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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환산정중건상랑문 (環山亭上梁文)

 


                            환산정중건상량문

 

                                                 <  環山亭重建上樑文>

 

호남의 승지 화순서암산아래 늙은 정자는 대명처서 류함(大明處士 柳涵)이 고반(考槃)을 즐기던 곳이다. 산을 두르고 물이 에워싸 바람 맑고 달이 밝아 명경지수의 수려한 곳이다 숲속에서 솟아나오는 백 줄기 샘이 졸졸 흘러 모인 물이 호수를 이루었다. 정변에 백길 노송은 세한에도 꿋꿋하고 고된 풍상에 구불구불 누운 가지에는 밤마다 달이 머물고 학의 울음과 맑은 바람소리는 백장의 시흥을 꼬득인다. 늦가을 황국은 찬이슬 머금었고 달 아래 서리 엉기어도 삼추의 향이 그윽하니 도연명과 굴원이 즐기던 시구를 노래 부르게 한다. 당시 심은 국화는 연연이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노인이 가꾼 소나무는 연륜을 더해도 더욱 푸르네.

술병을 들고 마실 자와 읊을 자를 부르니 고인의 원운 시를 읊조린다. 춘송과 하현을 즐기는 자 승경을 대하고 향기를 탐하니 뻑뻑이 고인의 정취를 알겠다.

백천부군은 나의 十三代조이신데 병자호란 시 창의를 한 선비이다. 忠孝의 자질로써 경제의 뜻을 보듬었으며 인의로서 성정을 기르고 풍아에 붙여 청읜(泉思)의 의(義)를 간직한 유학자(儒學者)이시다

丁丙虜亂은 유사이래 환란 중 가장 치욕적인 대란이었다. 오랑캐군사가 역역을 침범한지 수일에 한성이 함락되고 천보(天步)가 어려울새 지유(地維)도 쇠하였다. 길이 희미하여 향배를 하기 어려운 급박한 상황 속에 어가가 몽진했고 신하는 진수의 음식을 전폐하고 나라를 걱정했다네. 사직의 안위가 경각지간일세 공께서는 충분의격하여 붓을 던지고 책상을 물리치고 일어나 본 고을의 제현과 족손 백석즙(白石 楫)과 더불어 의려(義旅)를 모아 사직을 도울 것을 협모하고 장정을 모으니 그 수효가 수 백인이라. 대오를 편성하고 병술을 연마하여 울며 혈서를 쓰고 급히 오백리길 청주에 다다르니 남한산성이 멀지않은 지점이다.

슬프다. 청조(朝淸)강화조약이 체결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 들었다. 이 조약은 굴욕적항복문서이다 애달프기 그지없도다. 무력을 써서 북로(北虜)를 몰아내려 했는데 때를 얻지 못했도다. 군사를 해체하고 귀향할제 장졸도통곡하고 산천도 함께 슬퍼했다. 이때 장부의 심회가 어떠했을까 울다 지쳐 심명(身命)도 쇠했다네. 이 실적이 호남 창의록과 예조기문에 기록되어 있다

정자 남쪽 십리쯤에 언동사가 전하니 이는 향유(鄕儒)가 공의 文과 忠을 숭앙하여 사당을 세운 갱장(羹墻)의 집이라 조두(俎豆)가 해를 잇고 향화가 대를 이었음인져 . 그뿐인가 선고와 백형을 함께 배향했으니 선고는 열역재 덕용(德容)이신데 지극한 효성으로 정려(旌閭)를 명받은 분이요 형 이의재 泓은 임진왜란 때 평양에서 순절하여 선무원종공신으로 철권에 책록된 분이며 계매는 해주최씨에 시집갔는데 부군이 순절함에 따라 순종하여 열여 정문을 받은 분이니

충효의열의 사덕이 양대에 걸쳐 현요하였다. 사당과 유택은 남쪽 십여리 밖 구수동유좌에 있다.

슬프다 조용히 생각하니 이정자는 공이 환산으로 돌아와 풀을 엮어 정자를 꾸리었던 세월 오랜 옛터이다. 선조가 아름답게 은둔했던 한일한 곳이 없어질까 우려하여 1896년 건양병신에 여러 一家가 협모하여 중건한 것인데, 이로부터 37년이 지난 후 1933년에 다시 보수하였다

세월이 흐르고 물정이 바뀌어 77년이 지난 이제 주초(柱礎)가 기울고 헐었으며 도리와 석가래 가 썩고 이지러졌는가하면 지붕과 대들보가 좀이 먹어 파괴되어 경광이 퇴락하여 유지하기 난망이라. 지나는 자 근심이 깊고 예손들이 진구(震懼)가 싸였다. 사실이 궁궐에 들리고 소식이 군내에 퍼졌다. 군수가 정황을 접하고 교지를 받들고 공론을 좇아 이에 탄심을 발하니 숭선과 경덕(景德)의 마음이라. 또한 이는 정부가 펴는 문화유적보존정책의 하나인 져.

