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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매돈공(광선)묘지명 (梅墩公(廣善)墓誌銘) 309

매돈공(광선)묘지명

梅墩公(廣善)墓誌銘

 

  나 이(李) 옥(沃)의 이종형(姨從兄) 매돈거사(梅墩居士) 류군(柳君)이 내가 북쪽에 찬축(竄逐)되던 날에 졸(卒)하여 영위(靈位)에 나아가 곡을 하였는데, 내가 남쪽으로 옮기기에 이르러 그의 아들 류응구(柳應龜)가 탈복(脫服)하고 와서 묘지명을 청하였다. 내가 울면서 말하기를, "네가 온 것은 마땅하다. 내가 우리 형에 대해 기술하는 것이야 괜찮겠지만 죄를 지은 신하의 몸으로 그 글이 어찌 미덥겠는가?" 하니, 응구(應龜)가 고집하면서 끝내 떠나지 않으므로 마침내 사양할 수가 없었다. 아! 내가 어떻게 차마 우리 형의 명을 짓겠는가만 마침내 눈물을 거두고 다음과 같이 서술한다.   군(君)의 휘(諱)는 광선(廣善)인데 자(字)는 여거(汝居)인데, 그 사는 집에다 매화나무를 심고 매돈(梅墩)이라 자호(自號)하였다. 군은 의표가 단정하고 미목(眉目)이 수려하였으며 말을 할 줄 알면서부터 시를 외우고 이를 갈 나이가 채 못되어서 글을 지었다. 13세에 집안이 참화(慘禍)를 당했는데, 군이 말하기를, "화를 당한 집안의 아들이 글을 하지 못하면 어떻게 사람 축에 끼이겠는가?" 하고는 두어 권의 책을 (879) 몇 년 동안에 걸쳐 엎드려 읽으니 문장이 이에 통창(通暢)하게 되었다. 이에 노비들을 줄이고 천하 고금의 서적을 사들여 한 방에다 갖추어 놓고 거처하였다. 뱃속에 들어 갈 밥이 없고 몸에 걸칠 옷이 없어도 한결같이 걱정하지 않고 오직 주야로 외고 열람하여 철철 넘치고 축적되어 끝없이 풍부하였으므로, 발하여 문장을 지으면 그 취재가 넓고 명지(命旨)가 깊었으며, 법도에 맞추어보지 않아도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 참으로 옛 궤범(軌範)에 부합되었다.   군은 곤궁하게 지내는 사람으로 무릇 즐거움, 슬픔, 근심, 기쁨 등의 감회가 일어나면 모두 시에다 뜻을 부쳤으므로 그 시가 수천백편에 이르도록 많았는데 진신(搢紳) · 선생(先生) · 문인(文人) · 재사(才士)들이 모두 그 시를 외우며 사모하여 금옥(金玉)처럼 귀하게 여겼으니, 군 같은 이야말로 문사에 매우 완숙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세상에 알아주는 것은 군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내가 바야흐로 어려서 글을 배울 때 공은 이미 장성하였었다. 내가 문필을 일삼아 고인을 본받으려고 했으나 되지 않았는데 군은 나를 동지라고 부르면서 지도해 준 바가 매우 많았다. 