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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수초당공(현)묘갈명 (遂初堂公(俔)墓碣銘) 308

수초당공(현)묘갈명

遂初堂公(俔)墓碣銘

 

  어느날 류경중여선보(柳慶重汝善甫)가 그 선조 판관공(判官公)의 행장(行狀)을 지참하고 와서 나더러 묘비문(墓碑文)을 지어 달라 하는 바,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나에게 기어코 온 것은 나의 왕고(王考) 문충공(文忠公)이 일찍 그의 선조 석헌(石軒) 선생의 시장문(諡狀文)을 지은 때문이다. 내 비록 글을 못하나 의리에 가히 사양치 못하겠기로 그 행장을 살펴 쓰노라.   공의 휘는 현(俔)이요 자는 형보(馨甫)요, 호는 수초당(遂初堂)이다. 문화인(文化人)이니 계통은 고려(高麗) 때 대승(大丞) 휘 차달(車達)에게서 나와 몇 대를 전하여 정당문학문간공(政堂文學文簡公) 휘 공권(公權)과 좌복사(左僕射) 한림(翰林) 휘 택(澤)과 수문전태학사(修文殿太學士) 문정공(文正公) 휘 경(璥)과 도첨의사사(都僉議司事) 정신공(貞愼公) 휘 승(陞)과 중문지후사(中門祗候使) 휘 인수(仁修)가 계시었다. 우리 조선조(朝鮮朝)에 와서 휘 유(濡)가 계셨으니 나주목사(羅州牧使)요, 삼대를 전하여 휘 인흡(仁洽)이 있으니 생원(生員)인데 단종(端宗)이 손위(遜位)하실 때 (876) 호남(湖南)으로 피하여 벼슬하지 않았고, 이 분의 아들 휘 문표(文豹)는 훈도(訓導)로 증리조판서(贈吏曹判書)요, 이 분의 아들 휘 옥(沃)은 곧 석헌(石軒) 선생이니 홍문관전한(弘文館典翰)으로 김충암(金冲菴) 정(淨)과 박눌재(朴訥齋) 상(祥)으로 더불어 상소로서 단경왕후(端敬王后)의 복위를 청하니 세상에서 삼인대(三印臺) 삼선생(三先生)이라 일컬었는데 그 후로 조정에서 은전(恩典)을 자주 내려 이조참판(吏曹參判)에 증직되고 또 이조판서(吏曹判書) 겸(兼) 양관대제학(兩館大提學)에 가증(加贈)되어 정간(靖簡)으로 시호가 내리니 공의 오세조(五世祖)이다. 휘 강수(强首)는 사직(司直)이요, 휘 홍원(洪源)은 종사랑(從仕郞)인데 일재(一齋) 이(李) 항(恒) 선생을 스승으로 섬기고, 휘 명(溟)은 군자감봉사(軍資監奉事)요, 휘 동기(東紀)는 전옥서봉사(典獄署奉事)를 지냈으니 선고(先考) 이상 사세(四世)이며, 외조(外祖)는 전주이씨(全州李氏) 휘 숙(潚)이다.   공이 어려서부터 침착 중후하고 탁월하여 독서를 좋아하고 유희를 싫어하니 사람들이 원대한 인물로 기대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당하여 봉사공(奉事公)께서 관직에 얽메어 서울에 계심으로 모친을 모시어 산으로 피하도록 하고 집에 있는 장정(壯丁) 수십인을 거느리고 올라가면서 천여군병(千餘軍兵)을 모아 대오(隊伍)를 지어 청주(淸州)에 도착하였더니 문득 하성(下城)의 소식을 듣고 그 군병(軍兵)을 해산하고 길이 탄식하여 이르기를.   등불 아래 글 읽다가 탄식 하노니, 천지간에 한 장부(丈夫)가 없어서.   삼백년 지켜 온 국가의 사직을, 어찌하여 오랑캐에게 넘겨 주었나? 