兵將이 있으니 百泉 柳涵先生이다.

공의 諱는 涵이니 字는 子淨으로 호는 百泉이다 성은 柳氏로 관은 文化이니 시조는 고려개국공신 大丞公 휘 車達이시며 派祖 檢漢城公 휘 元顯의 후손이다.

考는 德容이니 號는 悦易齋인데 孝로 旌閭를 받은 분이요 妣는 安東金氏로 縣監 洢의 따님이다,

公은 一五七六年宣祖 丙子 正月三日 출생하니 天性이 嚴重하고 動靜은 節度있으며 喜怒를 나타내지 않았다. 부모를 섬김에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평소 壬亂時 伯兄柳泓이 殉節함을 슬퍼하고 형의 충절을 흠모 공의 長劍을 어루만지며 武藝를 닦았다. 科擧工夫를 힘쓰지 않고 性理學에 專心하여 李芝峯晬光과 鄭愚伏經世와 許荷谷葑으로 더불어 도의로 交友하여 理氣問答과 四書說이 전한다.

丙子胡亂 (一六三六年 十二月 ~一六三七年 一月)은, 청나라오랑캐군사가 영역을 침범 일으킨 전쟁이다. 전쟁이 발발한지 수일에 한성이 함락되고 天步가 어려울새 地維도 쇠하였다. 국방이 혼란하고 국정이 혼미한 상황 속에 御駕는 南漢山城으로 蒙塵했고 社稷의 안위가 頃刻之間일 때 공께서는 忠憤義激하여 族從孫 諮議 楫과 叅奉 曺守誠과 監役 曺熀과 處士 崔鳴海 등 本 고을의 諸賢들과 더불어 倡義를 도모하여 義兵廳을 설립하고 여러 고을에 檄文을 돌리니 一旬間에 義兵이 數千人이요, 糧穀이 數百石에 이르렀다. 급모한 義旅들로 대오 편성한 의병은 義兵都大將에 曺守誠을 推戴하고 百泉 柳涵등 십 여명을 副將에 任命. 陣容을 편성하고 築壇持鉞의 예를 갖추어 北向四拜하고⌜皇天이 위에 있어 日月이 밝게 비추고, 神明이 조감하도다. 무릇 우리 同盟 勤王軍은 死力을 다해 싸우되 赴湯蹈火할지라도 唯攻無退라, 만일 越盟하는 者가 있으면 하늘이 罰 할 것이요 백성이 斬할 것이다⌟ 會盟錄에 血書할새 山川이 肅然하고 軍威가 衝天이요.出征에 旌旗蔽空에 鼓角動地로다.

戰勢가 급박함에 대오를 이끌고 급히 오백리길 清州에 다다르니 義兵將 李興浡이 賊情을 探知하다가 包圍되어 危境에 처했을 때 公이 兵士들과 奮力하여 賊魁九級을 목 베고 兵器를 뺏으니 적이 退却하였다. 諸將卒이 기뻐 서로 축하하니 公曰 出師 二十餘日에 賊首九獲이 國益에 무슨 도움이되리요 하고 재차 兵卒을 독려 進軍중 남한산성 오십 리쯤 이르렀을 때 媾和의 소식을 접했다.

아! 슬프다. 北虜馬蹄가 海東에 蠢動하고 十萬靑旗가 漢陽의 天日을 가리도다. 임란종료 사십년에 병자호란 웬 말인가. 朝淸강화조약은 굴욕적 항복문서이다. 哀惜하도다 三拜九叩頭의 항복례여! 청사에 얼룩진 오욕의 흔적 三田渡汗碑를 어떻게 雪恨하리요

무력으로서 북쪽오랑캐를 몰아내고 사직을 보위하려 창의했는데 아! 애달프다. 때를 얻지 못했도다. 군사를 해체하고 귀향할 제 장졸도 통곡하고 산천도 함께 슬퍼했다. 이때 장부의 心懷가 어떠했을까 울다 지쳐 신명(身命)도 쇠했다네.이때 실정이 호남 창의록과 예조기문에 기록되어 있다.

화순동면 瑞城里 瑞巖山下 늙은 亭子 環山亭은 선생께서 만년의 憂國의 恨을 삭히던 古槃의 정각이다. 때로 逍遥하고 吟咏으로 自娛하며 風泉의 思를 부치니 글에

⌜ 뜰아래 松菊 가꾸며 陶潛의 學行을 배우도다. 初計를 이루지 못하고 산수 간에 늦은 정을 부쳐 세월은 잊고 살지만 心中日月은 主上의 곁에 있어 皇明을 保하도다. 歲寒후의 지조를 그 누가 알아주리. 늙은이는 세월과 산천을 더불어 한을 삭힌다.⌟늙은 정각 한 귀퉁이에 공의 原韻 한수가 전하여 嚴霜烈日의 大節貞心과 推誠壯氣는 만고에 龜鑑이요 句句의 懷恨은 천년의 한으로 오늘도 後學의 心琴을 울린다.

