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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창원(柳 ? 源 )
 

류 창 원 柳  ?  源

 

<류창원 : 1857~1916 : 高宗朝 行誼 大丞公 27世 : 檢漢城公派>

 

자 내숙(乃叔). 호 초헌(蕉奸)

함안군수 효용(咸安郡守 孝庸)의 3자 참봉 인식(參奉 仁湜)의 11대손이요 석기(錫基)의 2자인데 중부 석두 (仲父 錫斗)후로 출계 하였다.

철종(哲宗) 8년 丁巳 8월 8일에 김제 황산(金堤 黃山)에서 태어났는데 천품이 영특하고 재주가 총명하여 나이 겨우 10여세에 글을 읽고 뜻을 알며 한번 보면 문득 외우니 동문의 학자들이 모두 미치지 못하였다.

장성하여 능히 독서에 전력하지 못했으니 이는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께서 연로하신 때문이었다. 항상 스스로 탄식하기를 『재력이 있는 자는 재주가 없어 능히 배우지 못하고, 재주가 있는 자는 재력이 없어 학문을 이루지 못하여 졸업한자가 적으니 이 모두 운명인가 ? 』하였다.

일찌기 부친을 여의고 모친을 봉양하되 효성을 다하여 감지(甘旨)의 공양을 항상 부족하게 여기고, 모친 상을 당하여 애통함을 다하고 초종(初終)의 절차를 한결 고례(古禮)에 쫒아 행하였다.

복제(服制)를 마치고 서울에 가 있다가 시사(時事)가 날로 그릇침을 보고 드디어 향리로 돌아와 자손을 가르치고 산업을 경영함으로 즐거움을 삼았다.

하루는 자손들을 불러 경계하기를 『옛적에 공자(孔子)의 제자 중유(仲由)는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께서 늙으심으로 백리길을 쌀을 짊어져다가 봉양을 하였는데 대부(大夫)가 된 뒤에 그 어버이가 계시지 않으므로 탄식하기를 전에는 어버이를 위해서 쌀을 짊어졌더니 이제는 만종(萬鐘)의 곡식을 저축하여 비록 어버이를 위하고자 할지라도 어찌 가히 행하겠는가? 하였다. 이제 나의 산업이 자못 요족하지만 옛날 가난하여 어버이를 봉양하던 일을 생각하면 능히 잘 하지 못한것이 유감스럽고 한스럽다. 너희들은 마음에 깊이 새겨 수신(修身)에 효제(孝悌)로써 근본을 삼고 치산(治産)에 근검(勤儉)으로 위주하여 고인(古人)의 주경야독 어초공친(晝耕夜讀 漁樵供親)의 일을 항상 생각할 것 같으면 가업이 장구(長久)하고 부모가 안락(安樂)하리라, 이와 같이 대대로 전하여 지켜나간 다면 혹 가업이 패할지라도 유감이 없을 것이다. 만약 교만하고 사치하여 스스로 안일(安逸)에 빠져 매일 같이 놀기만 하면 가산을 탕진하여 부모 처자로 하여금 헐벗고 굴주림을 면치 못하게 할것이니 그 불효됨이 이보다 더 하겠는가?』하시었다.

자손들이 이 교훈(敎訓)을 능히 쫓아 효우(孝友)와 근검(勤儉)으로 향리에 들리었다.

고종(高宗) 31년 甲午(1894)에 영릉참봉(英陵參奉)에 제수되었는데 이로부터 가업을 종사하지 않고 고을 노인들로 더불어 모임을 만들어 주식(酒食)을 갖추어 대접하며 달달이 서로 만나 놀았다.

어떤 사람이 혹 공에게 더욱 산업을 경영하여 자손을 위하는 계교를 삼으라고 권하면, 공께서 탄식하여 이르기를 『내 이제 늙었는데 다시 가산을 보살펴 밤낮으로 이익만 꾀하는 수전노(守錢奴)를 배우겠는가? 전답이 있으니 자손으로 하여금 근력(勤力)하여 가히 의식(衣食)을 제공토록 하고 있으니 이것으로 만족하다. 만약 다시 치산(治産)을 더할진데 교만하고 게으른 마음이 반드시 생기리라 그 교만하고 게으름을 끼칠것 같으면 자손들이 어찌 근검을 후세에 전하겠는가?』하니 사람들이 그 말에 감복하였다.

丙辰 10월 27일 향년 60세로 돌아가시니 묘소는 김제군 공덕면 마현(金堤郡 孔德面 馬峴) 서쪽 토치하 술좌(兎峙下 戌坐)에 모시었다.

공의 행장은 족손 성재 류희영(醒齋 柳熙永)이 지었다.

배위 남양홍씨(南繼洪氏)는 일찍 돌아가시고, 전주최씨(全州崔氏)는 봉문(奉文)의 따님으로 천성이 온순하여 일가간에 돈목하고 부덕(婦德)이 매우 출중하였는데 자녀가 없어 공의 삼종형 창원(三從見 昌源)의 3자 경근(慶根)을 맞아 계자하였다. 경근(慶根)이 4남 2녀를 두어, 그 자손이 김제군 공덕면 황산리(金堤郡 孔德面 黃山里) ․ 청하면 동지산리(靑蝦面 東之山里) ․ 죽산면 옥성리(竹山面 玉盛里)등지에 살고 있다.

※ 行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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