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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임씨(林氏)
 

임 씨 林  氏

 

<임씨 : 1761~1840 : 純祖朝 孝婦 大丞公 29世 : 忠景公派>

 

임씨(林氏)의 관향(貫鄕)은 당양(潭陽)이니, 탄(坦)의 증손이요, 석린(錫麟)의 손이요, 속(凍)의 따님이요, 춘천박흥서(春川朴興瑞)의 외손으로 영조(英祖) 37년 辛巳 2월 30일에 중화(中和)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 부터 효성과 우애가 독실하더니 동향(同鄕)에 세거하는 류문(柳門)으로 출가, 형진(亨震)의 배위가 되었다.

형진은 종부시소윤 한생(宗簿寺少尹 漢生)의 장손현감 선장(縣監 善長)의 12대손이요, 수가선 상필(壽嘉善 尙弼)의 증손이요, 성진(星軫)의 손이요, 정준(挺俊)의 아들이요, 김해김명규(金海金鳴奎)의 외손이다.

부인 임씨(林氏)께서 우귀(于歸)후로 홀로 계신 시아버님을 모심에 감지(甘旨)의 공양과 정성(定省)의 절차에 지성을 다하는 한편 기제(忌榮)와 절사(節祀)등 제반 범절에 총부(塚婦)의 소임을 능히 행하였다.

순조(純祖) 11년 幸未(1811)에 여역(橋疫)이 크게 번져 시부(媤父)께서 심히 않고 계심으로 부군과 함께 새벽에 일찍 일어나 손을 씩고 탕약(湯藥)을 다리며, 한편 목욕재계한 후 분향(焚香)하고 끊어앉아 자신을 대신해 주도록 신령(神靈)에게 빌고 갖은 정성을 다하였다. 그러나 회생할 가망이 없고 병세가 더욱 위중한지라, 임씨(林氏)가 손가락을 칼로 끊어 그 피를 입에 통함에 한참 후에 온기(溫氣)가돌아와 회생함을 얻었다. 그런데 갑자기 부군(夫君)이 병이 위독하여 가히 살릴 도리가 없거늘 또 왼손가락을 끊어 그 피로서 거의 끊어진 목숨을 회복시켰다.

이에 평안도(平安道)의 선비 이사백(李思栢) ․ 권 수(權 澾)등이 누차 영읍(營邑)에 천장(薦狀)을 올려 포상(褒賞)을 청하였으나 은전을 입지 못하였으니 애석한 일이다.

헌종(憲宗) 6년 庚子 9월 1일에 돌아가시니 향년 80세로 중화 당저산 술친(中和 唐底山 戌坐)에 안장되었다.

2남 4녀를 두어 아들은 원식(源埴)과 연식(演埴)이요, 사위는 인천채요심(仁川菉堯心) ․ 파평윤대권(竣平尹大權) ․ 파평윤창은(竣平尹昌殷) ․ 파평윤사안(坡平尹1讀)이다.

고종(高宗) 초엽에 손자들이 중화(中和)로부터 남하하여 무주(茂朱) ․ 홍천(洪川) ․ 대전(大田) 등지에 살고 있다.

※ 丙寅譜, 儒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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