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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수신재공(사신)칠세연행 (守愼齋公(士信)七世聯行) 274


수신재공(사신)칠세연행

守愼齋公(士信)七世聯行

 

  공의 휘는 사신(士信)이요, 자는 여실(汝實)이요, 호는 수신재(守愼齋)이며 음직(蔭職)으로 제용감직장(濟用監直長)이니 정숙공(貞肅公) 정현(廷顯)의 팔세손(八世孫)이라 벼슬이 서로 이어 서울에서 대대로 살더니 공이 비로소 평산(平山) 진보동(眞寶洞)으로 옮기어 거주하였다. 성품이 본래 근신돈후(謹愼敦厚)하고 간략하고 말이 적어 일찌기 네가지 교훈을 써서 벽에 걸고 자손을 가르쳐 길이 가법을 삼았다. (민단운(閔丹雲) 병승(丙承)이 지은 묘갈명(墓碣銘)에 나타나다)   아들 협(俠)의 자는 이직(而直)이요, 호는 승훈당(承訓堂)이니 어려서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께 양육을 받았다. 자람에 어머니가 벽 위에 네가지 가르침을 가리키며 보이니 공이 대답하되 『이 어떠한 말입니까? 하니, 어머니가 말하되 『이것은 너의 아버지의 유훈이다. 첫째는 충성과 효도요, 둘째는 제사를 받들고 손님을 대접함이요, 세째는 말 삼가하기를 병과 같이 함이요, 넷째는 일가의 화목함과 이웃의 화순함이라.』 하니 어머니의 말이 끝나지 아니하여 눈물을 흘리며 대답하되 『부모를 사랑하고 어른을 공경함이 우리 집의 가훈이라.』 하고 드디어 옷깃을 여미고 외우고 어머니의 가르침을 어기지 아니하니 마을 사람들이 칭송(稱頌)하다(박수홍(朴守弘)이 행장(行狀)을 지었다.)   손자 복삼(復三)의 자는 중삼(仲三)이요, 호는 집겸암(執謙菴)이라, 매양 네가지 가르침을 생각하고 여섯가지 행실로 몸을 닦어 집안을 다스리는 법을 삼아 평생의 행사에 말마다 반드시 나라에 충성하고 부모께 효도함을 반드시 말하고, 아침 저녁으로 사당에 배알하고 매달 초하루엔 산소를 성소하니 향인이 그 동구(洞口)를 가르쳐 효문이라 하고, 그 바위를 가르쳐 효암(孝岩)이라 하니, 공이 그 포명을 스스로 혐의하여 양쪽에 돌을 세워 문암(門岩)으로 일컬었다. (종인(宗人) 진모(震模)가 행장(行狀)을 짓다.)   증손 만령(萬齡)의 자는 여형(汝亨)이요, 호는 수졸거사(守拙居士)이니 겸손하고 검소하여 삼가하고 졸열함을 굳게 지키고 충성과 효도를 항상 생각하여 가슴에 새기고 항상 입으로 외우며 언행이 일치하였다. 나이 겨우 열두살에 아버지의 등창을 입으로 빨고 중년에 또 어머니의 등창을 빨아냈다. 고을 사람들이 천거하고자 하거늘, 공이 자제를 명하여 말려 못하게 하였다. 