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류씨 포럼에 오신것을 환영합니다.
 
아이디 패스워드    
 
   
 
     
 

          
View Article  
  작성자  편집인
  홈 URL  http://blog.daum.net/ryujise/?t__nil_login=myblog
  제    목  류석현(柳 錫 玄 )
 

류 석 현 柳  錫  玄

 

<류석현 : 1732~1793 : 正祖朝 孝行 大丞公 25世 : 夏亭公派>

 

자 경춘(景春). 호 파릉(巴陵).

대사간 상재(大司諫 尙載)의 종손이요, 동음교관 명원(童蒙敎官 明遠)의 아들로 영조(英祖) 8년 壬子 4월23일 광주 율현(廣州 栗峴)에서 태어났다.

일찍 학문에 뜻을 두어 경전(經傅)을 깊이 탐구하는 한편 여러 사우(士友)들과 더불어 종유(從遊)하여 더욱 심오한 경지에 이르렀다.

일찍 신병(身病)이 있었지만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몸이 좀 낳으면 바르게 앉아 깊이 사색(思索)하여 마침내 기갈(飢渴)을 잃을 정도였다.

어버이를 섬김에 지극히 효성스러워 만약 환후(患候)가 계시면 문득 근심이 만면(滿面)하여 유명한 의원(醫員)을 자주 찾아가 왕진(往診)을 칭함에 비록 교만한자라도 공의 지성에 감화하고 와서 치료하여 주었다.

이렇듯 학문과 효행이 뛰어남으로 인하여 사림(士林)에서 추증하여 마지 않았다.

정조(正祖) 17년 癸丑 4월22일 졸하니 향년 62세로 묘소는 양천 신기리(陽川 新機里) 대사간공묘소우록경좌(右麓 庚坐)에 모시었다.

공의 생질(甥姪) 이조판서 박윤수(吏曹判書 朴崙壽)가 행장을 지었다.

배위 연안이씨(延安李氏)는 도정 도보(都正 道輔)의 따님인데 2남2녀를 두고 돌아가시니 공의 묘소에 합부하였다.

아들은 재수(在洙)와 존수(存洙)요, 따님은 해주오언규(海州吳彦奎) . 파평윤상묵(坡平尹象黙)에게 출가하였다.

장자 재수(在洙)는 천품이 순수하여 어려서부터 희롱을 좋아하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을 독실히 받아 조행 (操行)이 있을 뿐만 아니라 효행 또한 지극하였다. 모친(母親)께서 병환이 위독하여 식음(食飮)을 전페하고 의약(醫藥)의 효험이 없는지라, 공이 시탕(侍湯)하던 처음부터 밤낮으로 초조하여 의대(衣帶)를 풀지 않고 몇 달을 하루 같이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고 밤에는 문득 목욕재계하고 하늘에 빌어 정성을 다하였으나 별로 차도를 보지 못하고 공마저 난데없이 흥진(紅疹)으로 눕게 되었다. 마침내 모친께서 돌아가심에 공이 놀라서 쓰러지더니 또한 그날 석양녘에 돌아가시니 때는 영조(英祖) 51년 乙未(1775) 9월29일로 공의 나이 21세였다.

배위 창념성씨(量寧成氏)는 국주(國柱)의 따님인데 부먹(婦德)을 심히 갖추어 일용 행사가 예도(禮度)에 어귿남이 없더니 시모와 부군께서 동일에 돌아가시는 참화를 당하고 애척(哀戚)한 나머지 수장(水醬)을 입에 넣지 않고 12일만에 하종(下從)하였다.

2자 존수(存洙)도 또한 효행(孝行)이 있어 친상(親喪)에 시묘(侍墓)하면서 채소와 과실을 먹지 않고 3년을 죽으로 마쳐 복제(服制)를 예에 쫒아 어김이 없었다.

※ 行狀, 追先錄, 丁巳譜.

 

 


 
       

Next   류태영( 柳 泰 泳 ) 편집인
Prev   조씨(趙 氏 ) 편집인