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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파주염씨(坡州廉氏)


파 주 염 씨 坡 州 廉 氏

<파 주 염 씨 : 柳 貞 烈, 配 位, 1907~1980, 孝烈婦, 忠景公派 : 大丞公 32世>

염씨(廉氏)의 관향은 파주(坡州)요, 후훈(厚薰)의 따님으로 순종(純宗) 원년(1907) 3월 15일에 출생하였다.

어려서부터 유순(柔順)하여 효우(孝友)의 명성이 일찍 드러났더니 12세에 출가하여 류정렬(柳貞烈)의 배위가 되었다.

류정렬은 옥천군수 수장(沃川郡守 壽長)의 후예로 훈련원판관 희철(訓鍊院判官 希哲)의 9대손이요, 효자 석우(孝子 錫雨)의 증손이요, 식영(植永)의 손이요, 인순(寅舜)의 2자이다.

부인께서 결혼 후 홀로 계신 시부(媤父)를 지성으로 섬기면서 가세가 심히 곤란함으로 손수 농사일 외에 바느질과 방아품팔이로 반찬을 얻고 여름에는 칡을 캐어 팔아 술과 고기등을 그침없이 봉양하는 한편 뜻을 순종하여 조금도 어김이 없었으며. 부군(夫君)을 공경히 받들고, 종당(宗黨)에 화목을 다하여 칭송이 자자하였다.

부군께서 일본(日本)으로 건너가 3년간 소식이 막히더니 마침내 첩(妾)을 얻어 함께 돌아와서는 부인을 도무지 돌아보지 않았다.

늙으신 시부께서 그 아들의 행동을 엄격히 꾸짖자 다시 첩을 데리고 집을 떠나버렸는데, 부인께서 무릎을 끓고 시부모에게 아뢰기를 『남자의 일시 행락(行樂)은 세상에 혹 있는 일이니 과히 근심치 마십시요』하고, 부군을 향하여 작별하면서 『편안히 잘 가소서』하고

조금도 과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이를 보는 이들이 모두 그 어려운 일이라 칭찬하고, 이에 따라 면(面)에서 포상(褒賞)한데 이어 유림(儒林)의 천거로 지난 1941년 정월에 경성(京城) 유회포창사(儒會褒彰社)로 부터 찬양문(讚揚文)이 내리었다.

1980년 12월2일 향년 74세로 별세 하니 옥천군 근복면 대정리 방아실 후록 선영에 안장되었다.

슬하에 겨우 따님 한분이 있어 선산 곽중환(善山 郭重煥)에게 출가시켰다. 부군의 형 성렬(成烈)의 2자 지선(志璇)이 양위 제사를 모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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