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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류비(柳 斐 )
 

류 비 柳 斐

 

<류 비 : 1566 ~ ? : 仁祖朝 武臣. 大丞公 19世 : 夏亭公派 >  

자 사화(士華)

안숙공 계문(安肅公 季聞)의 5대손이요, 함흥판관희진(咸興判官 希津)의 장자로 명종(明宗) 21년 庚寅에 양근(陽根)에서 태어났다.

선조조(宣祖朝)에 무과(武科)에 급제하고 지략(智畧으로 천거를 받아 형조좌랑(刑曹佐郞)을 거쳐 의주판관(義州判官)으로 나가 용략이 인정되어 북변(北邊)의 요새지(要塞地)인 종성부사(鐘聲府使)에 제수되었다.

당시 왜란(倭亂)을 겪어 방비가 탕잔하기 그지 없었는데 공께서 부임 즉시 성곽(城郭) · 목책(木柵 )· 격대(擊臺) · 포루(砲樓)등을 완고히 개축하고 연못을 파는 등 오랑캐의 침략에 만반으로 대비하였다.

41년 戊甲(1608) 9월 영흥부사(永興府使)로 전입하고 그후 여러 고을을 거쳐 인조(仁祖)원년 癸亥(1623) 10월 의주부윤(義州府尹)에 제수되었다. 이듬해 8월 모친의 병환으로 사직 상소를 올리니 인조(仁祖)께서 비답(批答)에 이르기를 “경(卿)이 전후로 올린 소장(疏章)은 지극한 뜻에서 나왔으니 그 뜻에 응해야 하겠으나 다만 겨울이 멀지 않아 오랑캐의 침입을 헤아리기 어려운 만큼 결코 교체하기 어려운 일이다. 내 마땅히 경(卿)의 뜻을 알아 경의 모친에게 특별히 존휼(存恤)을 더하리니 경은 스스로 마음을 안정하라.”하시고 또 하교(下敎) 하시기를 “류비(柳斐)의 병든 모친의 처소에 약방(藥房)을 명하여 상당한 약물을 보내도록 하라.”하시었다.

공은 장수(將帥)로서 오래 있었지만 청렴한 마음과 근엄한 행동을 스스로 지켜 직분을 다하니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우러러 사모하였다.

8년 庚牛(1630) 2월 평안병사(平安兵使)로 재직 중 장계(狀啓) 를 올려 오랑캐의 방비책을 건의하고 북변의 방어에 전력하다가 그로부터 얼마 안되어 돌아가시니 양근군 동종면 가소리 선영하(陽根郡 東終面 可巢里 先塋下)에 안장되었다.

배위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판서 세공(判書 世恭)의 따님으로 4남 2녀를 두었다. 장자 정설(廷卨)은 청양현감(靑陽縣監)을 지내고, 2자 정익(廷益)은 통제사(統制使)인데 족숙 극신(族叔 克新) 후로 출계하고, 정직(廷稷)은 상호군(上護軍)이요, 정남(廷南)은 수사(水使)이며, 사위는 이념(李捻)과 부사 황연(府使 黃延)이다.

※朝鮮王朝實錄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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