는 시구(詩句)가 있었으며, 그 사적(事蹟)이 창의록(倡義錄)에 실려 있다.   효종(孝宗) 1653 계사(癸巳)에 문과(文科)에 급제하여 홍문관정자(弘文館正字)와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과 예조(禮曹)와 병조(兵曹)의 좌랑(佐郞)을 역임하고, 1661 신축(辛丑)에 전주판관(全州判官)으로 재임 중에 성리대전(性理大全)과 주자대전(朱子大全)과 의례(儀禮)와 강목(綱目)과 근사록(近思錄) 등의 서적(書籍)을 간행하여 집에 전하는 보물을 삼았다. 1664 갑진(甲辰)에 삼도해운판관(三道海運判官)을 겸하다가 곧 내직으로 들어와 예조(禮曹)와 병조(兵曹)의 정랑(正郞)을 지내고 1665 을사(乙巳)에 외직으로 경성도호부판관(鏡城都護府判官)이 되었더니 권신(權臣)의 미움을 받아 문득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금서(琴書)로서 스스로 즐기었다. 만력(萬曆)(명(明) 신종(神宗), 광해군(光海君) 1614 갑인(甲寅) 9월1일에 태어나 1672 임자(壬子) 8월30일에 졸하니 창평현(昌平縣) 유곡(維谷) 해좌(亥坐)의 언덕에 안장되었다.   배위(配位)는 숙인(淑人) 반남박씨(潘南朴氏)니 선공감첨정(繕工監僉正) 휘 동위(東緯)의 따님이요, 야천(冶川) 문강공(文康公) 휘 소(紹)의 증손인데 1612 임자(壬子) 생으로 1678 무오(戊午)에 졸하니 공의 묘소에 합부하였다. (877)   일남은 세경(世慶)이니 선교랑(宣敎郞)이요, 일녀서(一女壻)는 김도광(金道光)이다. 선교랑(宣敎郞)이 오남을 두어 장남 춘원(春遠)은 통덕랑(通德郞)이요, 차남 춘수(春壽)는 통덕랑(通德郞)이요, 다음은 춘장(春長)과 춘영(春永)과 춘만(春萬)이다. 성화(聖和)는 춘원(春遠)의 소생이요, 혜화(惠和)는 춘수(春壽)의 소생이요, 치화(致和)와 정화(鼎和)와 제화(齊和)와 익화(益和)는 춘장(春長)의 소생이요, 춘영(春永)과 춘만(春萬)은 무후(無後)하였다.   아아! 공이 병자호란(丙子胡亂)을 당하여 부친 봉사공(奉事公)께서 관직에 있었던 때문에 어버이 뜻에 순종하여 그 돌아오심을 간(諫)하지 않고 홀로 모친을 모시고 피난하였으니 이는 효도요, 의병을 일으켜 국란에 다다랐으니 이는 충성이요, 경전(經傳)을 강마(講磨)하여 더욱 선비의 자품(資稟)을 길렀으니 이는 문(文)이요, 분격하여 자신을 돌아보지 않고 적개의 뜻을 능히 떨쳤으니 이는 무(武)라, 한결 효하면서 그 임금을 잊지 않고 한결 충하면서 그 어버이를 능히 잊지 않으며, 문하면서도 그 무를 소홀히 아니하고 무하면서도 그 문을 버리지 않아 일인(一人)의 몸으로 네 가지 아름다움을 구비하였으니 이 또한 어렵지 않은 일인가? 석헌(石軒)의 후손으로 어찌 그렇지 않으리요? 이 가히 명(銘)할만 하도다. 명을 지어 이르노니.   거룩하다 수초(遂初)여! 그 할아버지 석헌을 능히 계승했도다.   충도 있고 효도 있으며, 아름다운 문과 아름다운 무를 갖췄도다.   후손이 이토록 번창하였으니, 이는 하늘이 많은 복을 내리심이로다.   저 비석을 우러러 보니 남토(南土)에 욱뚝 높다랗도다.