매양 부모 제사를 당하면 삼일 전 부터 반드시 재계하고 목욕하며, 정성과 공경이 지극하여 친히 제수를 작만하고 의대를 풀지 않아 늙도록 쇠하지 아니하였다. (종인(宗人) 명승이 행장을 짓다.) (734)   현손 원(垣)의 자는 국서(國瑞)니 8세에 소학을 읽고 이미 뜻을 세워 다른 아이와 다름이 있고 9세에 어머님 병이 위독하거늘, 공이 향을 피우고 하늘에 빌어 자기가 대신 죽기를 원하고, 약관에 과거공부를 그만 두고 가훈(家訓)을 준수(遵守)하다. 천품이 질박(質朴)하고 학식이 높아 희노(喜怒)를 얼굴에 나타내지 아니하며, 이욕(利慾)을 몸에 미치지 아니하며, 부모의 병이 위독함에 손가락을 깨어 피를 먹이여 깨어나시게 하고, 돌아가심에 슬픔이 과도하여 몸이 말라 뼈만 남았으며, 산소가 십리(十里)나 되는 곳에 있으나 매우 춥고 몹시 더울 때라도 아침에 가고 저녁에 돌아오기를 산 부모 섬김과 같이 하고 상을 마친 뒤에 여름에는 풀을 베고 겨울에는 눈 쓰는 것을 몸소하니 사람들이 문암(門岩)을 가리켜 효암(孝岩)이라하고, 사림(士林)이 여러번 천거하여 지극한 행실이 순전함으로 동몽교관(童蒙敎官)을 제수하다.(진사(進士) 심래석(沈來錫)이 행장(行狀)을 짓다.)   오세손(五世孫) 운관(運觀)의 자는 춘실(春實)이니 나이 어려 살림을 맡아 과거공부를 폐하고 세업을 지켜 조상의 아름다운 사행을 능히 계승하고 큰 형으로 더부러 동거하며 우애는 군실의 일을 사모하고 참는 것은 장공예(張公藝)의 업을 본받아 행하며, 어머니 병에 관대를 벗지 않고, 삼상에 슬퍼하여 얼굴이 먹 같이 검고 피눈물을 흘리며 거의 생명을 잃기에 이르고, 십리가 되는 산소에 아버지 초상 때와 같이 날마다 성묘하여 큰 추위와 더위와 비가 오더라도 한번도 빼놓지 않으니 향인이 칭송하여 말하되 여러 대 효행을 이대로 민몰함이 옳치 못하다 하고 선비들이 영읍(營邑)에 여러번 글을 올리다.(진사(進士) 신(申) 희(憘)가 행장(行狀)을 짓다.)   9세손 희영(曦永)의 자는 인보(寅甫)요 호는 서파(西坡)이니 어려서부터 효도하여 부모의 뜻을 거스림이 없고 친상을 만남에 읍혈(泣血)로 3년을 지내면서 십리가 넘는 높은 재를 넘어 매일 새벽에 성묘(省墓)하되 비록 심한 한서(寒暑)와 풍우(風雨)라도 폐하지 아니하였다. 국치를 당한 후로 자정 자숙하여 두문불출하고 오직 후진을 가르치고 인도함을 자기의 임무로 삼아 부지런히하여 게을리하지 않으니 소문을 듣고 수학하는 자 더욱 문이 메여지다. 재질을 따라 가르치므로 성취한 이 많더니 공이 졸 함에 가마(加麻)한 분이 70여인이러라 (우치암(禹恥菴) 상호(相浩)가 행장(行狀)을 짓고, 승지(承旨) 심오정(沈梧庭) 주택(周澤)이 묘지(墓誌)를 짓고, 최이당(崔以堂) 종건(鍾健)이 갈명(碣銘)을 짓다.)

