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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밀양박씨(密陽朴氏)



밀양박씨 密 陽 朴 氏

<밀양박씨 : 柳泰根 配位 烈婦. 忠景公派 : 大丞公 32世, 남해설천>

밀양박씨(密陽朴氏)는 규정공 현(糾正公 鉉)의 후손이요, 진환(鎭煥)의 따님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부덕(婦德)을 갖추었더니 18세에 합천공 륜(陜川公 綸)의 후예 재원(載源)의 손자요, 창회(昌檜)의 2자 태근(泰根)의 배위가 되었다. 빈한한 가정에서 시부모를 모시되 성효(誠孝)를 다하고 부군을 받들매 항상 빈객(賓客)처럼 대하였더니 미구에 부군이 질환에 걸려 백방으로 구료(救療)하였으나 효과를 얻지 못하고 밤에 하늘을 우러러 치성을 드리고 이 몸으로 대신해 줄 것을 빌었으나 마침내 23세에 별세하고 말았다.

박씨(朴氏)는 즉시 하종(下從)코자 하였으나 내외척당(內外戚黨)이 심히 감시하고 또 3세 어린 아이의 급유(給乳)를 도와 순절(殉節)을 미수하였다.

초종(初終)과 거상(居喪)을 예제(禮制)를 쫒아 행하고 복을 마친 후 치산교자(治産敎子)를 결심하여 빈한한 가세에 근근히 연명하면서도 수절하며 아들 한두(漢斗)를 착하게 길러냈다.

뿐만 아니라 80평생토록 강상(綱常)이 여일하야 원근 인척(姻戚)을 구분치 않고 돈목화열(敦睦和悅)하니 향당(鄕黨)이 모두 현부(賢婦)라 칭하고, 아들 한두(漢斗) 역시 모훈(母訓)을 능히 쫒고 성효(誠孝) 극진(極盡)하므로 향인이 감탄하야 경로회에서 그 효성을 포창(襃彰)하였다. 또한 종중에서도 의논이 일어나 그 열행(烈行)을 흠모치 않을 수 없다 하고 제주 고창석(濟州 高昶錫) 글을 받아 류부밀양박씨 열행기실비『柳婦密陽朴氏 烈行紀實碑』를 세우니 그 절(節)과 효(孝)가 한꺼번에 드러났다.

※密湯朴氏烈行記實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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