가선대부행동지돈녕원사영가김용진찬

 

遂初堂柳公俔墓碣銘

 

日柳慶重汝善甫抱其先祖判官公行狀謁余爲牲石之文不之他而必於我者以余王考文忠公嘗撰其先石軒先生諡狀之文故也余雖不文義不可辭按其狀公諱俔字馨甫號曰遂初文化人系出於高麗大丞諱車達屢傳有政堂文學諱公權諡文簡左僕射翰林諱澤修文殿太學士諱璥諡文正都僉議司事諱陞諡貞愼中門袛候使諱仁修入我朝有諱濡牧使三傳有諱仁洽生員 端廟遜位時避于湖南不仕生諱文豹訓導 贈吏判生諱沃卽石軒先生弘文館典翰與金冲菴淨朴訥齋祥陳疏請 端 敬王后復位世所稱三印臺三先生也厥後連有曠典 贈吏叅加 贈吏判兼兩館大提學諡靖簡寔 (875) 公五世祖也諱强首司直諱洪源師事李先生恒諱溟軍資監奉事諱東紀典獄署奉事考以上四世也外祖全州李氏諱潚公自幼凝重卓犖喜讀書不遊戱人皆以遠大期焉逮丙子胡亂奉事公縻官居京乃將母入山率家丁十數聚數千群爲兵急到淸州聞下城乃罷其兵長歎曰挑燈掇讀便長吁天地間無一丈夫三百年來中國土如何付與老單于之詩事載倡義錄 孝廟癸巳登文科弘文正字歷司憲府監察禮兵曹佐郞辛丑通判全州別刊性理大全朱子大全儀禮綱目近思錄等書以爲傳家之寶焉甲辰兼三道海運判官未幾內移禮兵兩曹正郞乙巳出爲鏡城都護判官見忤權貴遞還山琴書自娛生萬曆甲寅九月一日卒壬子八月三十日葬于昌平縣之維谷負亥原配淑人潘南朴氏繕工監僉正諱東緯女冶川文康公諱紹曾孫壬子生戊午卒祔公墓擧一男世慶宣敎郞金道光一女婿也宣敎郞有五男長春遠通德郞次春壽通德郞次春長次春永次春萬聖和春遠出惠和春壽出致和鼎和齊和益和春長出春永春萬無嗣嗚呼公於丙子之役奉事公在職故爲順親志不諫其歸獨奉母避地者孝也倡義起兵以赴國亂忠也講磨經傳益臻儒雅之資文也奮不顧身克有敵愾之志武也不一於孝而遺其君不一於忠而遺其親文而不踈其武武而不忘其文其於一人之身而四者之美備不亦難乎以石軒之孫惡乎不然此可以銘銘曰

偉歟遂初石軒其祖有忠有孝允文允武後昆繁昌天降多祜瞻彼牲石屹然南土

嘉善大夫行同知敦寧院事永嘉金容鎭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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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편집 및 정리 : 류영렬, 2012)


 
       

319  사월당공(시번)묘갈명 (沙月堂公(時藩)墓碣銘) 327     편집인 2012/11/29  [1184]  
318  수촌공(발)약사 (秀村公(發)略事) 326     편집인 2012/11/29  [901]  
317  농수공(정서)묘표 (聾수公(廷瑞)墓表) 325     편집인 2012/11/29  [873]  
316  학유공(추성)약사 (學諭公(樞星)略事) 324     편집인 2012/11/29  [918]  
315  예조참판공(중무)약사 (禮曹參判公(重茂)略事) 323     편집인 2012/11/29  [1071]  
314  통상공(중기)약사 (統相公(重起)略事) 322     편집인 2012/11/29  [836]  
313  귀정공(사온)묘갈명 (龜亭公(思溫)墓碣銘) 321     편집인 2012/11/29  [1003]  
312  자인공(덕중)약사 (慈仁公(德中)略事) 320     편집인 2012/11/29  [823]  
311  호조정랑공(영)약사 (戶曹正郞公(泳)略事) 319     편집인 2012/11/29  [1073]  
310  박사공(성홍)약사 (博士公(聖洪)略事) 318     편집인 2012/11/29  [908]  
309  한림공(수함)약사 (翰林公(壽咸)略事) 317     편집인 2012/11/29  [856]  
308  롱암공(수원)사적 (聾菴公(壽垣)事蹟) 316     편집인 2012/11/29  [943]  
307  사헌부집의공(필원)약사 (司憲府執義公(弼垣)略事) 315     편집인 2012/11/29  [1020]  
306  황간공(여림)약사 (黃澗公(汝霖)略事) 314     편집인 2012/11/29  [986]  
305  병조좌랑공(일상)행장 (兵曹佐郞公(一相)行狀) 313     편집인 2012/11/29  [958]  
304  사제수사공(징구)사제문 (賜祭水使公(徵龜)賜祭文) 312     편집인 2012/11/29  [825]  
303  염재공(영)묘표 (濂齋公(渶)墓表) 311     편집인 2012/11/29  [1020]  
302  경원부사증병조참판류공(경천)사장 (慶源府使贈兵曹叅判柳公(擎天)事狀) 310     편집인 2012/11/29  [1016]  
301  매돈공(광선)묘지명 (梅墩公(廣善)墓誌銘) 309     편집인 2012/11/29  [886]  
 수초당공(현)묘갈명 (遂初堂公(俔)墓碣銘) 308     편집인 2012/11/2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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