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홈 URL  http://blog.daum.net/ryujise/?t__nil_login=myblog
  제    목  류수춘(柳 秀 春)
 

류 수 춘 柳  秀  春

 

<류수춘 : 1585~1669 : 仁祖朝 義士. 大丞公 21世 : 左相公派>

 

자 정원(挺元). 호 송재(松齋).

증영의정 사공(贈領議政 恩恭)의 장자 울산부사 위(蔚山府使 ?)의 현손이요, 정재 봉(定齋 菶)의 5자로 선조(宣祖) 18년 乙酉에 부여(扶餘)에서 태어나 일찍 모친을 여의었다.

어려서부터 천성이 총명하고 기품이 중후하여 희롱을 즐기지 않고 학문에 힘쓰더니 인조(仁祖) 2년 甲子(1624)에 생원시(生員試)에 급제하였다.

병자호란(丙子胡亂)에 공께서 화전(和戰)을 반대하는 상소(上疏)를 올렸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그들의 청을 쫓지 않아야만 천하 만고의 강상(綱常)이 전하의 몸에 부지할 것이요, 만약 그 청을 쫓을진대 천하 만고의 강상이 전하의 몸을 파괴할 것입니다. 전하 께서는 그를 부지하시렵니까? 그를 파괴하시렵니까?』 하였다. 그러나 마침내 화의(和議)가 성립됨에 문을 닫고 세상을 피하여 지내면서 솔을 심어 그 뜻을 부치니 대개 한 서울에도 뛰어난 송백(松柏)의 뜻을 취함이었다.

그 후 참봉(參奉)에 천거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현종(顯宗) 10년 己酉에 향년 85세로 돌아가시었다.

배위 연안이씨(延安李氏)는 증지평 보(贈持平 寶)의 따님으로 4남을 두었고 묘소는 부여 석성 탄동 유좌(扶餘 石城 炭洞 酉坐)에 공과 합부하였다.

장자 휘세(輝世)는 자 경보(景甫)요 호는 수졸당(守拙堂)인데 어려서부터 효성과 우애를 천성으로 타고나 장성함에 정훈(庭訓)을 독실히 익히고 여러 아우와 종형제(從兄,弟)로 더불어 부지런히 글을 읽어 쉬는 날이 없었고, 때때로 사계 김장생(沙溪 金長生)선생에게 취정(就正)하여 굳은 뜻을 스스로 지켜 마침내 석유(碩儒)가 되었으며, 후에 사복시정(司僕寺正)에 증직되었다.

2자 만세(曼世)는 중부 승춘(仲父 承春) 후로 출계 하였다.

3자 장세(長世)는 자 장경(長卿)인데 형을 따라 사계 김장생 선생의 문하에 취정하여 학문의 요체(要諦)를 들었다. 누차 학행으로 천거를 입었으나 관로에 뜻을 끊고 가림강(嘉林江)위에 초옥(草屋)을 짓고 거처하니 사람들이 가림처사(嘉林處士)라 일컬었다.

4자 희세(熙世)는 자 상경(商卿)인데 인조(仁祖) 원년 癸亥法으로 숙종(肅宗) 8년 壬戌에 졸하였다.

공의 행장은 전재 임헌회(全齋 任憲晦)가 짓고 묘갈명은 연재 송병선(淵齋 宋秉璿)이 지었다.

공의 후손은 대체로 부여읍 염창리(扶餘邑 鹽倉里)에 세거하고 있다.

※ 墓碣銘, 自慊 窩集.

 

 


 
       

Next   류곤수(柳 鵾 壽 ) 편집인
Prev   류승춘(柳 承 春 )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