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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학원(柳學源)
 

류 학 원 柳  學  源

 

<류학원 : 1775~1825 : 純祖朝 孝子 大丞公 28世 : 祗候使公派>

 

자 성습(聖習)

중랑장 중의(中郞將 仲宜)의 14대손이요, 선교랑 희문(宣敎郞 熙門)의 7대손이요, 사범(師範)의 2자로 영조(英祖) 51년 乙未 7월 20일 진천(鎭川)에서 태어났다.

천성이 효우(孝友)하여 어버이 곁에 있으면서 온후한 말씨와 유순한 낯빛으로 공대하고, 비록 어려운 일이라도 노고를 꺼리지 않고 오직 뜻을 받드는데 힘썼다. 일찍 부친의 병환에 밤낮으로 시탕(侍湯)하여 잠시도 떠나지 않고 혹 밤을 뜬 눈으로 지새어도 게으른 빛이 없었다. 때때로 하늘에 빌어 회생을 기도하였으나 급기야 돌아가심에 수음(水飮)을 전페하고 애통한 나머지 몸이 쇠약해지기에 이르렀으나 백형으로 더불어 날마다 성묘하되 풍우(鳳雨)에도 폐한 적이 없었다.

모친의 명으로 십리 밖에 이거하여 살았는데 날마다 와서 뵈옵고 여름 장마가 지고 겨울에 눈이 쌓일지라도 폐한 적이 없었으며 모친께서 천어(川魚)를 즐겼는데 아무리 귀한 때라도 반드시 구하여 반찬을 해드리니 이웃 마을에서 모두 효자라 일컫었다.

순조(純祖) 25년 乙酉 2월 8일 졸하니 향년 51세로 두성 한천록 경좌(豆城 漢川麓 庚坐)에 묻히셨다.

배위 경주김씨(慶州金氏)는 창수(昌壽)의 따님인데 2남 1녀를 두고 졸하니 두성 한천록(豆城 漢川麗) 건위(乾位)묘소 오른꼭 오좌(午坐)에 묻히셨다.

장남 흥룡(興龍)이 역시 효행이 뛰어나 고을에서 계세지행(繼世至行)이라 일컫었고, 차남은 흥민(興民)이며, 따님은 광주이단회(廣州李端會)에게 출가하였다.

연일정재경(延日鄧在榮)이 공의 묘지명을 짓고, 여러 고을 선비들이 공의 효행을 누차 천거,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되었다.

후손이 진천군 진천읍 문봉리(鎭川郡 鎭川邑 文鳳里)에 세거하고 있다.

※ 墓誌銘, 丙寅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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