정자 남쪽 십리쯤에 彦洞祠가 전하니 이는 鄕儒가 公의 文과 忠을 崇仰하여 사당을 세운 羹墻의 집이라 俎豆가 해를 잇고 香火가 대를 이었음인 져 .

그뿐인가 또 아름다운일은 선고 悅易齋 德容은 지효로 孝子旌閭를 命받은 분이요 형 履義齋 泓은 임진왜란 때 평양에서 殉節하여 宣武原從功臣으로 鐵券에 策錄된 분이며 백천공은 병란에 창의하고 季妹는 海州崔瑞生의 부인으로 順從하여 烈女旌門을 받은 분이니 忠孝義烈의 四德이 一門에 炫燿함이라.

一六六一年辛丑正月18일 86세의 遐壽를 누리고 卒하니 배위는 昌寧曺氏로 五男三女를 養育하였다.

善行을 상줌은 천만인에 勸善하는 것이요 국가의 혁혁한 공로가 있는 자를 鼎鐘에 새김은 후세에 龜鑑을 삼고 저 함이라. 국가안위가 風前燈火일 제 百泉公의 倡義는 護國盡命이어늘 丹心貞忠을 伐石刻銘하여 永世懸彰하여야 할 일인데 이제까지 일이 늦었음은 後學의 悚懼之事라.[의병장백천류함선생창의비] 건립추진을 발기하니 一郡靑衿이 欣然同參하였다.

오호라! 왜란과 호란의 큰 外侵을 거듭 당하니 국운의 불행만을 탓 할 손가.

自强不息과 有備無患이 진정 한 나라의 독립과 平和를 보장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切感하고 위대한 護國精神을 千秋에 기리고 자 빗돌을 높이세우고 銘을붙인다

銘曰

壬亂七年兮 殲倭逐瀛 國運回泰兮 戰禍未平

僅過四十兮 蔽空靑旌 虜蹄蠢動兮 數日逼京

主上蒙塵兮 南漢孤城 社稷安危兮 風前燈明

義激投筆兮 烈日忠貞 嗚呼違計兮 歸園晩情

齊發倡義兮 扶社一聲 義旅編成兮 築壇會盟

自强不息兮 富國强兵 有備無患兮 永保國榮

 

西紀 二千十一年 九月 0

傍孫 原任 成均館典學 道山 柳暎烈 敬撰

書藝家 00 000 謹書

文化柳氏檢漢城公派百泉公宗親會 後援

百泉柳涵先生倡義碑建立推進委員會 謹竪

             


 
       

360  환산정중건상랑문 (環山亭上梁文)     편집인 2012/12/23  [525]  
359  병조참의 (류효진)묘갈명(延安都護府使柳孝眞墓碣銘)     편집인 2012/12/21  [624]  
358  문화류씨황산세천기     편집인 2012/12/19  [616]  
357  문화류씨망덕세천기 (文化柳氏望德世阡記)     편집인 2012/12/18  [510]  
356  증병조참판 이의재 류홍선생 기적비     편집인 2012/12/18  [523]  
 의병장백천류함선생창의비 비문(義兵將百泉柳涵先生倡義碑文)     편집인 2012/12/18  [687]  
354  문화류씨유래비(대전안영공원) (文化柳氏由來碑(大田安永公園) ) 362     편집인 2012/11/30  [596]  
353  선세약사(한국성씨총감) (先世略事(韓國姓氏總鑑)) 361     편집인 2012/11/30  [695]  
352  항일독립투사류지명약사 (抗日獨立鬪士(柳志明)略事) 360     편집인 2012/11/30  [486]  
351  항일독립투사(류동열)약사 (抗日獨立鬪士柳東說)略事) 359     편집인 2012/11/30  [526]  
350  항일독립투사류상렬약사 (抗日獨立鬪士(柳相烈)略事) 358     편집인 2012/11/30  [458]  
349  전라우수사공(인환)약사 (全羅右水使公(寅煥)略事) 357     편집인 2012/11/30  [568]  
348  전라병사공(인협)약사 (全羅兵使公(寅協)略事) 356     편집인 2012/11/30  [489]  
347  무산공(인휘)묘표 (茂山公(寅徽)墓表) 355     편집인 2012/11/30  [561]  
346  승지공(인철)행장 (承旨公(寅哲)行狀) 354     편집인 2012/11/30  [590]  
345  마전공(봉명)약사 (麻田公(鳳鳴)略事) 353     편집인 2012/11/30  [621]  
344  삼수공(이주)묘표 (三水公(爾주)墓表) 352     편집인 2012/11/30  [586]  
343  석전공(건영)묘갈명 (石田公(健永)墓碣銘) 351     편집인 2012/11/30  [549]  
342  통상공(기상)약사 (統相公(基常)略事) 350     편집인 2012/11/30  [494]  
341  용서공(기일)묘표 (龍西公(基一)墓表) 349     편집인 2012/11/30  [5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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