기쁘다 군수께서 특별한 생각으로 덕을 베푸심에 재물을 자뢰해주고 일을 감독하였다 이에 종원들도 재원을 모아 협력하였다 명장(名匠)이 시공함에 온 군민이 힘을 함께하여 중건하게 되니 동량이 더욱 위엄있고 담장이 정숙하여 경관이 일신하니 제비가 기뻐 지저귀고 의관들이 송사를 읊는구나. 이 같은 좋은날에 어찌 칭송이 없으리요. 이에 기도하는 짧은 시를 지어 상량하는 큰일에 돕고자 한다.

어영차 들보를 동쪽으로 던지니 서암산 물색에 삼광이 함께 머무니 공이 남긴 원운(原韻) 명구에 지취를 머금었다. 마음속 품은 일월은 궁궐 안에 붉고나

어영차 들보를 서쪽으로 던지니 오랑캐 물리치고 사직을 바로 세우려 조야가 함께 했는데 문득 들린 부끄러운 조약 천추에 한 이로다. 군사 풀고 통곡할 제 산천도 숙연했네.
어영차 들보를 남쪽으로 던지니 언동사 조두(俎豆)가 천재를 함께 하니 문과 충을 경앙하여 청금이 제사했네. 호수에 비친 외로운 정자 푸른 물에 젖는구려.

어영차 들보를 북쪽으로 던지니 부상(扶桑)의 일월이 무극(無極)을 지어내니 운을 맞은 황궁(皇宮)이 건양(建陽)을 선포했고 광무(光武)의 홍은(鴻恩)이 일국을 평안하게 했네.
어영차 들보를 위쪽으로 던진다. 하늘을 쳐다보니 끝없는 허공에 천체는 궤를 따름인져 우리의 유도는 모두 수사(洙泗)에 근원 했음이니. 학문은 율리(栗里)에서 전래하여 선인들이 노래했네.어영차 들보를 아래로 던진다. 굽어보니 춘광이 사야에 화창한데 뿌리깊은 늙은 버들 다시 가지를 치는데. 승광을 즐기는 놀이꾼들 자주 말을 매는구나.

엎드려 원하노니 상량한 후에 속진을 멀리하고 항상 청한을 있게하여 풍성(風聲)을 더욱 떨치게하고 현송(絃誦)이 함께 일어나 정령(精靈)이 척강(陟降)하며 선비들 유학하고 성교(聖敎)가 부식하여 유풍이 크게 일게 하소서

                                서기 二千十年 경인 중양절

                  방 십삼대손 성균관전의 도산 류영렬 근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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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環山亭重建上樑文

 