동산(東山)의 풍악(楓岳)과 서새(西塞)의 대해(大海)를 일찍이 군과 함께 유람했는데, 군의 시는 경치를 묘사하는데 문견(聞見)이 층층이 나오는 것 같아 거의 미칠 수 없을 지경이었다. 군이 나의 글을 평하여 말하기를, "강(江)은 민산(岷山) · 아산(峨山)에서 발원하고 들판은 청주(靑州) · 서주(徐州)에서 접한다. "하였는데, 이는 군이 나를 장려하는 뜻이어서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지기(知己)를 만난 감회야 어찌 적다고 하겠는가?   군은 외씨(外氏)보다 조금 나이가 많았는데, 그 어머니를 효성스럽게 모셨다. 어머니가 일찍이 안질(眼疾)을 앓았는데, 군은 부채를 잡고 파리를 쫓으면서 삼복 더위에도 잠시도 쉬거나 게으르지 않았다. 그 후 어머니께서 돌아가시자 어머니를 섬기던 효성으로 외왕모(外王母)를 섬겨 사랑과 정성을 다하였다. 상에는 슬픔을, 제사에는 예를 다해 행하였으므로 모두 볼만하였다. 군은 화(禍)를 당한 집안의 아들이라 하여 자봉(自奉)을 매우 낮게 해서 상인들과 대등한 예를 하려고 하지 않았으니, 그 뜻을 슬퍼할 만하다. 무릇 사람들이 군을 보면 모두 애중하였으므로 군이 죽었다는 말을 듣고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비록 그 문장이 족히 세상을 울릴 만 하였다고 하지만 군처럼 조심하고 행실을 잘하지 않았다면 어찌 이처럼 인심을 얻고 신명(身名)을 보전할 수 있었겠는가?   군은 1616 광해군병진(光海君丙辰) 10월 13일에 출생하여 1684 숙종갑자(肅宗甲子) 10월 29일에 졸 (880) 하였다. 군은 중년 이래로 병이 들자 오래 살지 못할까 염려해서 구롱(丘壟) 아래에다 집을 짓고 살았는데 마침내 거기에서 졸하여 그 선산 서쪽 기슭 유좌(酉坐)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문성류씨(文城柳氏)는 대승(大丞) 류차달(柳車達)이 시조이고, 판윤(判尹) 류자신(柳自新), 참판(參判) 류희량(柳希亮), 진사(進士) 류두립(柳斗立)이 군의 증조 · 조 · 부이다. 군의 어머니 삭녕최씨(朔寧崔氏)는 바로 나의 어머니 정부인(貞夫人)의 여동생인데 일찍부터 정숙한 행실과 은혜로운 덕이 있었다. 바야흐로 집안이 변을 당했을 때, 친당(親黨)이 더욱 잘 따랐다. 류씨(柳氏)는 광해군(光海君)의 초친(椒親)이어서 광해군(光海君)이 폐위(廢位)됨에 따라 군의 집안이 화를 당했는데, 이 사실은 국승(國乘)에 실려 있다.   군은 진사(進士) 정모(鄭某)의 딸에게 장가들었는데, 군자의 배필로 덕을 어기지 않았다. 아들 셋을 두으니 영구(永龜) · 응구(應龜) · 정구(貞龜)이다. 군은 또 장가들기 전에 외부가 있어 거기서 아들 둘과 딸 여섯을 두었으니, 아들은 명구(明龜)와 익구(益龜)요, 사위는 방리성(方履成) · 안후달(安後達) · 안처항(安處恒) · 김문필(金文弼) · 이(李) 승(昇) · 박중흠(朴重欽)이다.

