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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주렬(柳柱烈)
 

류 주 열 柳 柱 烈

 

<류 주 열, 字 : 國 彦, 號 : 省 庵 1888~1954 : 孝行 左相公派 大丞公 32世>

 

 

서산 자미(西山 自湄)의 후예로 농포 희달(弄圃 希達)의 10대 손이요, 계산 인경(桂山 寅敬)의 2자인데 숙부 인복(寅福) 후로 출계 하였다.

광산군 본량면 동호리에서 태어났는데 천성이 순후하여 어려서부터 능히 어버이를 사랑할 줄 알더니 8세에 숙부(叔父)후로 출계하여 섬김에 생정(生庭)과 같이 지성을 다하였다.

취학(就學)함에 부형의 독촉을 번거롭게 하지 않고 글재주가 날로 진취하여 비록 노사숙유(老師宿儒)라도 공을 앞서지 못하였다.

1905년 일본과 을사보호조약(乙巳保護條約)이 체결되어 시사(時事)가 날로 그릇치고 인륜(人倫)이 날로 끊어지자, 세상에 나설 뜻을 끊고 오로지 자신을 위하는 학문에 전념하였다.

증자(曾予)의 일삼성『日三省』의 구절에 이르러 개연히 자신을 깨우치고, 존심양성(存心養性)으로 수신(修身)의 신조를 삼아 성암(省庵)이라  자호하였다.

생양정(生養庭)의 친상(親喪)에 모든 절차를 예제(禮制)에 쫓아 행하고, 매년 기일(忌日)을 당하여 여재(如在)의 성의를 다하니 향직에서 칭찬하여 마지 않았다.

시골에 자취를 감추어 사람의 알아줌을 구하지 않고 향리 후진들을 계몽하므로 여년을 즐기다가 향년 67세로 돌아가시니 대명동 임좌(大明洞 壬坐)에 안장되었다.

배위 김해김씨(金海金氏)는 봉민(鳳鍲)의 따님으로 1남을 두고, 나주라씨(羅州羅氏)는 근서(近瑞)의 따님으로 3녀를 두었으며 묘소는 합부하였다.

아들은 재옥(在沃)이요, 사위는 광산 김명수(光山 金明洙) ․ 파주 염석환(坡州 廉錫煥) ․ 나주 오은선(羅州 吳殷善)이다.

아들 재옥(在沃) 역시 가정교훈을 독실히 익혀 효성과 우애가 극진할 뿐 아니라 붕우(朋友)간에 신의가 있고 자손을 옳은 방도로 지도하며, 위선(爲先)에 지극하여 누대 선영(先塋)에 석의(石儀)를 갖추고 대동사(大東祠) 및 선세 재실(齋室) 건립에 거액(巨額)을 희사하였다.

재옥(在沃)의 배위는 함평이씨(咸平李氏)로 계희(啓禧)의 따님인데, 슬하에 2남 1녀를 두어 아들은 한석(漢錫)과 도현(道鉉)이요. 사위는 함양 박종운(咸陽 朴鍾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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