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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심원(柳心源)
 

류 심 원 柳  心  源

 

<류심원 : 1760~1815 : 純祖朝 孝行 大丞公 28世 : 祗候使公派>

 

자 치중(?中)

중랑장 중의(中郞將 仲宜)의 14대손이요, 선교랑 희문(害敎郎 熙門)의 7대손이요, 사도(師道)의 계자(系子)이다. 생부(生父)는 사주(師周)이다.

영조(英禮) 36년 庚辰 12월 21일 진천(鎭川)에서 태어나 3세에 모친을 여의고 조모(祖母) 슬하에 성장하여 종숙 사도(從叔 師道) 후로 출계하였다. 비록 양정(養庭)에서 살았지만 조석으로 생정(生庭)을 찾아 정성(定省)의 예를 다하고, 일찍 형님께서 병환으로 누우심에 곁에서 부축하고 약이(藥餌)를 맛보아 시중을 들기 4년을 한결같이 하였다.

생정 외간(生庭 外艱)을 당하여 슬픈 곡읍(哭泣)이 이웃 마을을 감동시켰고, 조모께서 70세가 넘어 병환으로 백약(百藥)이 무효함에 지성으로 하늘에 빌고, 명의(名醫)에게 널리 물어 간호(看護)하였는데 의원(醫員)이 말하기를 『만약 뱀을 삼킨 메기를 얻어 그 창자를 빼내고 다려 먹으면 가히 신통한 효험이 있으리라』하였다. 그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면서 하늘에 빈 후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잡으니 과연 한 자가 넘는 메기였다. 그 배를 가르니 과연 뱀이 있는지라 즉시 창자를 꺼내고 달여 드리니 그 약을 잡숫고 과연 신기한 효험을 얻었다.

고서(古書)를 즐겨 보시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성현(聖賢)의 경서(經書)가 아니면 보지 않으며, 사특한 술서(術書)는 아예 책상에 두지 않았고, 만약 높은 절의로서 당시에 빛남은 물론 후세에 본받을 것이 있으면 반드시 손수 기록하여 자주 보았다.

순조(純祖) 15년 乙亥 8월 16일 졸하니 향년 56세였다.

공의 묘지명은 연일 정재경(延日 鄭在?)이 짓고, 사림(士林)에서 공의 효행을 기리어 감영(監營)에 정문(呈文)이 있었다.

배위 전주이씨(全州李씨)는 첨추 관경(僉怒 觀慶)의 따님인데 3남을 두고 졸하니 진천군 백곡면 덕가동 선영하 미좌(鎭川郡 柏谷面 德加洞 先塋下 未坐)에 합부하였다.

아들 수흥(秀興)은 생정 백부(生庭 伯父) 행원(行源) 후로 출계하고, 수응(秀應)과 수항(秀恒)이 있었다.

수응(秀應)은 자 자화(子和)요 호는 물기재(勿欺齋)인데 선훈(先訓)을 능히 이어 날마다 반드시 관대(冠帶)를 정제하고 새벽에는 가묘(家廟)를 배알하며, 매월 삭망(朔望)으로 친산(親山)을 성소 하였는데 거리가 삼십리나 되는데도 수고로움으로 해서 폐한적이 없었다. 한편 선대의 기일(忌日)에 반드시 참례하여 손수 간검하고 애경(哀敬)을 다하였다. 가난했지만 독서를 즐기어 학문이 유여하였고, 행실은 향당에 본보기가 되었으며 사람을 접함에 공경을 다하였다. 한편 수신(修身)에 계술(繼述)로 요체를 삼고, 교자(敎子)에 안분(安分)으로 근본을 삼았으며, 때로는 강재 송치규(剛齋 宋催圭) 선생을 종유(從遊)하여 선생으로부터 오당유인(吾黨有人)이란 칭찬을 받았다. 수(壽)로 첨중추(僉中樞)의 가자(加資)가 있었고, 효행과 학문으로 향당에서 아홉 차례나 천거(薦擧)가 있었다.

수항(秀恒)은 자는 사능(士能)인데 천성이 효우(孝友)스러워 부모를 섬기고 형제간에 우애함이 지극하고 모든 절차를 예제(禮制)에 쫓아 행하니 고을 사람들이 추중하여 마지 않았으며 유장(儒狀)이 있다.

후손이 진천군 진천읍(鎭川郡 鎭川邑)과 청주시 우암동(淸州市 牛岩洞)에 살고 있다.

※ 墓誌, 甲子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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