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홈 URL  http://blog.daum.net/ryujise/?t__nil_login=myblog
  제    목  안씨(安 氏 )
 

안 씨 安  氏

 

<안씨 : 1857~? : 高宗朝 烈行 大丞公 27世 : 檢漢城公派>

 

안씨(安氏)의 관향은 순흥(順興)으로 용문(龍文)의 따님인데 출가하여 함안군수 효용(咸安郡守 率庸)의 후손인 석곤(錫坤)의 장자 경원(景源)의 배위가 되었다.

철종(哲宗) 8년 丁巳생으로 천품이 정숙하여 행동과 언어가 스스로 규범(閨範)이 있고 방직(紡織)이며 제례(祭禮)의 범절등이 누구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고 능하였다.

장성하여 출가하자 어버이를 섬기듯 구고(舅姑)를 섬겨 정성(定省)과 감지(甘旨)의 절차에 지성을 다하고, 손님을 맞이하듯 부군을 받들어 시종 뜻을 어김이 없었다. 집안 형편이 곤궁함으로 낮에는 방아 품팔이, 밤에는 바느질 품을 팔아 그 수입으로 끼니를 이어가니 종당(宗黨)은 물론 향리(鄕里)에서 모두 칭찬하지 않음이 없었다.

고종(高宗) 25년 戊子(1888)에 부군이 우연히 병을 얻어 백약(百藥)이 무효하고 병세가 점점 위독하자 부인께서 목욕제계하고 하늘에 자신을 대신해 줄것을 간곡히 빌었으나 이듬해 2월 부군께서 돌아가심에 즉시 자결하고자 하였으나 구고(舅姑)가 계시고, 망부(亡夫)가 무후함을 두루 생각하고 억지로 일어나 상예 (喪禮)를 주선하였다.

동년 3월 시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또 7월에 시어머님께서 돌아가시니 연거퍼 삼상(三喪)을 만나 망극하기 이를데 없었으나 슬픔을 억제하고 장제(葬祭)에 그 예(禮)를 다하였다. 그리고 기신(忌辰)을 만나면 성의를 다하여 치제(致祭)함은 물론 애척(哀慽)함이 초종(곯終)때와 같았다.

공의 중제 상원(仲弟 相源)의 장자 동근(東根)을맞아 계자를 삼고 옳은 도리로 가르쳐 성취(成娶)시키고 마침내 문호(門戶)를 부지하였다.

전라북도(全羅北適) 유림(儒林)에서 천장(薦狀)을 올려 己未(1919)에 포창 완의문(衰彰 完議文)이 내리고, 지난 丙寅(1926)에 열녀각(烈女閣)을 세우고자 전장예원경(前掌禮院卽) 비롱 이재현(非聾 李載現)에게 비문을 받았으나 아직껏 비각(碑閣)은 세우지 못하였다.

자손은 김제군 공덕면 황산리(金堤郡 孔德面 黃山里)에 살고 있다.

※ 烈行碑文.

 

 


 
       

Next   류창원(柳 ? 源 ) 편집인
Prev   류동원(柳東源)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