述夫 湖南勝地和順瑞巖山下有古亭者而大明處士諱柳涵考槃之所也環山圍水而淸風明月明鏡止水之秀麗處也穿林百泉潺湲會水成湖焉亭邊百丈孤松凌歲寒輪囷偃枝留夜月鶴唳瑟聲惹百韻而晩節黃菊含寒露月下凝霜三秋香陶愛屈好千句頌當時種菊連年看花也翁親栽松增歲壯翠矣提壺招飮詠之客春誦夏絃者對景探香來而應識故人之趣矣百泉府君我十三代祖丙子胡亂時倡義之士也以忠孝姿抱經濟志以仁義養性情寓風泉之思儒矣而賡酬雅韻與李芝峰鄭愚伏麗澤相資爲道義之交而曺九峯崔忍齋園林密邇是切偲之友丙丁虜亂者有史外亂中最痴大亂矣虜騎侵域數日漢城陷落天步艱難地維己盡迷路難向也急迫情況君父車駕播遷而臣子熊魚取舍社稷安危懸於頃刻之間焉公忠憤義激投筆退床與本縣諸賢及族孫白石楫協謨則募義兵招諸壯之士數百人而編伍練兵而泣血書心急到五百里淸州而不遠南漢山城嗟乎傳聞旣成講和條約哉歟此者屈辱之降書也恨嘆無地用武逐北不得時解師歸鄕將卒痛哭山川咸怨丈夫傷心其如何哉慟哭己盡身命衰弊此實蹟載湖南倡義錄及禮曹文記亭南十里許傳于彦洞祠則而此以鄕儒慕公之忠義學德崇仰之立祠羹墻之宇也而俎豆繼歲香芬載世也不啻同享配先考伯兄也而先考悅易齋德容以至孝命旌閭者也兄履義齋泓壬亂殉節宣武原從功臣錄鐵券者也季妹適海州崔氏夫君殉節仍殉從賜烈女旌門也而忠孝義烈四德兩代炫燿之門矣妥靈之所及幽宅指南十餘里外九水洞酉坐原焉嗚呼竊念此榭公歸環山結草構屋而歲久遺墟哉先祖之嘉遯逸處湮沒憂慮一八九六建陽丙申諸宗協謀而重建也自是星霜屢變亭頹地荒矣而經過三十七年之後一九三三年諸宗協謨再保修也星移物換己過七十七年柱礎傾毁楣椽腐朽蓋樑蠹壞景光頹落維持難望過者深憂裔孫震懼積矣事聞九重消息播郡接情郡守奉旨從公而仍以發殫心焉此心在崇義景德而政施文化遺跡保存之策耳憙!當地郡守特慮施德資財董督宗員鳩合名匠施工謀同一邑以至重建而棟樑益嚴垣墻整肅景光一新燕賀之喜衣冠咸頌此以吉辰何無稱頌耶玆陳善禱之短辭用贊偉抛之擧兒郞偉抛樑東.瑞巖物色三光同原韻珠聯含志趣心中日月九重紅兒郞偉抛樑西斥虜扶社朝野齊輒聞恥約千秋恨.罷師痛哭山川低兒郞偉抛樑南彦祠俎豆千載咸景仰文忠靑衿祭潛影孤亭碧水涵兒郞偉抛樑北扶桑日月肇無極回運皇宮建陽布光武鴻恩平一國兒郞偉抛樑上仰觀無際軌天象吾道總是原泗洙學來栗里先人唱兒郞偉抛樑下俯察春光和四野根深古柳又生枝探勝遊人頻繫馬伏願上樑之後遠外俗塵常有淸閑風聲益振絃誦咸興貞靈陟降衿紳遊學潛扶聖敎大振儒風.

                                            西紀 二千十年 庚寅 重陽節

                         傍十三代孫 成均館典儀 道山 柳暎烈 謹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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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료제공 ; 검한성공파 백천공종친회  류정훈  //  편집.류도산

 

 


 
       

 환산정중건상랑문 (環山亭上梁文)     편집인 2012/12/23  [584]  
359  병조참의 (류효진)묘갈명(延安都護府使柳孝眞墓碣銘)     편집인 2012/12/21  [689]  
358  문화류씨황산세천기     편집인 2012/12/19  [682]  
357  문화류씨망덕세천기 (文化柳氏望德世阡記)     편집인 2012/12/18  [560]  
356  증병조참판 이의재 류홍선생 기적비     편집인 2012/12/18  [575]  
355  의병장백천류함선생창의비 비문(義兵將百泉柳涵先生倡義碑文)     편집인 2012/12/18  [748]  
354  문화류씨유래비(대전안영공원) (文化柳氏由來碑(大田安永公園) ) 362     편집인 2012/11/30  [651]  
353  선세약사(한국성씨총감) (先世略事(韓國姓氏總鑑)) 361     편집인 2012/11/30  [766]  
352  항일독립투사류지명약사 (抗日獨立鬪士(柳志明)略事) 360     편집인 2012/11/30  [524]  
351  항일독립투사(류동열)약사 (抗日獨立鬪士柳東說)略事) 359     편집인 2012/11/30  [574]  
350  항일독립투사류상렬약사 (抗日獨立鬪士(柳相烈)略事) 358     편집인 2012/11/30  [509]  
349  전라우수사공(인환)약사 (全羅右水使公(寅煥)略事) 357     편집인 2012/11/30  [611]  
348  전라병사공(인협)약사 (全羅兵使公(寅協)略事) 356     편집인 2012/11/30  [535]  
347  무산공(인휘)묘표 (茂山公(寅徽)墓表) 355     편집인 2012/11/30  [609]  
346  승지공(인철)행장 (承旨公(寅哲)行狀) 354     편집인 2012/11/30  [652]  
345  마전공(봉명)약사 (麻田公(鳳鳴)略事) 353     편집인 2012/11/30  [676]  
344  삼수공(이주)묘표 (三水公(爾주)墓表) 352     편집인 2012/11/30  [639]  
343  석전공(건영)묘갈명 (石田公(健永)墓碣銘) 351     편집인 2012/11/30  [600]  
342  통상공(기상)약사 (統相公(基常)略事) 350     편집인 2012/11/30  [543]  
341  용서공(기일)묘표 (龍西公(基一)墓表) 349     편집인 2012/11/30  [6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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