내외손(內外孫) 남녀가 또 30여 명이나 된다.   아! 예로부터 궁한 사람에게는 아름다운 명성을 주어 후세에 드리우게 하니 살아 있을 때는 그 몸이 곤궁을 겪었지만 죽어서는 오랫동안 명성이 전해지므로, 여탈(與奪)의 이치란 기이하다고 하겠다. 다음과 같이 명(銘)을 쓴다.   만 그루 소나무 산에 백 그루 매화 언덕이네.   그가 살아서는 집이요 죽어서는 무덤이네.   운명은 극에 이르렀지만 문장은 훌륭했고,   그 몸은 액운을 당했지만 이름은 아름다웠다네.

리조참판이옥찬

 

梅墩居士柳公廣善墓誌銘

 

沃姨從兄梅墩居士柳君卒於沃竄北之日沃爲位而哭及沃南遷其孤應龜旣免喪來請銘沃哭曰爾來宜也吾可以述吾兄然罪臣屏伏文何足信應龜執守終不去則亦不得終辭焉嗚呼吾何忍銘吾兄也遂收涙而敘曰君諱廣善字汝居其居樹梅號曰梅墩君儀度端重眉宇秀朗能言而誦詩未齔而屬文十三遭家慘禍君曰禍家子不文又何以齒人持數卷書伏讀之數年文乃大暢於是斥臧獲巿天下古今書蓄一室而居焉腹無飯體無衣一不爲憂惟晝夜誦覽泛濫停畜浩無涯畔發而爲文章則其取材也博命旨也深不䂓䂓於繩墨而自成一家允合前軌君固窮人凡可娛可悲可憂可喜興懐感發者 (878) 莫不寓之於詩其詩多至数千百篇薦紳先生文人才士皆誦而慕之貴若金玉若君者可謂大翫於詞而世之知非君願也余方稚學君旣長事鉛槧效古人不得君謂余同志指南甚多東山楓岳西塞大海嘗與君遊君詩對景模象聞見層出殆不可及君評吾文曰江發岷峨野接青徐君意在獎進未敢當也然知己之感又曷可少也君少長於外氏事母氏孝母氏嘗病眼君操箑辟蠅貫三夏無一息怠母氏圽以事母事外王母愛慤俱至喪以哀祭以禮其行皆可觀也君以禍家子自牧甚卑不欲與常人抗禮其志可悲凡人見君無不愛重聞君之死無不悲悼雖其文章有足驚世非君小心約行何得服人心保身名如此君生以丙辰十月十三日其卒以甲子十月二十九日君自中年祟病恐不久世築室丘壠下竟終於此葬其先兆西麓酉坐之原文城之柳系大丞車達判尹自新叅判希亮進士斗立爲君曾祖祖父妣朔寧崔氏卽余先妣貞夫人娣也夙有貞行惠德方其遭變親黨益服柳以光海椒親隨光海廢君家被禍事在國乘君娶進士鄭某女配君子無違德擧三男早卒曰永龜應龜貞龜君未娶有外婦生二男六女明龜益龜女方履成安後達安處恒金文弼李昇朴重欽內外孫男女且三十餘人噫自古之窮人也畀以美名可垂於後生而阨其躬圽而壽其傳其與奪之理奇矣銘曰

萬松之山百梅之塢其生也屋其死也隧極之於命昌之於辭其躬也阨其名也媺

吏曹參判李沃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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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편집 및 정리 : 류영렬, 2012)


 
       

319  사월당공(시번)묘갈명 (沙月堂公(時藩)墓碣銘) 327     편집인 2012/11/29  [1165]  
318  수촌공(발)약사 (秀村公(發)略事) 326     편집인 2012/11/29  [880]  
317  농수공(정서)묘표 (聾수公(廷瑞)墓表) 325     편집인 2012/11/29  [855]  
316  학유공(추성)약사 (學諭公(樞星)略事) 324     편집인 2012/11/29  [892]  
315  예조참판공(중무)약사 (禮曹參判公(重茂)略事) 323     편집인 2012/11/29  [1058]  
314  통상공(중기)약사 (統相公(重起)略事) 322     편집인 2012/11/29  [822]  
313  귀정공(사온)묘갈명 (龜亭公(思溫)墓碣銘) 321     편집인 2012/11/29  [983]  
312  자인공(덕중)약사 (慈仁公(德中)略事) 320     편집인 2012/11/29  [797]  
311  호조정랑공(영)약사 (戶曹正郞公(泳)略事) 319     편집인 2012/11/29  [1040]  
310  박사공(성홍)약사 (博士公(聖洪)略事) 318     편집인 2012/11/29  [887]  
309  한림공(수함)약사 (翰林公(壽咸)略事) 317     편집인 2012/11/29  [832]  
308  롱암공(수원)사적 (聾菴公(壽垣)事蹟) 316     편집인 2012/11/29  [921]  
307  사헌부집의공(필원)약사 (司憲府執義公(弼垣)略事) 315     편집인 2012/11/29  [997]  
306  황간공(여림)약사 (黃澗公(汝霖)略事) 314     편집인 2012/11/29  [966]  
305  병조좌랑공(일상)행장 (兵曹佐郞公(一相)行狀) 313     편집인 2012/11/29  [939]  
304  사제수사공(징구)사제문 (賜祭水使公(徵龜)賜祭文) 312     편집인 2012/11/29  [804]  
303  염재공(영)묘표 (濂齋公(渶)墓表) 311     편집인 2012/11/29  [1004]  
302  경원부사증병조참판류공(경천)사장 (慶源府使贈兵曹叅判柳公(擎天)事狀) 310     편집인 2012/11/29  [975]  
 매돈공(광선)묘지명 (梅墩公(廣善)墓誌銘) 309     편집인 2012/11/29  [863]  
300  수초당공(현)묘갈명 (遂初堂公(俔)墓碣銘) 308     편집인 2012/11/29  [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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