 

守愼齋公士信七世聯行

 

公諱士信字汝實號守愼齋蔭濟用監直長貞肅公廷顯八世孫簪纓相繼世居京城始卜居平山之眞寶洞性素謹厚簡重寡默嘗書四訓揭壁以敎子孫永爲家法詳見閔丹雲丙承所撰墓碣銘 子俠字而直號承訓堂幼失所怙受養於母夫人及長母指壁上四訓以示之公對曰是何言也母曰此汝大人遺訓也一曰忠孝二曰奉祀接賓三曰守口如瓶四曰親戚敦睦隣里和順言未已流涕而對曰愛親敬長是吾家訓遂歛衽而誦之勿違母敎鄕黨稱之朴守弘撰狀 孫復三字仲三號執謙菴每念四訓以六行爲修齊之範平生行事言必稱忠於國孝於家日夕拜謁祠堂月朔瞻掃墳山鄕人指其洞口曰孝門指其岩曰孝岩公自嫌其褒名兩邊立石曰門岩宗人震模撰狀 曾孫萬齡字汝亨號守拙居士謙約節儉固守謹拙常念忠孝銘諸懷中平日口誦言行一致年甫十二吮父背瘡中年又吮其母村人欲擧鄕薦而公命子弟挽止之每當親忌前期三日必齋沐誠敬備至親供祭需衣衽不解至老不衰宗人明昇撰狀 玄孫垣字國瑞八歲讀小學已有立志不群九歲母病危㞃公焚香禱天願以身代弱冠遂廢擧業克遵先訓天禀質朴文識高邁喜怒不形於色利慾不及於己親病危篤嚼指灌血至於回甦及喪哀毀過節柴鑠骨立墓在十里雖隆寒盛暑朝往暮來晨昏不廢一如生事服闋後伐草掃雪躬自爲之世稱門岩曰孝岩累登剡薦以至行純備 除童蒙敎官進士沈來錫撰狀 五世孫運觀字春實早年當室遂廢科業守成箕裘克趾先美與伯兄同居未嘗分友慕君實之事忍效公藝之業母病不脫冠帶而養三喪哀毀面墨泣血幾至滅性十里墳山哀省如先考之執喪祈寒暑雨殆無一日廢也鄕黨稱之曰累世孝行不可泯沒士林累呈營邑進士申憘撰狀 九世孫曦永字寅甫號西坡自幼而孝不忤親志丁憂泣血三年墓在十里許峻嶺上每日昩爽省掃雖風雨寒暑不廢焉自國耻後杜門靜坐訓迪後進爲己任孜孜不倦聞而來學者日益塡門因材誨諭多 (733) 有成就及卒而葬加麻者七十餘人禹相浩撰行狀沈周澤撰誌崔鍾健撰碣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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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문화류씨세보 무자보(2008년)]

(편집 및 정리 : 류영렬, 2012)


 
       

279  반계수록해제 (磻溪隨錄解題 ) 287     편집인 2012/11/28  [682]  
278  반계류공형원전 (磻溪柳公馨遠傳) 286     편집인 2012/11/28  [923]  
277  반계공(형원)행장 (磻溪公(馨遠)行狀) 285     편집인 2012/11/28  [1396]  
276  좌윤공(봉징)약사 (左尹公(鳳徵)略事) 284     편집인 2012/11/28  [845]  
275  갑산부사공(구징)약사 (甲山府使公(龜徵)略事) 283     편집인 2012/11/28  [977]  
274  적암공(상진)사적 (適菴公(尙軫)事蹟) 282     편집인 2012/11/28  [729]  
273  결청재공(담후)행장 (潔淸齋公(譚厚)行狀) 281     편집인 2012/11/28  [1455]  
272  황해도도사용당공(인량)묘표 (黃海道都事龍塘公(寅亮)墓表) 280     편집인 2012/11/28  [1032]  
271  대사간공(상재)묘표 (大司諫公(尙載)墓表) 279     편집인 2012/11/28  [1044]  
270  영의정충간공(상운)묘갈명 (領議政忠簡公(尙運)墓碣銘) 278     편집인 2012/11/28  [1240]  
269  백암공(인)약사 (白菴公(忍)略事) 277     편집인 2012/11/28  [959]  
268  치헌공(세훈)묘갈명 (恥軒公(世勛)墓碣銘) 276     편집인 2012/11/28  [1102]  
267  원주공(철)약사 (原州公(澈)略事) 275     편집인 2012/11/28  [987]  
 수신재공(사신)칠세연행 (守愼齋公(士信)七世聯行) 274     편집인 2012/11/28  [1158]  
265  진해공(지정)약사 (鎭海公(之禎)略事) 273     편집인 2012/11/28  [806]  
264  운강공(항)행장 (雲江公(沆)行狀) 272     편집인 2012/11/28  [847]  
263  반곡공(도)묘갈명 (盤谷公(棹)墓碣銘) 271     편집인 2012/11/28  [1027]  
262  백석공(즙)묘갈명 (白石公(楫)墓碣銘) 270     편집인 2012/11/28  [978]  
261  초료당공(덕용)묘갈명 (鷦鷯堂公(德龍)墓碣銘) 269     편집인 2012/11/28  [1032]  
260  칠송공(곤수)묘지 (七松公(鵾壽)墓誌) 268     편집인 2012/11/28  [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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