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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최씨(崔 氏 )
 

최 씨 崔  氏


<최씨 : 생졸 미상 : 哲宗朝 烈行 大丞公 26世 : 檢漢城公派>


최씨(崔氏)는 전주인(全州人)으로 광운(光雲)의 따님인데 함안군수 효용(咸安郡守 孝庸)의 11대손이요, 경유(經儒)의 아들인 석달(錫達)의 배위가 되다.

출가 전에 어진 규범이 있어 어버이를 섬김에 효성이 극진하더니 우귀(于歸)한 후로 구고(舅姑)를 효성으로 받들고 부군(夫君)을 공경으로 대하여 부도(婦道)를 다하였다.

나이 21세에 문득 부군이 돌아가셨는데 다만 1남 1녀의 어린아이가 있어 차마 따라 죽지 못하고 근검으로 치가(治家)하며 늙은 시부모를 정성껏 모시었다.

마침내 문호(門戶)를 세워 선사(先祀)를 받들고 백수(白首)토록 정절(貞節)을 지키다가 천수(天壽)를 마치니 향중의 유림들이 그 열행(烈行)을 아름다히 여겨 삼강록(三綱錄)에 사행을 실었다.

아들은 응원(應源)이요, 따님은 양주조병원(楊洲趙秉元)에게 출가하였다.

응원의 배위 경주김씨(慶州金氏)는 치황(致璜)의 따님인데 어려서부터 내행(內行)이 지극히 착하여 효녀로 이름이 났더니 류문(柳門)에 출가하여 시모(媤母)를 섬기고 부군(夫君)을 대함에 각기 그 도리를 다하였다. 부군이 병석에 누움에 밤으로는 하늘에 쾌유를 빌어 마지 않더니 위독함에 이르자 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 3일을 연명하고 마침내 돌아가심에 상장(喪葬)의 절차를 예법에 쫒고 조석의 곡전(哭奠)을 3년 동안 하루같이 행하였다.

부인의 사행(事行)이 삼강록 (三綱錄)에 실리었다.

자손이 김제군 공덕면 송산리(金堤郡 孔德面 松山里)에 세거하고 있다.

※ 追先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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